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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홍준 기자
  • 영화
  • 입력 2014.02.15 10:38

[리뷰] '찌라시; 위험한 소문', 자극적인 소재를 담백하게 연출한 아쉬운 작품

[스타데일리뉴스=박홍준 기자] 찌라시: 어지름, 흩으려 놓음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흔히 우리는 광고 전단지 등을 일컬을 때 찌라시라는 말을 쓴다.

▲ 찌라시 포스터(CJ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런데 이 단어가 보통 명사가 아닌 고유 명사로 쓰이는 곳이 대한민국에 있다. 바로 증권가이다. 정치, 경제, 사회, 연예 등 다방면에 걸친 소문들을 짜깁기해 일종의 파일 형식으로 만든 찌라시는 주식 시장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쓰인다. 그런데 이 찌라시의 직접적인 소비자, 즉 주식 투자자들 외에 일반 대중들이 이 단어와 그것의 성향을 익숙하게 생각하는 데에는 이 짜리시라는 것이 소위 X파일이라고 불릴 만한 메가톤급 연예인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와 사귄다더라’, ‘누가 누구의 애를 낳았다더라’, ‘연예인 A가 알고 보니 게이라더라’ 등의 소문은 유명인의 가십을 즐기는 대중의 구미를 충분히 당길 만하다.

찌라시, 언뜻 매혹적으로 들리면서도 위험한 냄새가 나는 단어다. 그러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의 피상적인 존재만 알고 있지 그것의 실체를 잘 알지는 못한다. 찌라시라는 것이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 것일까?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것이다. 바로 그 찌라시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찌라시-위험한 소문]이다. 

▲ 박사장 역의 정진영과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김강우(우곤 역)

영화 속 대사에서도 언급됐듯이 ‘찌라시의 90% 이상이 헛소문’이다. ‘뭐뭐라 카더라’에서 시작된 소문은 ‘뭐 아니면 말고’로 쿨하게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 [찌라시]는 이 찌라시에 의해 무고한 한 배우가 희생되고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매니저가 이 추악한 소문 뒤에 숨어있는 음모를 밝혀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둠의 세력, 즉 정치와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이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 낸다는 음모이론은 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인 여배우를 스타로 키워내 승승장구하던 우곤(김강우 분)은 자신의 배우가 찌라시의 희생양이 되기 전까지는 그 세계와는 다른 영역에서 살던 사람이다. 그러나 잔인하고 부끄러운 소문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한 배우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찌라시를 만들고 유포하는 세력을 추적하고 그 이면에 감춰진 커다란 존재의 음모에 직면하게 된다. 

▲ 적들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모인 그들

2010년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으로 데뷔한 김광식 감독은 단어만 들어도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떠오르는 소재를 가지고 지나치게 담백한 영화를 만들어 냈다. 인간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은밀하고 추잡한 뒷세계의 소문들이 단지 가십 수준으로 겉돌고 있으며, 음모라는 것도 단조롭고 추적이나 액션 씬의 긴장감도 떨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여배우의 죽음 자체가 영화의 주 플롯을 구성하는 음모와 전혀(사실 후반에 이르러 반전이 있기에 전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극의 초반 지나치게 우곤과 그녀의 관계에 집중하며 지루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물론 이 장면들이 우곤이 그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한다고는 해도 극 전반적인 이야기의 덩어리로 볼 때는 거의 사족에 가깝다.

사실 그녀의 희생 자체가 우곤이나 그녀를 제거함이 목적이 아니고, 단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이 분명히 밝혀질 때 관객은 사랑하는 배우를 잃은 매니저 우곤의 슬픔에 공감하기보다 실소를 내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찌라시라는 것이 헛소문이 대부분인 가십이라고 영화 내에서 밝힌 것처럼 감독은 어쩌면 이런 영화 속 내용들을 찌라시처럼 다루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 

▲ 차성주의 금고를 여는 김강우. 금고는 너무나 쉽게 열린다.

영화 [작전]에서도 찌라시를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작전]은 주식시장을 소재로 한 영화이고 작전 거래와 그것을 주도하는 세력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영화 내에서 찌라시라든가 작전 세력 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됐다. 그러나 이 영화 [찌라시]는 증권 시장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또한 찌라시에 대한 영화도 아니다. 때문에 소문을 만들어 내는 주체인 정보 세력의 정보 회의나 찌라시 판매, 유통 업체 등을 굳이 자세하게 영화 속에서 들어낼 필요가 없었다. 찌라시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플롯의 동기나 주제를 드러내는 장치 정도로만 사용했어야 하는데 너무 그것에 잠식된 나머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이야기가 나와 버렸다. 찌라시가 주제가 아니라 수단으로서만 기능을 했어야 한다. 

▲ 박성웅은 완벽한 악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각의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시나리오의 문제다. 청와대, 국회의원, 재벌, 그리고 해결사 등의 관계가 명확하지도 않고 별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한다. 도청이나 위치추적, 금고를 터는 작전 등은 긴장을 자아내기는커녕 어설프기까지 하다. 차성주 역의 박성웅은 냉혹하리만큼 건조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의 존재감이 그가 쫓는 우곤, 박사장, 백문 등과 같은 편인 오본석 등과의 밸런스가 맡지 않아 붕 뜨는 느낌이다.

김강우와 박사장 역의 정진영, 오본석 역의 박원상은 캐릭터에 딱 맞는 연기를 했다. 이 말은 완변한 이미지 캐스팅이기도, 혹은 배역에 완전 몰입해 훌륭히 소화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만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그 동안의 연기와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 새로운 이미지 변신을 꾀한 듯한 고창석(백문 역). 하지만 고창석은 고창석을 연기한다.

영화에서 도청 전문가 백문 역의 고창석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외적으로 피어싱과 펑크패션으로 변화를 꾀하긴 했지만 캐릭터 자체와 대사는 그 동안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출연작만 봐도 [조선 미녀 삼총사], [관상], [은밀하게 위대하게], [강철대오], [스파이], [아부의 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필모그래피가 화려하다. 이제는 대중에게도 친근해질 정도로 많은 작품에서 노출되어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친 그다. 하지만 과거 이문식, 오달수, 이원종 등을 비롯해 최근 그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송새벽 등이 어떻게 부침을 겪었는지를 배우 고창석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 소문을 파헤치기 위해 정보 회의에 참석한 김강우(우곤 역)

마지막 반전은 반전으로서 기능한다기보다 좀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음모의 목적과 실체도 불친절하게 설명이 되어 있고, 액션이나 추격 등의 스펙타클이 주는 긴장도 덜하다. 실컷 변죽만 울리다가 끝난 듯한 느낌이랄까? 매력적인 재료를 제대로 요리하지 못한,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영화는 2월 2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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