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2.09 08:25

[심층 리뷰] 정도전 11회 "압도적인 전투신, 역사드라마의 신기원을 열다"

차라리 드라마보다 비현실적인 이성계의 무공, 아쉬움이 남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아마 사료에 기록된 내용이 너무 엄청나서 드라마로 만들기에는 아무래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여긴 모양이다. 연이은 패배에 경상도 도순무사 박수경과 원수 배언 등이 전사하며 위축될대로 위축된 장수들을 다그쳐 전장으로 내몬 것이 바로 이성계(유동근 분)였다. 드라마에서와는 반대로 버티며 기다리자는 것이 다른 장수들의 주장이었고 그것을 꾸짖으며 왜구를 공격할 것을 명령한 것이 다름아닌 이성계였던 것이다.

황산 샛길에서의 전투 역시 변안열 등의 구원으로 어렵게 승리를 거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황산 정산봉에 오른 뒤 주력군을 이끌고 평탄한 길로 진군하던 다른 장수들이 지레 후퇴하는 사이 이성계는 홀로 세 차례나 적을 무찌르며 적의 본진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온통 진흙탕이라 함께 뒹굴며 악전고투를 치렀음에도 단 한 사람의 희생도 없었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 전투에서 이성계는 대우전과 유엽전을 각각 20발, 50발을 쏘아 모두 적의 얼굴에 맞춰 쓰러뜨리고 있었다고 한다.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제법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산정상에서 웅크리고 있던 왜구를 물리칠 때도 이성계는 다른 장수들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사병들만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다음은 당시의 전투에 대한 '고려사'의 기록이다.

▲ KBS 제공

적이 산에 웅거하고 굳게 지키자 태조가 사졸을 지휘하여 요해처(要害處)에 나누어 진을 치게 한 후 휘하의 이대중(李大中) 등 10여 인으로 하여금 싸움을 걸게 하였다. 태조가 공격해 올라갔으나 적이 사력을 다해 치고 나오니 아군은 쫓겨 내려왔다. 태조가 장졸(將卒)들을 돌아보며, “말고삐를 단단히 잡고 말이 쓰러지지 않게 하라”고 지시한 후 다시 나팔을 불게 하여 군사를 정돈하고 개미처럼 기어올라 적진으로 돌격하였다. 이때 적장 하나가 창을 들고 바로 태조 뒤로 달려와 사태가 매우 위급했다. 편장(偏將) 이두란(李豆蘭)이 말을 달려와, “장군, 뒤를 보시오! 장군, 뒤를 보시오!” 하고 외쳤으나 태조가 미처 보지 못하므로 이두란이 그를 활로 쏘아 죽였다.

말이 화살에 맞아 거꾸러지자 태조는 즉시 바꿔 탔으며 또 맞아서 거꾸러지면 다시 바꿔 탔다. 날아온 화살이 왼편 다리를 맞혔으나, 태조는 화살을 뽑아버리고 더욱 기세를 올려 전투를 몰아갔기 때문에 군사들은 태조가 부상당한 것도 알지 못하였다. 적이 태조를 여러 겹으로 포위하자 태조는 기병 몇 명과 함께 포위를 뚫고 나왔으며, 적이 또 태조의 앞으로 돌격해오자 태조가 그 자리에서 8명을 죽이니 적이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태조가 하늘의 해를 가리켜 맹세한 후 좌우의 부하들에게, “겁나는 자는 물러가라. 나는 적과 싸우다 죽으련다!” 하고 격려하니 감격한 장수들이 용기백배해서 다들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적은 요지부동이었다. <출전:네이버 국역 고려사, 변안열 열전>

말이 화살에 맞아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고, 다리에는 화살까지 맞았으며, 심지어 적에게 포위되어 몇 명의 휘하들과 그것을 뚫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었다. 돌격해 오는 적을 혼자서 8명이나 베어 쓰러뜨리는 장면은 차라리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조선이 건국되고 쓰여졌고, 조선의 건국왕인 이성계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윤색이 가해졌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더라도 그 치밀함과 상세함은 당시의 전황이 어떠했는가를 미루어짐작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있다 하겠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다른 장수들의 도움을 받아 승리를 거둔 드라마에 비해 이성계 개인의 역량이 압도적으로 두드러지고 있을 것이다.

하기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당시의 수많은 군벌 가운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같은 승리가 일개 변방의 군벌에 불과하던 이성계를 고려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당대의 대학자인 이색이 그를 위한 시를 지어 바쳤다. 이인임이 이성계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 또한 바로 이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이전까지 이인임은 이성계와 사돈까지 맺으며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바로 이 전투에서 조전원수로 참전하여 군략으로써 이성계를 보좌했던 정몽주(임호 분)의 역할도 상당했을 것이다. 정도전(조재현 분)을 위해 정몽주의 역할을 축소시킨 것이 못내 아쉽다.

아지발도를 죽이는 장면 역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상당부분 손질이 가해져 있었다. 말위에서 아군을 무찌르는 아지발도를 보고 이성계가 감탄하고, 아지발도를 사로잡아 항복시키려는 이성계의 의도에 이지란(선동혁 분)이 반대한다. 아지발도를 사로잡으려면 많은 사람이 다칠 것이다. 이성계는 마음을 고쳐먹고 아지발도를 죽일 요량으로 연거푸 두 발의 화살을 쏘아 아지발도가 쓰고 있는 투구의 투구끈 장식을 맞춘다. 어느 정도의 거리였는지는 모르지만 움직임이 격한 전장에서 잘 보이지도 않을 투구끈 장식을 그것도 활로 쏘아 두 번이나 연속으로 맞춘다. 그리고 화살이 들어가지 않는 중갑주를 두른 아지발도에게서 유일하게 화살공격이 가능한 얼굴이 노출되게 된다. 그것을 이지란이 다시 멀리서 화살로 쏘아 죽인다.

보기에는 드라마 쪽이 훨씬 역동적이고 이해하기도 쉽다. 열심히 달리고 힘껏 베고 그리고 날아올라 화살로써 투구끈을 쏘아 맞춘다. 이지란이 뒤따라 투구를 쏘아 떨어뜨리자 바로 앞에서 화살을 매겨 얼굴을 겨눈다. 그러나 사료에 기록된 내용대로라면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이성계는 아지발도를 살렸다. 역사는 이지란에 이은 또다른 이민족 출신의 맹장을 이성계의 측근으로 기록했을 것이다. 냉정하다. 삼엄하다. 그에 비하면 드라마는 뜨겁다. '고려사'의 기록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만큼 익숙한 때문일 것이다.

▲ KBS 제공
이해하는 부분도 있다. 원래 역사속 황산대첩은 우왕 6년인 1380년 9월 가을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촬영된 것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난 뒤다. 산이 얼어붙었고 지붕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왜구들이 고중에도 맞지 않는 도마루를 갖춰입고 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겨울에 기록에서처럼 알몸에 훈도시만 걸치고 칼을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진왜란 당시도 덕분에 조선의 겨울을 이기지 못한 많은 일본군이 얼어죽고 있기도 했었다. 한겨울에 산에서 진흙탕을 구를 수도 없고, 개발되지 않은 곳이 드문 현실에서 배경이 될 전장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지형도 한정되어 있다. 환경에 내용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성계가 아지발도를 죽인 곳도 기록에 있는 산정상이 아닌 평지다.

그래도 그동안의 사극들에 비하면 압도적일 것이다. 적절한 특수효과로 전장의 스케일을 최대한 재현해 보여주고 있다.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은 카메라 주위의 한정된 공간일 것이다. 그러자 적절한 카메라워크로 그것을 전부로 만든다. 특수효과에 의한 배경이 더해지면서 그곳에 수만의 병사들이 뒤엉켜 싸우는 전자의 모습이 재현된다. 조금 더 치밀하게 진형을 짜고, 조금 더 절제하며 전장의 살벌함을 재현해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창이 너무 짧고, 보기 좋은 검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그동안 바라고 또 바라왔던 장면들일 것이다. 비로소 제대로 된 전장의 모습이 드라마를 통해 보여진다. 드라마의 역사에 남을 것이다.

정도전이 가지고 있던 '맹자'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원래 송대 이전까지 맹자는 유학자들 사이에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유학은 공맹이 아니라 공순이었으며, 국가가 주도하는 말 그대로 통치이념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말 새로이 성장하기 시작한 사대부들의 생각은 달랐다. 지방에 근거를 두고, 권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랐으며, 나아가 국가정책을 자신들이 주도할 수 있기를 꿈꾸었다. 그리고 그런 사대부들에 의해 재발견되고 선택된 것이 바로 '맹자'였다. 어떤 권력이나 권위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백성이고, 백성을 위하는 천명이다. 그에 의해 군주를 바꾸고 왕조를 뒤엎는 역성혁명이 정당화되었다. 정몽주에게서 정도전에게로 바로 이 맹자가 건네진다.

정도전과 정몽주가 끝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점일 것이다. 하필 정도전이 삼봉재에서 가르치던 내용이 역설처럼 그것을 암시한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신하에게 임금은 오로지 한 사람 뿐이다. 임금과 신하를 인정과 의리에 근거한 절대적 관계로 이해한다. 한 번 임금이고 한 번 신하면 영원히 임금이고 신하다. 우왕과 창왕의 정통성만을 인정하지 못할 뿐 고려왕조의 신하였으니 자신은 영원히 고려왕조의 신하일 것이다. 그러나 임금이 임금같지 않으면 일개 필부일 뿐인데 왕조라 해서 다를 것인가. 공자 역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었다. 나라가 제역할을 못한다면 뒤집어야 한다. 정몽주는 정도전에게 맹자를 건네고 정도전은 그것을 가슴에 품는다. 상징적이지 않을까.

바로 이런 때 이인임(박영규 분)이 그저 간신이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느끼게 된다. 이인임의 말도 옳다. 전장에서 적을 무찌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먹고사는 문제일 것이다. 고려의 체제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관리들이다. 관리들에게 녹봉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조정이 관리의 생계를 책임져주지 못한다. 관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나아가 관리들이 동요하면 개경이 동요한다. 개경이 동요하면 고려가 동요한다. 아니 이 무렵이면 개경에도 지방에서 쌀이 올라오지 않아 식량난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정치가가 보는 국가란 군인이 보는 국가와는 다르다. 학자가 보는 국가와도 다르다. 이인임 자신이 행정관료이기도 하다. 당장의 희생이 안타깝더라도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승리를 서둘러야 한다.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소용없다. 전쟁에서 이겨도 외교에서 이기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하물며 외교를 잘하더라도 내정이 엉망이어서는 나라가 유지되지 못한다. 이인임은 고려의 구체제에 기생하며 권력을 누리는 권신이었을 것이다. 고려가 유지되어야 이인임의 권력도 유지된다. 고려왕실의 권위가 지켜져야만 자신의 권위도 지켜진다. 고려와 이인임은 공동운명체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려란 물론 고려왕조다. 고려의 조정이다. 고려왕실이 무너져도 백성이 남아있다면 고려는 망하지 않은 것이다. 아직 여기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성계에게 정도전이 필요한 이유다. 이성계도 최영(서인석 분)도 아직은 이인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인임을 넘어서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하다.

아무튼 드라마이다 보니 멜로도 빼놓을 수 없다. 아내와 결혼을 하고 첩과 사랑을 한다.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책임으로 한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필요가 더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첩을 들이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욕망이다. 정신적인 사랑이 되었든, 아니면 단순한 육체적 본능이 되었든. 양지(강예솔 분)가 살아있다. 그것도 정도전의 가까이에 있다. 만날 수 있을까? 그러나 정도전은 불교를 무척 싫어한다. 미륵사에 많은 빚을 졌다.

근래 보기드문 제대로 된 전투씬이었을 것이다. 예상과 물량에서 한계가 너무나 명백하다. 그것이 또 눈에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최대한의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열정과 노력이 있었다.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不爲也非不能也). 정도전의 대사를 그대로 돌려준다. 정확히 맹자의 말이다. 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믿고 보는 이유일 것이다. 설득당한다. 그만한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 개연성이다. 차라리 감동이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