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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1.03.31 19:36

'노매드랜드' 영화를 뛰어 넘어 현상에 가깝다

집 없는 서민을 위한 힐링과 치유의 드라마... 4월 15일 개봉

▲ '노매드랜드' 메인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4월 15일 개봉 예정인 '노매드랜드'(Nomadland)는 북미 현지 평론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찬사를 받는 영화 중 하나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부동산 파생상품 대폭락)이래 불황과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 서민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은 '노매드랜드'.

영화는 낡은 밴을 구입한뒤 네바다 전역을 떠도는 중년 여성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이야기다. 

수년전 말기암으로 시한부 삶을 산 남편을 잃고 홀로 밴에서 숙식하는 이 여성은 네바다 엠파이어 광산에서 남편과 살았고 현지 학교에서 임시교사로도 일했던 인물.

예고편에 나온 주인공 제자의 질문 "엄마한테 들었는데 당신은 홈리스(부랑자)라면서요?" 이런 당혹스러운 질문에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주인공의 대답이 압권이다. "아니, 난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집이 없는)란다" 인상적이다.

'Nomad'는 유랑민을 말한다. 약 200년전 개척 시대의 북미 서부로 마차를 타고 이주한 각국의 이민자들은 희망과 꿈을 품었겠지만, 그 뒤로 2세기가 지난 미국은 경제적인 이유로 마차 대신 낡은 밴을 타고 미국 전역을 떠돈다.

결국 이 작품은 수많은 노매드(노마디스트)를 비추며 미국 사회가 처한 현재진행형을 대변하고 있다.

▲ '노매드랜드' 보도컷(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하루에도 추위와 더위가 극명히 교차되는 네바다 사막, 이를 집으로 삼았던 그들의 이야기

영화 '노매드랜드' 예고편을 보면, 아마존 창고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주인공 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국에도 이미 존재하는 택배서비스.

국내에도 쿠팡 같은 대규모 창고에서 파트타임으로 주야를 걸쳐 열심히 일하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나이를 불문하고 시키는대로 택배 물품을 재분류하고, 실어나르는 그들은 저임금 노동자다. 

주인공 펀은 천직처럼 생각하고 다녔던 일터와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이다. 광산 회사가 파산하고, 이 기업으로 먹고 살던 마을도 사라졌다.

흥미로운 점은 펀에게 여러차례 정착을 권유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주인공 펀이 캠핑 생활 중에 만나 친구가 된 린다도 정착을 권유했고, 펀의 친동생도 "고향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함께 하자"며 정착을 애원했지만, 펀의 선택은 늘 네바다 사막이었다.

'거짓말로 연명하는 낡고 썩은 자본주의에 대항하자'며 유튜브와 SNS로 진정한 자유인, 노마디스트를 주장하는 선구자 밥 웰스를 만나 감명을 받아서였을까. 아니면 남편과의 이별을 잊지 못해 한국의 장례 문화처럼 3년상을 치루는 것일까.

'노매드랜드'는 러닝타임 108분 동안 네바다 사막에서 드러나는 드넓은 풍광과 일출과 일몰의 전경을 가감없이 제공한다. 그야말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힐링과 치유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막과 초원의 절경을 조용히 감상하고 즐길 수 있음에도 머릿 속은 많은 상념과 더불어 희비가 교차된다. 

마치 사순절 수녀원에서의 침묵 피정 중 상념 속을 맴도는 과거, 실수, 실망, 추억에 대한 집착이 기도와 묵상을 방해하듯이.

▲ '노매드랜드' 아마존 창고화면 컷(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미국 뿐 아니라, 한국과 아시아에서도 발견되는 '노매드랜드'

영화 '노매드랜드'는 정착이라는 단어와 유랑이라는 단어가 대립각을 세우고, 주인공 펀의 심리적 갈등을 부채질 한다.  

앞선 글에 썼듯이 동어반복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는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었을 법한 개인적인 갈등을 이야기한다.

가령, 영화는 주인공 시점을 두고 한 쪽은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정착할 때도 됐지 않느냐"라고 묻는 것 같고, 다른 한쪽은 묵시적으로 "네바다가 네 집이야"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신의 음성이었을까.

진보와 보수로 진영을 구분하고 정치적 갈등을 부채질해 한 인간의 신념을 그들만의 도그마로 편입시키고, 양당제로 선거를 치루며 투표를 강권으로 밀어내는 시국이 반복되는 현대 사회.

정작 IMF사태 이후 성공한 사람 보다 누가 봐도 번듯한 성공을 포기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지금.

코로나 팬데믹을 두고 마치 조물주가 내린 형벌처럼 들이밀며, '역사적인 패닉'이라고 떠드는 지금. 정작 서민들은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새벽 노동시장을 전전하는 해묵은 현재를 살고 있다.

젊고 힘이 넘쳐났을 때의 영화로운 추억과 과거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이제 남은건 생명부지의 '나혼자 산다'만이 모두의 시야에 콱 박혀있다.

할 말 많은 영화 '노매드랜드'

영화 '노매드랜드'는 지난해 가을 북미에서 OTT서비스와 극장에서 동시개봉됐다. 현지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반응들이 봇물(현상)을 이루고 있다.

이유랄 것도 없다. '노매드랜드'가 현지에서 신드롬까진 아니더라도 미국 서민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지 미국 백인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제작비가 5백만 달러인 '노매드랜드'는 미국에서 보면 저예산영화다.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그럼에도 잘 보면, 이 영화는 소외된 백인들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펀이라는 중년여성은 과거 어떤 신념과 경험을 하고 살았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성향은 진보적이다. 

십 수년전 북미와 전 세계 각국에 퍼졌던 신자유주의에 따른 산업 구조 재편이 그녀와 그녀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줬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렇다. 수십년전 리버럴의 빅이슈였던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 얼마나 많은 계몽 판타지와 착각을 불러 일으켰는지 '노매드랜드'가 제대로 저격했다. 이때문에 미국 현지 시청자와 관객의 반응이 SNS로 다양하게 쏟아지는건 자연스러운 현상.

작년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극장 수입 보다 OTT스트리밍서비스로 일찌감치 개봉한 이 작품은 마치 부모 무덤가에서 초막을 짓고 상복을 입은채 3년 상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사순절은 부활절이 시작되는 4월 4일을 기점으로 마무리 된다. 하지만 미국의 다수를 점유한 백인들의 코로나 애도기간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4월 25일까지 이어질 것 같다. 

▲ '노매드랜드' 보도컷(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노매드랜드'는 미국과 여러 나라가 처한 공통분모를 담고 있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중년 백인 여성 펀이 사랑했고, 측은지심이 가득했던 남편에 대한 애도와 기억을 말하는 영화다. 단지 이것을 네바다 자연 풍광을 비추며 말하고 싶었던 메타포를 살포시 비틀었다. 

이 때문일까. 미국사회에서도 흔치 않은 진보성향의 시민이 외곽에서 터전과 가족을 잃은 자신과의 내적 갈등을 봉합하고자, 유랑생활을 선택했다. 기간은 무제한.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유품처럼 보며 남편을 제외하고 모든 것들을 네바다 사막에 버렸다. 그리고 침묵으로 평생 담고 있던 신념을 닫아버렸다.

더는 신념과 포부를 말할 수 없는건 그간의 약속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씹듯이 저버린 미국이라는 나라가 굳건히 버티고 있기 때문. 진보는 아닐지언정 있는 자들의 옹색한 변명은 진화한 셈이다.

한편 연초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도널드 트럼프가 1990년대 Kidrock 라이브 무대처럼 사방에서 날라오는 물병들을 맞고 온갖 욕설을 들으며 미국 서민들의 분풀이를 푸는 지난 날의 대상이었다면, 이제 미국은 새로운 대상을 물색하고 있지 않나?

중국 북경 출신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노매드랜드'가 백인 서민의 애도와 침묵을 보여줬다면, 그 반대의 폭력성이 분출되고 있는 미국. 그곳에 사는 아시아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 이후 가장 적절한 희생양 아닌가? 

덧붙여 1929년 대공황을 재조명한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1939)가 1940년 영화화 됐듯이 오는 4월 15일 국내 극장가에서 개봉하는 '노매드랜드'도 2017년 출판된 제시카 브루더의 소설 '노매드랜드'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

결과적으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가 수입하고 배급하는 '노매드랜드'는 내달 말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업적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내 잔존하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거품을 이처럼 얌전히. 제대로 가격한 영화는 많지 않기 때문. 그래서 이 영화는 지금 보다 앞으로 두고두고 작금의 시대를 조명할 몇 안되는 작품으로 남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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