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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영화
  • 입력 2014.02.11 12:56

[리뷰] '관능의 법칙', 우리에게 '관능'이란 '웃픈' 이야기일 뿐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40대 여성의 이야기, '자뻑'과 '자조'가 교차되는 삶의 현실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지금은 대표적인 여성 그룹으로 자리잡은 소녀시대가 처음 가요계에 등장했을 때 그들이 외친 것은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였다.

물론 이것은 이승철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이었지만 가녀린 소녀들이 어리다고 놀리지 말라며 '지금은 소녀시대'를 외쳤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소녀가 숙녀로 변해가는 그 과정을 우리는 보고 즐긴 거다.

그들이 지난해 'I Got A Boy'를 선보였을때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게 기억난다. 이 노래는 마치 자신들이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아줌마가 됐을 때 수다를 떠는 듯한 내용의 곡이라고.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생각일 뿐이지만 정말로 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됐을 때 이 노래처럼 발랄하게 수다를 떨 수 있을까하는 생각은 여전히 의구심으로 남는다.

40대라는 나이가 그렇다. 특히 여자 나이 40대는 더더욱 그렇다. 아직 한창인 것 같은데 슬슬 '퇴물'취급을 당하는 느낌이 든다. 사랑을 느껴야할 입술은 음식의 간을 맞추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새로 연애를 시작하려하면 '주책'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어쩌다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상황은 의외로 심각해진다. '혹시 흑심이 있어서?', '순진한 아이를 꼬셨구만?', '뭘 노리고?' 이런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세 명의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관능의 법칙' 포스터(명필름 제공)

40대 여자, '관능'을 마음껏 표현하고 싶지만 뭔가에 꽁꽁 묶여있는 듯한 시기. 자유분방한 삶을 선언해도 계속 예기치 못한 장애물이 생기는 또 한 번의 '질풍노도의 시기'.

글만 가지고는 도저히 공감이 오지 않는다고? 그럴 만도 하다. 이 상황들은 모두 영화 '관능의 법칙'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30대 '싱글즈'가 40대가 됐을 때

2003년 영화 '싱글즈'에서 30대를 맞이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관객의 큰 공감을 얻었던 권칠인 감독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번엔 4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비록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르지만 이들의 캐릭터는 역시 '싱글즈'와 맞닿아있다.

30대에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했던 나난(장진영 분)의 모습은 방송국 PD로 사귀던 동료에게 배신당한 후 나이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신혜(엄정화 분)의 모습과 맞닿아있고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며 미혼모로 살기로 선언하는 동미(엄정화 분)의 모습은 딸과 친구처럼 지내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살아가려는 싱글맘 해영(조민수 분)의 모습과 맞닿아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싱글즈'를 경험한 여성들의 10년 후 모습은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영상에 옮기는 이는 여성보다 오히려 여성의 심리를 잘 이해하기로 소문난 남자 감독 권칠인이다.

영화는 40대의 세 여자를 내세우며 이들의 꿈, 이들의 욕망,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성공이 사실 20대나 30대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한다.

▲ 신혜(엄정화 분), 미연(문소리 분), 해영(조민수 분)은 각각 자신의 '관능'을 표현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이들의 관능을 가로막는 것들 투성이다(명필름 제공)

신혜와 해영, 그리고 매일 밤 남편에게 도발적인 행위를 원하는 주부 미연(문소리 분)는 스스로 절정의 40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표현하고픈 '관능'은 엉뚱한 곳에서 막힌다. 해영은 독립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그러나 결국은 시집가는) 딸(전혜진 분)이 신경쓰이고 미연은 밤마다 '비아그라'를 먹어야하는 남편(이성민 분)을 일으켜세우고 싶어한다. 신혜의 사랑은 주변의 이상한 시선에 순수함을 점점 잃어간다.

영화의 느낌, 공감하거나 혹은 시시해하거나

'관능의 법칙'을 보는 관객들은 크게 둘 중 하나의 감정을 느낄 지도 모른다. 공감하거나 혹은 시시해하거나. 공감하는 이는 당연히 세 여자 또래의 관객들, 그리고 인물의 감정을 따라 영화를 본 관객들일 것이고 시시해하는 이는 아직 '그 나이'가 되지 못한 관객들, 그리고 '영화는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본 관객들일 것이다.

가령 미연이 나이트클럽에서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남자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내는 순간 알고 보니 '퍽치기'였던 순간, 그리고 병원에 누운 미연에게 "우리 나이에 따라올 남자는 퍽치기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신혜의 대사를 듣는 순간, 영화를 본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이 장면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곧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느낌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뻑'과 '자조'가 수시로 엇갈리는 세 여자의 대사들이 요즘 말로 '웃프게' 들렸다면 '관능의 법칙'을 '드라마가 없는 평이한 영화'라고 폄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관능의 법칙'은 과장이나 비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 신혜(엄정화 분)는 어린 남자(이재윤 분)의 구애에 마음이 흔들린다(명필름 제공)

밋밋한 드라마가 단점이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되고 싶지만 결국 엄마가 되어야하고 아내가 되어야하는 그들의 삶. 겉은 화려해보일지 몰라도 알고 보면 똑같은 퍽퍽한 삶이 펼쳐지고 그를 통한 자조적인 생각이 대사로 나올 때 우리는 쉽게 이 영화의 의도에 끌리게 된다.

여자의 '관능'이 막혀있는 현 상황에서

'관능의 법칙'은 10년 전 '싱글즈'의 감성을 다시 살리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살아나기에는 지금의 40대가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싱글즈'가 개봉할 당시는 다양한 스타일의 한국영화들이 극장에 걸렸고 그 때문에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이 어느 때보다도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 후 10년, 그 호황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과연 '관능의 법칙'이 지금 우리 주위에 있는 신혜, 미연, 해영을 깨워 극장 앞으로 오게 할 수 있을까? 저들의 솔직한 이야기에 우리는 과연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자의 '관능'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관능의 법칙'은 계속 이어진다. 왜? 그것은 여성의 본능이니까. 그리고 40이 되고 50이 된다해도 그 '관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니까. 그렇게 삶은 지속된다. 팍팍해도.

▲ '관능의 법칙'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로 드라마를 이끌어나간다(명필름 제공)

사족 : '관능의 법칙'이 홍보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표준계약제'로 만든 최초의 영화라는 것이다. 밤샘 촬영 안 하고 표준 계약에 맞춰 진행한 최초의 영화. 그래서 권칠인 감독은 "밤샘 촬영을 안 했기에 여배우들의 탱탱한 피부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과연 이 영화가 대한민국 영화계에 '표준계약'을 정착시키는 원동력이 될 지도 궁금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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