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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4.02.10 10:41

[권상집 칼럼] 표절의 사각지대, 예능 프로그램의 노골적 베끼기

시청자들의 즐거움과 권리 빼앗는 예능 프로그램 베끼기 행태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방송사들 인기 예능 프로그램 베끼기 경쟁’ 이 제목은 마치 요즘에 나온 기사 제목 같지만 벌써 8년 전 모 언론 매체에서 당시 예능 프로그램들의 무차별 베끼기를 고발한 기사의 제목 중 하나였다. 지난 한해 가장 뜨거웠던 이슈가 ‘가요계 표절 논란’이었고 이를 통해 몇몇 작곡가가 네티즌과 대중의 지탄을 받았던 점을 우린 모두 기억하고 있다. 표절이 대중의 비판과 뜨거운 비난을 받는 이유는 바로 창작자가 창작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땀의 결실을 아무 고민 없이 그대로 차용하여 영광을 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요계에 대한 표절의 경종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았지만 유난히 TV 프로그램, 그 중에서도 예능 프로그램의 베끼기 경쟁은 해가 갈수록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CJ가 기획했던 <슈퍼스타 K>가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오디션 열풍을 불러 일으키자 MBC는 2010년 하반기에 동일한 포멧의 <위대한 탄생>을 급조했다. MBC에서 심사위원을 셋이 아닌 다섯 명으로 늘리고, 이들을 멘토로 설정하는 시스템을 두었지만 누가 봐도 이 두 프로그램의 유사성은 너무나 판박이였다. 물론, 이에 대해 MBC는 <대학 가요제>, <강변 가요제> 등을 언급하며 오디션 프로의 원조임을 내세우는 무리수까지 두며 홍보를 했지만 거센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 예능 베끼기 과열, 예능 프로그램의 표절 행위는 10년이 넘게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출처:CJ E&M, CU 미디어, 스타데일리뉴스, MBC [시계방향순])
사실, 모든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원조는 MBC의 <무한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방송국 내부 세트에서 토크를 주고 받는 설정이 아니라 현장에서 격렬히 뛰고 경쟁하는 이들의 모습은 매우 신선했다. 이후 멤버들 간의 추격전, 다양한 기획 이벤트, 장기 테마 등을 구성하며 MBC <무한도전>은 2005년 시작했던 <무모한 도전>에서 한 발 더 진화해나갔고 이후 모든 리얼 예능 프로그램의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후, KBS의 <1박 2일>의 구성, <남자의 자격>의 기획 이벤트, SBS의 <런닝맨>이 보여준 추격전 등의 내용이 <무한도전>과 형식, 그리고 진행 과정이 흡사하다며 각 프로그램 팬들의 논쟁이 한때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무한도전>이 원조라는 데 대한 반박도 당시 존재했었다. 당시에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에 이어 <무리한 도전>식의 콘셉트를 초창기에 기획, 진행했었고 이는 개그맨 유재석이 과거에 타 방송국에서 진행한 <천하제일 외인구단>과 내용과 형식이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김태호 PD가 프로그램의 성격을 철저히 바꾸고 내용과 기획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이런 오해와 ‘따라하기’ 에 대한 비난은 자연스레 벗어날 수 있었다.

최근 이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 베끼기’에 대한 비판이 지난주 모 언론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다. JTBC의 <히든싱어>에 대해 SBS가 추석 특집 프로그램에서 모창을 선보이며 거의 동일한 방식의 흐름과 내용을 선보였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물론, 당시 SBS 추석 특집 프로그램의 MC가 전현무였던 점, 그리고 모창자를 ‘법대생 싸이’, ‘순천 아이유’와 같은 동일한 방식으로 소개했기에 SBS가 JTBC의 대표 예능 <히든싱어>를 따라 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러한 식의 동일한 비난과 비판은 MBC의 <아빠 어디가>와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MBN의 <황금알>과 JTBC의 <신의 한수>등을 포함하여 지난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문제는 갈수록 예능 프로그램의 창의적인 특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일밤의 집단 MC 체제가 사실은 일본 예능 프로그램의 집단 MC 체제를 따라 했다는 점 등은 조용히 알려지기도 했다. 가요계 표절에 대한 보도와 비판은 각 방송사에서 유난히 엄격하면서도 여전히 각 방송사들의 예능 베끼기 행태에 대해 각 방송사, 종편들이 침묵한 이유는 모두가 철저히 이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는 공범이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기획, 차별화된 콘텐츠가 아닌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지게 되니 시청자의 권리와 즐거움은 뒷전일 수 밖에 없다.

이미 예능 베끼기 과열, 예능 프로그램의 표절 행위는 10년이 넘게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가요계의 표절, 공연 무대의 표절 등이 이미 지적재산권 이슈와 관련되어 많은 관심과 제도의 개선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예능 TV 프로그램은 이 분야에 대한 창작자의 권리가 애매하다 보니 베끼기 경쟁과 같은 촌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시청자들이 차별화된 프로그램, 가장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이유도 모두가 거기서 거기와 같은 유사성이 많이 중복된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서 한 회사의 제품이나 브랜드가 타사의 독창성을 침범하면 그 회사는 고객으로부터 퇴출될 각오를 해야 한다. 가요계에서도 음악을 표절하면 해당 작곡가는 다시 음악을 만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예능은 여전히 표절과 베끼기에 있어서 최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여전히 그 사각지대에선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타사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구가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벤치마킹이라는 이름 아래 교묘히 활용ㆍ기획되고 있다. 예능의 기본 목적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아이러니하게도 각 사의 표절 예능 프로그램이 앞장 서서 시청자의 즐거움과 권리를 빼앗고 있다. 

- 권상집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미래 한국 아이디어 공모전' 논문 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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