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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14.01.22 15:11

[리뷰] 영화 디 벨레, 달콤한 파시즘의 유혹

나치즘 재해석한 독일영화, 현대사회 재조명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영화 '디 벨레'(물결, Die Welle, 2008)는 독일 고등학교 교실에서 '독재'를 주제로 수업하던 중, 담당 교사의 제안으로 학생들이 실험삼아, 자발적으로 공동체 조직을 결성해 서로를 감시하고 극단화되면서, '집단 파시즘'(나치즘)의 광기로 빠져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2008년 독일과 유럽극장가에서 상영돼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던 '디 벨레'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나치즘과 독재가 무엇인지 가르쳐준 영화다. (출처 : 콘티넨탈)

이 영화의 쟁점은 외압 혹은, 누군가 강조하지 않고도 16살에서 18살의 남녀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성한 단체가 극단적이고 광기어린 집단으로 돌변되는 상황을 그렸다는 것이다. 즉, 혼란한 사회와 불안전한 가정 속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이 선택한 '순수'와 '열정'이 어떻게 변질·왜곡되는지를 영화는 보여줬다. 

'디 벨레'는 2008년 독일 극장가에서 상영돼 약 230만명이 관람했다. 덧붙여 이 영화의 원작은 1967년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커벌리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집필된 작가 모튼 류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며 이 소설은 드라마로 각색돼 지난 1980년 미국 TV시리즈로 제작·방영됐다. 

우리는 어떤 선택과 성향으로 발전했는가?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이 리뷰를 읽고 있는 독자들은 과연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한 번 실험해보자.  

먼저 두 개의 '뮤직비디오'(이하 뮤비)와 간략한 가사를 올려본다. 독자는 이들 뮤비중 가장 마음에 드는 노래가 어떤 동영상인지 마음속으로 선택해 본다. 아울러 이 문장에 대한 부연 설명은 기사 말미에 서술하겠다.

첫 번째 뮤비는 아이슬랜드 유명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히트곡 '호피폴라'(Hoppipolla, 웅덩이로 뛰어들자) 라이브 버전(2007)이다. 두 번째 뮤비는 영화 '벌지 대전투'(Battle Of The Bulge,1965)에 나온 독일 전차군가(Panzerlied)이다.  

'호피폴라'(Hoppipolla, 웅덩이로 뛰어들자)

'Hoppipolla'(물웅덩이로 뛰어들자, 혹은 '희망노래') 가사 :

미소를 짓고 둥글게 돌며 손을 잡으니 세상이 희미해보여. 네가 보일 때만 빼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온몸이 젖었어. 고무장화 한 켤레 없는 우리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뛰어놀다 상상의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고 싶었지/  바람이 분다. 당신의 머리칼에서 향기가 나고, 난 힘껏 들이마셨어/ 부츠없이 물웅덩이로 뛰어들자. 모두 젖어도 좋으니../ 난 그 자리에 머물거야. 코피를 흘리는 난 앞으로도 계속 서있을 거야.

독일 전차군가(Panzerlied)

독일 전차군가 가사 :

폭풍이 불어닥치고 눈발이 휘날려도/ 태양이 우릴 향해 웃고 한낮이 타오르듯 뜨거워도/ 얼음처럼 차가운 밤 얼굴마저 먼지투성일지언정/ 우리 옳았다는걸 기뻐하라. 그래 우리 믿음을/ 우렁찬 굉음을 내는 우리 독일전차는 오늘도 적의 폭풍속으로 돌진한다!

"'팔꿈치 사회와 반대면 된다" 전체주의에 대한 토론 수업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대세인 독일 어느 고등학교, 어느날 교사 라이너 뱅거(유르겐 포겔 분)는 교장으로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천받는다. 이른바 '무정부주의'를 주제로 한  토론수업이다. 하지만 뱅거는 이를 비현실적인 토론이라며 거부하고, 새로운 수업 주제를 들고 나온다.

다름아닌 '전체주의' 혹은 '독재'에 대한 토론 수업이다. 여기서 라이너 뱅거 교사는 학생들에게 " '팔꿈치 사회'(Die Ellbogengesellschaft)와 반대면 된다"며, 수업을 위한 전제 조건을 제시한다. 또한 벵거 교사는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생각하는 '전체주의'가 무엇인지 질문하며, 향후 실행 방법을 모색한다. 

참고로 '팔꿈치 사회'란 '겉은 웃어도 바로 밑 팔꿈치로 서로를 밀며 경쟁하는 세대'를 말한다.

한국의 X세대와 유사하다. 시대배경은 1980년대로 협동단결을 강조하던 보수 베이비붐, 노동자·학생연대를 꿈꾸던 진보(68운동)뒤에 등장했다. 

이들은 단체활동을 싫어하고, 이기적인데다 美 자본주의 문화를 선호한다. 가령, 17살에 윔블던오픈 우승을 차지한 테니스 스타 보리스 베커가 그렇다. 돈은 독일에서 벌고, 해외를 오가며 흥청망청 쓰다 돈이 궁하면 다시 조국으로 찾아온 그가 대표적이다.

▲ 영화 '디 벨레'(물결)에 나온 두 장면을 보자. 먼저 위 사진은 영화속 독일고등학생들이 라이러 벵거 담당교사로부터 '독재'를 주제로 학습받기 전의 모습이다. 다음 아래 사진은 '독재'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조직을 만들고 변화된 모습이다.(출처 콘티넨탈)

극우단체 결성과 광기의 끝은 비참해..

뱅거 교사는 '팔꿈치 사회'는 지금의 '어른 세대'라고 지적하고, 가정과 사회에서 불만 있는 학생들에게 반대로 행동할 것을 권유한다. 동시에 하얀색 셔츠에 청바지로 통일된 '유니폼'으로 출석하라고 권고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조직이 '디 벨레', 즉 '물결'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부터 발생했다. 벵거 교사의 제안에 따라,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이탈자를 지목·감시하며, 협동단결이 우선과제인 단체(공동체)를 결성한다. 그뒤 '디 벨레' 조직원들은 점차 과감해지고, 수시로 모임이 개최됐고, 얼마 안가 학교는 물론, 도시 전체의 위협이 될만큼 확대된다. 지역 신문에 이들의 학습주제와 행동강령이 그대로 보도됐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수업시간을 통해 라이너 뱅거 교사는 "너희들이 조직한 '디 벨레'가 바로 전체주의다"라고 알렸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과 독재사회가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아니다'고 말하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들은 이미 그 조직체에 스며들었고, 그러한 구속력이 그들을 안정적인 보금자리로 탈바꿈시켜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영화 '벌지 대전투'에서 마틴 헤슬러 장성(로버트 쇼)이 신병들로부터 전차군가를 듣는 장면이다.

우리가 봐야할 미래는 영화 '디 벨레'가 아니다

위 두 개의 뮤직비디오를 본 이들에게 물어본다. 어떤 뮤비가 가장 마음에 드는가?

먼저 록밴드 시규어 로스의 뮤비 '호피폴라'는 아이슬랜드의 푸른 초원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유분방한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나라는 한 때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고, 금융산업을 부양하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모든 산업이 일시에 주저앉고, 이전의 사회로 돌아가는 중이다. 덕분에 2006년부터 증가한 범죄율이 최근 줄고, 이혼·폭력 등 사회문제가 상당 부분 희석됐다.

물론 아이슬랜드인의 삶은 바라보는 이에 따라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다.

그 다음 뮤직비디오로, 영화 '벌지 대전투'(Battle Of The Bulge,1965)의 독일의 '전차군가'(Panzerlied)가 있다. 역사적으로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이다. 또한 이 나라가 당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당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처럼 식민지도 없고, 자원마저 부족한 신생국가였다. 더구나 자국 유대계 부유층들의 자본 확대와 빈부 갈등이 지속되고, 아랍과 동유럽인들의 이민 물결로 일자리마저 줄어든 형편이었다. 따라서 당시 독일인에게 히틀러 일당독재와 전쟁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출구전략'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위 같은 '독일의 현대사',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아닌지? 다름아닌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환경과 매우 유사하다. 나열하면 매국노, 극우가 구분 안되는 '일베'(일간베스트), '외국인 혐오주의'(제노포비아 현상)가 확산된 2014년 대한민국은 낯선 나라다.

끝으로 독일영화 '디 벨레'를 보는 것도, 영화속 학생들의 면면을 쫓아가는 것 또한 독자들의 선택이다. 

과연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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