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04 07:45

나는 가수다 "YB가 보여주는 밴드란 이런 것"

지난 경연 1위 BMK 탈락하다!

 

밴드음악의 장점일 것이다. 물론 그냥 바로 만든 급조한 밴드의 경우가 아니다. 오래도록 손발을 맞춰 온 진정한 "밴드"에 대한 것일 테다.

과제곡인 나미의 "빙글빙글"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기타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트윈기타 가운데 도입부의 리프를 맡고 있었는데 기타줄이 끊어졌으니 사운드가 비어 버린다. 기타줄이 끊어진 세컨드기카 스코트가 연주를 그만두려 한 것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연주가 안 된다.

실제 초반 스코트의 기타 자리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아니 연주가 진행되는 내내 세컨드기타의 소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YB는 결코 멈추거나 구걸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 척 나머지 소리들로 스코트의 빈 자리를 채워 넣을 뿐이었다.

기타줄이 끊어지고 연주의 공백이 생겨도 아무나 그 자리를 채워 넣으면 그 뿐이다. 모두가 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야 하는지. 지금 들리는 소리를 채워주자면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기타줄이 끊어진 줄도 모르고 그저 소리가 이상하다며 윤도현은 YB의 공연을 끝까지 이어가고 있었다. 몇 번이나 무대가 끝난 듯 트릭을 써가며 어욱 알차게 무대를 완성시켜가고 있었다.

아마 미리 짜여진 대로만 부르고 연주할 수밖에 없는 솔로이스트들에게는 꿈과 같은 일일 게다. 그때그때 세션을 불러 함께 무대에 설 뿐인 솔로이스트들에게는 힘든 일일 것이다.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어떻게 연주하고 어떤 소리를 들려주는가를 몸으로 익히고 있어야 한다. 머리로 알아서가 아니라 몸이 반응해야 한다. 과연 한시적으로 모인 세션들에게서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YB와 같은 변칙적이면서도 완성도 있는 무대라는 것이 솔로이스트들에게 가능할 것인가.

하지만 밴드에게는 그것이 일상이니까. 악보 그대료 연주하고 부르는 밴드의 무대처럼 재미없는 것도 없다. 연습한 그대로를 들려줌으로써 완성도를 높이되, 이제까지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들을 통해 그 순간만의 특별함을 노린다. 또한 라이브란 온갖 돌발사태가 일어나는 곳이다. 기타줄이 끊어지는 정도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 역시 밴드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밴드가 갖는 강점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하필 또 바로 전일 토요일 심야에는 <TOP밴드>라고 하는 밴드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마치 <TOP밴드>에 출전 중인 밴드들에 밴드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전해주듯. 밴드란 살아있는 것이다. 라이브가 살아 있다면 밴드는 따라서 라이브에서 살아 움직인다. 때로 미친 듯 날뛰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 있다.

YB가 1위를 했다 했을 때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론따위는 상관없다. 기타줄이 끊어지고 여부도 역시 전혀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그 순간 YB가 만드는 앙상블에 어깨를 들썩이고 몸을 흔들던 느낌이다. YB의 무대에 함께 하는 듯한 충만감과 성취감이다. 그것이 라이브의 맛이다.

조관우의 "하얀 나비"는 솔직히 상당히 실망이었다. 장혜진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 넘쳤다. 주체하지 못한 감정이 곡의 흐름마저 깨고 말았다. 그나마 조관우의 경우는 목소리가 너무 청승맞기에 슬픔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히면 그야말로 신파가 되어 버리기 쉽다. 절제함으로써 더욱 깊어지는 것이 조관우의 목소리이며 말하는 한의 정서일 것이다. 슬픔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삭여 들려준다. 더구나 장혜진의 경우는 감정에 휩쓸리는 타입이 아니었고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옥주현은 조관우의 말처럼 맑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와도 같았다. 숲이니까 작은 개울일까?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옥주현의 목소리는 청아했다. 다정한 속삭임과도 같았으며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았다. 그래, 아마도 볕이 드는 숲 가운데 작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볕은 햇볕이 아닌 어스름한 달볕일 것이고. 풀벌레 우는 소리를 연주로 삼았을까? 이제까지 가장 나았다. 옥주현이라는 한 여자에 반하고 말 것만 같았다.

박정현의 "겨울비"는 김종서의 "겨울비"와는 전혀 다른 노래였다. 역시 남자가 겪는 사랑의 애절함과 처절함은 여자와는 다른 정서일까?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박정현의 정서 역시 한국인인 김종서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살아온 시간들이 달랐다. "겨울비"가 처음 실렸던 시나위 4집이 1990년에 나와싸. 김종서는 그 무렵의 사람이다. 박정현은 한창 어리다. 어색하지만 아름다웠었다.

김범수의 무대는 남자가 보기에는 불편한 무대였다. 너무 사랑스러웠을까? 남자가 남자에게 사랑스러움을 느껴 무엇하겠는가? 더구나 그는 얼굴만 믿고 음악하는 비주얼 가수의 한 사람이다. 원곡의 조심스러움이나 사려깊음과는 거리가 있지만 독특한 매력의 김범수만의 노래였다. 계속 반복해더 듣고 싶어지는 "노래"였다. 진정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수였다.

BMK의 경우는 "사랑하기에"의 재즈풍의 편곡이 매우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그 특유의 블루지한 느낌이 "사랑하기에"가 이런 느낌이구나 놀라게 한달까? 소울의 국모 다운 목소리의 끈적거림이 이정석의 비성과는 다르게 귀에 착착 달라붙게 만든다. 철저히 BMK화된 음악. 결국 그래서 지난 경선에서 1위였다가 꼴찌로 탈락하게 되었으니까. 아쉬움은 있지만 부끄러움은 없다. 7위를 할 만은 했지만 그러나 단지 숫자가 7일 뿐이다.

155분이라는 시간이 언제 어떻게 흘러갔는가 모르겠다.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취해 있다 보니 두 시간 넘는 시간이 순식간이다. 하나같이 훌륭한 가수들의 탁월한 노래가. <무한도전>에 이어 <TOP밴드>와 <남자의 자격>에서도 음악을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는 건 좋은 음악이 갖는 의미일 것이다. 좋은 음악은 언제나 사람을 감동시킨다.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항상 만족할 수만도 없다. 때로 가슴은 머리와 별개의 생물인 것을 안다. 머리로 듣는다는 것. 가슴으로 듣는다고 하는 것. 잘해서 감동이면 그 이상은 없다. 엄격한 것도 어느 클래스가 되면 서로에 대한 인정이고 배려가 된다. 그들은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하다.

마침내 지난 경연 1위에서 이번 경연 7위로 BMK 최종탈락. 과연 다음 가수는 누가 될까? 누가 빈자리를 채우게 될까? 스포일러는 피한다. 지금의 설렘을 놓치고 싶지 않다. 기다린다. 기대한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