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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06 07:05

무사 백동수 "익숙함과 진부함,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문득 그 말을 떠올리고 말았다. 내가 무협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구나. 아마 작가 역시 어지간히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양날의 검이다. 진부함과 익숙함. 익숙함이야 말로 장르물을 정의하는 것일 테지만, 진부함은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새롭지 않은 것에는 호기심도 흥미도 없다. 이미 다 알아버린 다음에는 지루함과 지겨움만이 남을 뿐이다.

1회에서도 주인공 백동수(지창욱 분)는 원수 홍대주(이원종 분)의 음모로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고, 가까스로 세상의 빛을 보고 나서도 어머니마저 바로 여의고 만다. 그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친구 검선 김광택(전광렬 분)은 자신의 한 팔을 내놓았다. 원수의 음모로 채 철이 들기도 전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을 부모의 지인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겨우 구해낸다. 역시 무협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구성이다.

고룡의 소설 <절대쌍교>에서도 그래서 이화궁의 두 궁주에 의해 천하제일의 미남자인 강풍이 죽임을 당하자 그의 의형인 대협 연남천이 두 쌍동이 가운데 소어아를 데려다 기르고 있었다. 이때도 연남천은 배신자 강금을 잡으려 악인곡으로 들어갔다가 모략에 빠져 식물인간이 된다. 그러고 보면 백동수가 흑사모(박준규 분)의 아들로 자라게 되는 판자촌의 분위기가 <절대쌍교>에서의 악인곡과 비슷하다. 악인곡은 이후 여러 작품에서 오마주되었다.

악인곡에서 10대 악인에 의해 악인으로 자라게 되는 소어아와 이화궁에서 아버지의 원수인 이화궁주들에 의해 귀공자로 자라게 되는 화무결. 같은 부모를 두고 태어난 쌍동이지만 원수에 의해 전혀 다른 성장과정을 거치며 서로에게 칼을 겨누어야 하는 비정한 운명은 그래서 살성을 타고 태어나 흑사초롱의 천주(최민수 분)에 의해 거두어져 자라게 되는 여운(유승호 분)과도 대비된다. 아마 여기에 대대로 한 집안과도 같이 지내던 곽씨와 양씨의 자손이었으나 결국 서로 전혀 다른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끝내 대립하고 마는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기>의 곽정과 양강을 더하면 얼추 맞아 떨어질 것이다. 백동수의 아버지 백사굉과 여운의 아버지 여초상(이계인 분) 역시 상당한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으니 그들은 이미 형제다. 나이도 비슷하고 그들의 부모 역시 무예의 고수로 친분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엇갈린 다른 운명을 걷게 된다. 한 사람은 영웅의 길을, 다른 한 사람은 살수의 길을, 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모두 잃고 부모의 한과 업을 짊어져야 했다면, 다른 한 사람은 살성을 가지고 태어난 자신으로 인해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잃어야만 했다. 살성을 타고난 자신을 죽이려는 아버지에 의해 어머니가 죽고, 그 아버지를 다시 자신이 죽이고. 천형과도 같은 불구로 인해 무엇도 뜻대로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또한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동갑이다. 혹은 동향이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 출발은 비슷하다. 그러나 어떻게 그와 나의 현재는 이리 다른가? 무엇이 나와 그를 이리도 다르게 만들었는가? 대비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서로가 가는 다른 길을. 그리 만드는 서로 다른 운명을. 그럼으로써 서로가 놓인 운명과 현실을 극적으로 극대화시킨다. 무협이 아니더라도 여러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구성이다. 적이지만 그와 나는 같다. 본질적으로.

아마 백동수의 기형이나 여운의 살성은 한국무협의 영향일 것이다. 천형으로 인해 어려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주위로부터 따돌림받는다. 타고난 저주받을 운명으로 인해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고 어둠의 길을 걷게 된다. 고독과 자학은 어두컴컴한 만화방 한 쪽 귀퉁이에서 누구로부터도 환영도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쓰여져 왔던 한국 무협의 트라우마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한국무협의 주인공들은 한결 더 비감하고 더 비장하다. 차라리 여운이 주인공이더라도 그래서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필 천형과도 같은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 그로 인해 주위로부터 따돌림당하며, 그러나 운명처럼 그런 와중에도 어린 황진주(윤소이 분)를 만나 그녀를 구해주게 된다. 그런 한 편에서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가까스로 살아나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으며 자라다가 흑사초롱 천주의 눈에 들어 그의 제자가 되어 흑사초롱에 가입한다. 여운이 흑사초롱에서 훈련받는 장면이 나왔으니 이제 백동수가 예고편에서처럼 장용위에 들어가 지옥훈련을 받는 장면이 나오게 되면 그제서야 얼추 균형이 맞을까? 역시 성장과정마저 어쩌면 이리도 정석적인가. 단지 무림의 문파를 대신해 조선조정이 나오고 청조정이 나오고 있을 뿐. 아닐까?

효종이 남겼다고 하는 "북벌지계"에 대해서도 와룡생 이후 무협의 가장 중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보쟁탈전이었다. 무공비급이거나 아니면 값진 보물이 숨겨진 장보도이거나 그도 아니면 <사조영웅기>에서처럼 악왕 악비가 남겼다고 하는 병법서이거나. 보물을 탐하여 음모를 꾸미고, 서로 갈등하며 충돌하는 것이야 말로 한국무협의 기본코드일 것이다. 다만 흑사초롱의 천주마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북벌지계"에 지금처럼 긴장할만한 어떤 힘이 숨어있기는 할 것인가. 약간은 어색하게 느껴졌던 부분이었다.

결국은 관건은 뭐냐면 무협소설의 차별성은 바로 캐릭터와 무공에서 나온다. 전체적인 플롯은 크게 차이가 없다. 과연 어떤 캐릭터이고 어떤 무공인가? 단지 지옥훈련만 거쳐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힘을 찾아야 한다. 그 힘은 무협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될 터다. 뻔한 클리셰투성이의 작품일수록 더욱 캐릭터와 무공, 그리고 상황에 대한 묘사는 중요하다. 지창욱과 유승호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을 것인가. 여러가지로 어색하고 어설픈 설정 가운데서, 지겨울 정도릐 진부함 가운데서 드라마를 끌고 갈 힘이 과연 그들에게는 있겠는가. 만일 이들의 캐릭터와 연기가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저 허황되고 뻔한 드라마로 남을 것이다.

아무튼 조선을 떠나 중국으로 간 김광택이 마침내 이른 장소가 소림사라는 점도 무척 흥미롭다. 아마도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정충두의 <소림곤법천종>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소림에 전해지는 유구한 전통의 곤법에 대해서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정충두라는 사람이었다. 17세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김광택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왜도술을 깊이 연구하고 있었다. 아마 시대가 시대이니 정충두는 나오지 못하더라도 소림사는 한 번쯤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을까. 한국의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소림사라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

바로 이것이 문제일 것이다. 너무 뻔하다. 너무 뻔하게 읽힌다. 워낙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것도 있어서. 2회까지 보면서 내내 비슷한 다른 무협소설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른 것은 주연배우들의 면면. 그들이 만들어가는 장면장면들. 놀랍거나 새롭다기보다는 그동안도 지겹도록 보아 온 것이기에. 장르물의 한계다. 유사성이 장르를 정의한다면 진부함은 대중과의 연결고리를 파괴한다. 이것은 과연 재미있을 것인가.

액션은 아직도 너무 아쉽다. 너무 폼을 잡으려 한다. 박철민(흑사초롱 인주 역)의 연기는 지나치게 오버스럽고, 액션의 연출 또한 자연스러움이 부족하다. 캐릭터의 매력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보류. 그리고 그 자리를 스타일리시한 화면이 대신한다. 재미는 그다지...  아직은 맛이 덜 들었다. 아직까지는 최민수와 전광렬이 극을 끌어가지만 이후가 필요하다. 지창욱과 유승호. 짐이 무겁다.

과연 장르물의 상투성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조선이 배경이어도 무협은 무협이다. 한국사람도 무협을 많이 쓴다. 진부한 클리셰들로 그리 생각하게 된다.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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