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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2.06 09:19

감격시대 "도꾸의 눈물, 사는 게 목표고 꿈이다"

감정의 함정, 기억이 서로를 가두고 옭아매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난 말입네다, 오늘 사는 게 목표고 내일 사는 게 꿈입네다."

인정이고 의리고 번거롭다. 논리고 이치고 다 거추장스럽다. 산다는 것 이외의 나머지는 사치고 낭비다. 그렇게 살아왔다. 어려서 어머니마저 창병으로 잃고 고아로 세상을 떠돌면서. 당장 시궁창에서 썩어가는 밥풀이라도 먹어야 허기를 면한다. 썩은 것을 잘못 먹어 병걸려 죽더라도 오늘 살아야 내일 죽을 수 있다. 물론 내일도 살 것이다.

눈물을 흘린다. 은인이었다. 고아로 세상을 떠돌던 자신을 거두어 지금까지 길러주고 보살펴주었다. 자신을 속이고 화차패를 끌어들여 신정태(김현중 분)를 공격한 것을 알고 나서도 제 손으로 끌고간 도비패 앞에서 체면을 내세워 용서해달라 사정하고 있었다. 불곰(이철민 분)의 자존심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사실상 도비패의 보스 황봉식(양익준 분)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을 위해.

▲ KBS 제공
심지어 배신을 알고서도 자신의 칼에 기꺼이 목숨을 내주고 있었다. 죽일 수 없었다. 아버지를 죽였다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새삼 없던 정이 생겨날 리 없다. 그 순간 깨닫는다. 불곰이 아버지였다. 어머니를 지켜주었었다. 매맞는 어머니를 지키려 돌을 들고 한참 크고 사나웠을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했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믿고 의지했었다. 기대고 있었다. 불곰이 있었기에 험한 세상을 지금껏 버텨 올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불곰은 도꾸(엄태구 분)를 향한 염려를 놓지 않는다. 그는 진정 도꾸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서도 도꾸는 악착같이 버티려 한다. 자기는 틀리지 않았다. 잘못되지 않았다. 겨우 찾아낸 배신의 명분조차 눈물에 씻겨내려간다. 도비패 앞에 자기를 무릎꿇렸다고?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 상관없다. 그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그렇게라도 자기는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아버지같던 불곰을 제쳤으니 이제는 도비패까지 제칠 것이다. 일국회에 들어가 개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 떵떵거리고 살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나마 불곰에게는 주먹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질 것을 알면서도 시장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기에 그냥 물러나지 않고 일단 풍차(조달환 분)와 한 판 붙고 본다. 자기 모르게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도꾸를 도비패 앞에 자기 손으로 무릎 꿇린다. 저 대단한 일국회의 신이치(조동혁 분) 앞에서도 조금도 굽히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죽었다. 도꾸에 대한 인정 때문에. 일국회든 도비패든 누구의 밑으로도 들어갈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도비패의 황봉식에게는 조선인이라는 자각이 아직도 남아있다. 조직원을 마치 가족처럼 여기는 인정과 의리도 있다. 그래서 일국회에 맞서려 한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일국회의 뒤에는 일본제국주의가 있다. 조선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해 있다. 그러나 굽히지 않는다. 당장 목숨줄이 끊어져도, 그리고 설사 그것이 막내인 신정태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 할지라도 물러서서도 양보해서도 안되는 순간이라는 것이 있음을 안다. 황봉식과 도비패를 위기로 몰아넣는 이유다. 차라리 살 길을 찾자는 강개(지승현 분)의 외침이 더 솔직하다.

그러나 도꾸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자 어미는 갓 태어난 아이의 목을 손수 조른다. 당장 일을 나가야 하는데 돌볼 사람이 없으니 어머니는 역시 아이를 조용히 죽여줄 수 있는 전문가를 구한다. 그나마 아이의 입에 아편을 무리고 일을 나서는 어머니들은 인정이 남아있는 것이다. 굶주림에 지치면 아이를 솥에 삶기도 한다. 그것이 사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형제가 서로를 약탈하는. 지옥이 다른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세상이 바로 지옥이다. 불과 한 세기도 지나기 전의 이야기다.

자존심도 없다. 양심도 없다. 의리도 인정도 찾아볼 수 없다. 지옥을 견디려면 스스로 야차가 되어야 한다. 지옥을 견뎌내려면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수 없었던 불곰은 끝내 도꾸 손에 죽었다. 도꾸는 살 것이다. 살아야 한다. 일국회에 대해서도 당연히 충성심 따위 있을 리 없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먹을 것을 찾아 들판을 떠도는 유랑민처럼. 약탈할 곳을 찾아 바다를 헤매는 해적처럼. 그래서 그의 눈물이 더 애닲다. 절대 배신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배신하고서도 죽은 불곰을 위로하듯 자신을 위로한다. 그렇게 살아간다.

신정태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아니다. 그러나 김수옥(김재욱 분)에게는 자신이 필요하다. 김옥련(진세연 분)의 신정태를 향한 일편단심이 흔들리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차라리 신정태가 아예 자기에게 무심하다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닿을 듯 닿지 않는 마음이 그녀를 안달나게 한다. 지치게 하고 체념하게 한다. 자신과 마음을 나누고서도 여전히 잠꼬대로 가야(임수향 분)의 이름을 부른다. 잠시 가졌던 행복감이 절망으로 바뀐다.

신정태에게 김옥련은 빛이다. 기댈 수 있고 쉴 수 있다. 편안해지고 위로가 되어준다. 그래서 고맙다. 반면 가야는 어둠이다. 후회고 미련이다. 죄책감이다.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낙인처럼 영혼에 새겨져 있다. 과거의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그 순간에 시간이 멈춰 있다. 김옥련이 옳게 보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신정태를 사랑하고 있다. 신정태의 상태가 어떤지도 안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에 갇힌 짐승과도 같다. 가야라고 하는 기억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항상 누군가를 떠올리며 집착하는 것이야 말로 사랑의 다른 모습이지 않은가. 신정태는 결코 가야를 잊지 못할 것이다.

단서가 주어진다. 신정태와 가야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신정태와 김옥련의 관계에 대해서도. 모든 후회와 미련이 사라진다면, 자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신정태는 비로소 가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설사 가야를 다시 사랑하게 된다 할지라도 과거가 아닌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가야여야 할 것이다.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 중국대륙을 떠돌며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신정태이기에 그를 쉴 수 있게 하는 누군가는 무척 중요하다. 가야와의 관계가 긴장이라면 김옥련과의 관계는 휴식이다. 오랜 여행을 끝마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옥련에게 신정태는 꿈이다.

신이치가 정답을 말하고 있다. 가야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다. 바로 가야 자신이다.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찾으려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으려는. 그녀의 과거의 기억들이다. 신정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가야와의 과거에 구속되어 있다. 그의 사랑에는 희망이란 없다. 내일에 대한 기대 또한 없다. 그런데도 또다시 가야와 신정태는 서로를 구속한다. 그로부터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내일이 없다면 오늘 잘라내야 한다. 가야는 내일을 살아야 한다. 정작 과거에 구속되고 있는 것은 신이치 자신임에도. 가야를 위해서라도 신정태는 죽어야 한다. 신정태를 위해 가야가 죽거나. 그들은 악연이다.

드디어 액션드라마에 어울리는 긴장이 밀어닥친다. 멜로드라마를 위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역시 시작되려 한다. 지금으로 치면 신의주의 암흑가일 것이다. 조직들 사이에 위기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일본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일국회와 도비패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일개 밀수조직이지만 상대가 일본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있기에 민족적 사명까지 주어진다. 신정태는 자신의 숙원을 위해서라도 신이치를 이겨야 한다. 도꾸가 불곰을 배신하며 한바탕 요동치려 한다. 김옥련은 조금씩 신정태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있다. 이런 게 드라마라는 것이다.

도꾸의 눈물이 처절하다. 신정태의 신음이 애절하다. 그것을 듣는 김옥련은 안타깝다. 가야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신이치가 그것을 위태하게 지켜본다. 도야마 아키오(윤현민 분)의 눈도 가야를 향하고 있다. 죽어가는 이들과 또 그들을 죽이는 이들과 또한 사랑하며 사는 이들. 압록강이 얼고 다시 녹아 흐른다. 폭풍이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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