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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4.02.03 11:28

[리뷰] '또 하나의 약속', 대기업에 가장 인간적인 질문을 던지다

감정을 참는 박철민의 모습, 그것이 곧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영화 기사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응원한다', '이 영화 정말 강추한다' 등의 홍보성(?) 문구를 쓰는 것은 사실 조심스럽다.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보라'는 식의 이야기는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에 대해 좋은 글을 쓰고 그로 인해 독자들에게 영화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목적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관객에게 무조건 이 영화를 보라고 강요할 자격은 사실 없다.

그렇지만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정말로 응원하고 정말로 추천하고 싶다. 어쩌면 작금의 상황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비록 적은 숫자지만 영화관에서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이 없이도, 요란스런 홍보가 없어도 관객들의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자. 그리고 느끼자. 우리는 그렇게 '또 하나의 약속'을 2월 초에 하게 된다.

▲ 황상기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OAL 제공)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던 딸이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그 원인이 삼성의 안전불감증에 있다고 믿고 산재 판정을 받기 위해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삼성에 맞섰고 결국 세계 최초로 산재 판정을 받아낸 황상기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된 것은 먼저 한국에서 거대 권력이나 다를 바 없는 삼성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촬영 시작부터 개봉까지 전 과정을 거대 자본이나 거대 배급사가 아닌 관객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투자한 '제작두레'와 개인 기부로 이뤄냈다는 점이다.

'삼성을 건드렸다'는 이유 때문에 감독과 배우들은 본의 아니게 '외압이 두렵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지켜준 것은 바로 관객들이었다. 좋은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열망은 제아무리 삼성이 아니라 청와대라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약속'이 만들어졌다.

워낙 실화 자체가 극적이다보니 '또 하나의 약속'은 따로 극적인 장치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행여나 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이야기 전개가 다소 밋밋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밋밋한 이야기를 진심있는 이야기로 승화시킨 것은 바로 아버지 역을 맡은 박철민의 연기다.

'또 하나의 약속'의 박철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박철민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눈물겹게 연기한다. 자신의 감정을 참아내는 박철민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가슴 먹먹함을 느끼게 된다.

▲ 감정을 참아내는 박철민의 연기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OAL 제공)

잘 알다시피 박철민은 특유의 수다와 욕설로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던 배우였다. 그리고 관객은 그의 청산유수같은 말솜씨에 박수를 치며 웃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약속'의 박철민은 참고 또 참는다. 돈으로 사건을 덮으려는 '진성그룹' 이실장(김영재 분)에게 그는 '주먹감자'를 날릴 뿐이다.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출하는 박철민이 감정을 참는 모습은 곧 딸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겪는 수모조차도 참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다. 이게 바로 '또 하나의 약속'이 관객에게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무조건 삼성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진성반도체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들도 결국 피해자라고 이야기한다.

자신 또한 백혈병에 걸렸지만 회사가 해 준 것이 많기 때문에 빨리 나아 출근하기를 원하는 교익(이경영 분)의 모습은 우리가 그토록 욕하는 대기업이 바로 이들의 희생 때문에 이뤄졌다는 것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 희생조차 무시하는 대기업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있다.

대기업의 이런 비인간성을 영화는 '보편성'에 근거해 보여준다. 이 영화는 거대 기업의 잘못을 직접 이야기하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으로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더 큰 세력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사람들이 신음하는데 돈으로만 해결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경제발전'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신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냐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사람이 죽어도 아무 상관 없는 것이냐고.

▲ '또 하나의 약속'은 대기업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질문'을 대기업과 그를 비호하는 더 큰 세력에 던지는 영화다(OAL 제공)

'또 하나의 약속'은 치부를 드러내기보다는 감성을 담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쉽게 왜 영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지를 이해하게 되고 이 영화가 원하는 답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것이 곧 제작두레와 개봉으로 이어졌다.

관객이 동의하는 영화, 관객이 보고싶어하는 영화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보편성으로 모든 이를 뭉치게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갔던 길, 그리고 갈 길을 이 자리를 빌어 응원하는 이유다.

사족 : 만약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백혈병에 걸려 신음하는 삼성반도체 근로자들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3월에 개봉하는 홍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탐욕의 제국'을 기대해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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