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영화
  • 입력 2014.02.12 17:38

'또 하나의 약속'을 향한 또 하나의 외압, '침묵의 카르텔'

멀티플렉스를 이끄는 것도 결국 삼성과 다름없는 대기업, 제작자인 관객은 외면받았다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관객은 늘어났다. 그런데 극장은 문을 열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이야기다.

'또 하나의 약속'은 11일 현재 전국 182개의 스크린에서 22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게다가 지난 10일부터는 두 배에 가까운 스크린을 차지한 '프랑켄슈타인'까지 제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이 더 몰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멀티플렉스 측은 "스크린 수를 늘렸으며 프로그램 문제는 프로그램 팀과 배급사를 통해 결정한 문제"라고 강변하지만 영화 제작사 측은 "교차 상영 등으로 스크린 수를 늘린 척만 했을 뿐 실제로 늘어난 것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 관객 수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멀티플렉스의 외면을 받고 있는 '또 하나의 약속'(OAL 제공)

영화를 본 관객들, 그리고 네티즌들은 이런 멀티플렉스의 '몸사림'에 여전히 비난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산재를 숨기기에 급급하고 근로자들의 아픔을 무시하는 대기업 삼성을 비난하는 동시에 삼성의 눈치를 보는 멀티플렉스의 저급함을 비난하고 있다.

'또 하나의 약속'이 이처럼 관객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는 이유는 이 영화가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비인간적인 뒷모습을 보여줬다는 것도 있지만 이 영화를 만든 주체가 바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라는 것도 큰 몫을 했다.

거대 기업이 자금을 대주거나 개봉을 지원하지도 않았다. 촬영 시작부터 개봉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이는 바로 영화를 기다리는 일반 관객들이었고 이들은 영화 마지막에 자막으로 이름이 올라와있다.

누가 뭐래도 '또 하나의 약속'은 관객이 제작자인 영화다. 그 관객이 제작한 소중한 영화를 멀티플렉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에 관객들이 분노하고 있다. 서울 중심가가 아닌 변두리 상영관에 스크린을 잡고 조조 혹은 심야 상영 만으로 스크린을 채우는 '변칙'은 이 영화의 제작자이면서 가장 큰 지지자인 관객의 발길을 돌리게 만드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멀티플렉스로 대표되는 소위 대기업의 '침묵의 카르텔'을 발견한다. 자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영화. 그런 영화에게 우리의 텃밭을 내줄 필요가 없다는 대기업의 횡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근로자들이 죽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삼성의 논리와 맞닿아있다. 그것을 우리는 '시장경제의 룰'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키고 있다.

▲ '또 하나의 약속'은 촬영 시작부터 개봉까지 관객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스타데일리뉴스

어쩌면 '또 하나의 약속'은 계속해서 외로운 싸움을 해야할 것이다. 기댈 수 있는 언덕으로 생각했던 멀티플렉스도 결국 삼성의 논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대기업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라도 관객들에게 인정받고 개봉이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독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물론 계란이 깨지겠지만 바위도 결국 흉한 몰골이 된다. 멀티플렉스는 그렇게 흉한 몰골을 보여주고 있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