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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1.01.28 16:44

'오늘 우리2' 옴니버스 4편, 가족의 해체와 고립을 돌아보다

돌이킬 수 없는 해체, 단절, 고립 등 다의적이고 함축적인 묘사가 인상적

▲ '오늘 우리2' 상영관 리스트(필름다빈 제공)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작년 영화사 필름다빈이 내놓은 단편 옴니버스 '오늘, 우리'는 과하지 않은 페미니즘의 시선이 곁들여져 있다. 보는 입장에서 역지사지가 상존하고 있다.

반면 지난 21일 개봉한 두번째 옴니버스 '오늘, 우리2'(제작/배급 필름다빈)는 이젠 돌아갈 수도 없는 해체된 가족, 이어지는 단절과 고립이 눈에 띈다. 12세 관람가로 공감할 이야기가 제법 된다.

'낙과',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갓건담', '무중력' 4편의 단편이 담긴 이 영화는 전체 러닝타임이 97분으로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주인공들의 직설적인 대화와 함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확증편향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런 영화가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봐도 모자라는 세상이니까.

▲ 단편 '낙과' 컷(필름다빈 제공)

먼저 첫번째 단편 에피소드 '낙과'(양재준 감독)는 은퇴 예정인 마트 직원 아버지 김종환(기주봉), 꽤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아들 도진(박세준)의 불통을 다루고 있다. 

안 그래도 아버지의 이혼으로 가족은 해체되어 있고, 엄마와 사는 누나 결혼식도 찾아가기가 민망하다. 이미 오래전에 단절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들 부자를 연결해주는 건 다름아닌 두 공간이다. 하나는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도서관, 다른 하나는 대충 밥 먹고 잠만 자는 집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좋든 싫든 하루 두번은 봐야만 하는 연결고리. 이것이 오랜 불통에 따른 단절과 고립을 그나마 가느다란 실처럼 연결해준다.

되는 일 하나 없는 자식은 여전히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며 구직 활동, 타의에 의해 내리막 길로 접어든 아버지는 마트 직원일 때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집으로 들고와 저녁 한끼를 떼우더니, 은퇴한 뒤에는 도서관에서 나무에서 떨어진 살구 낙과를 줏어온다. 

단편 '낙과'는 러닝타임이 25분으로 극중 소품으로 등장한 떨어진 살구가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매듭지었다. 다 부패하지 않아 살구향 만큼은 아직 남아있어 맛깔나는 모양새다.

▲ 단편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컷(필름다빈 제공)

두번째 에피소드 '아프리카에도 배추는 자라나'(이나연 감독)는 재개발 지역으로 곧 헐리게 될 엄마 집에 모인 세 남매 지혜(신지이), 지윤(손정윤), 지훈(함상훈)의 이야기다.

아프리카 오지로 떠난 엄마를 생각하면서 각자가 먹을 김치도 담그며 모처럼 한 끼 식사도 했지만, 여전히 비어 있는 엄마의 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 "이럴 때 엄마가 '짠' 하고 나타나주면 어떨까"하는 주인공들의 상상씬은 왠지 낯설고, 외롭다.

앤딩씬은 연극무대처럼 절제된 묘사가 인상적이지만, 러닝타임 29분. 곳곳이 비어있는 느낌은 지울 길이 없다. 그래서 아쉽다.

▲ 단편 '갓건담' 컷(필름다빈 제공)

세번째 에피소드 '갓건담'은 '오늘, 우리2' 단편 4편을 하나로 묶어 녹여낸 작품 같다. 가족의 해체, 단절, 고립 등 이 모든걸 받아들인 고등학생 이준섭(김현목)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식당을 하며 사는 엄마와 지방 건설현장에서 먹고 사는 아버지를 오가는 준섭은 왠지 의젓하면서도 그 나이에 어울리는 실리적인 인물.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빛을 내는 티셔츠, 낡은 스쿠터, 헬멧, 캠코더, 그리고 대형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건담은 이 단편에 처한 현실을 구석, 모서리까지 비춘다. 

주인공 이름과 똑같은 이준섭 감독의 세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러닝타임 23분이 매끄럽게 지나간다.  

▲ 단편 '무중력' 컷(필름다빈 제공)

마지막 에피소드 '무중력'은 '오늘, 우리2'의 화룡점정처럼 가볍지 않은 오프닝과 엔딩을 선사한다. 애니메이션으로 채워진 오프닝 시퀀스는 암흑과도 같은 시작, 조금씩 밝아지는 톤, 그리고 시각장애인용 점자들이 보태지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예고를 명확히 했다.

시각장애인 현희(한태경)는 단절과 고립이 익숙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소리로 세상을 느끼고, 점자로 외부세계와 소통한다. 모처럼 아빠 집에 모인 두 딸과 사위들.

현희 엄마를 떠나 보낸 현희 아버지는 신경질만 가득하다. 오기 힘들거나 바쁜 와중에 걱정을 해주는 두 딸이 대견스럽지가 않은 모양이다.

'무중력'을 연출하고 각본과 음악 작업에도 참여한 여장천 감독의 차기작이 궁금해진다. 비록 러닝타임 20분 남짓이지만. 장면 하나, 하나에 감독의 다재다능함과 예리한 시선이 담겨 있다.

▲ '오늘, 우리2' 메인포스터(필름다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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