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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1.19 08:56

정도전 "이인임 vs 정도전, 이성계 개경에 들어서다"

엇갈리는 두 남자, 역사의 한 장면이 지나가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영웅과 악인의 대립구도는 항상 사람들의 흥미를 잡아끈다. 원래 정도전(조재현 분)이 대든 상대는 이인임(박영규 분)이 아닌 경복흥(김진태 분)이었다. 정도전을 귀양보낸 것도 역시 경복흥이었고, 경복흥과의 사이를 중재하여 나선 것이 바로 염흥방(김민상 분)이었다. 그리고 이때도 역시 정도전은 염흥방의 호의를 거부하며 오히려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기왕에 대립할 것이라면 청렴 강직했다는 경복흥보다야 간신인 이인임이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명이냐? 북원이냐? 명이란 새로운 질서였다. 중화란 이미 한계에 이르러 있던 고려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북원이란 구체제였다. 원의 영향 아래에 있었을 때 고려의 구질서는 안정을 누렸었다. 모든 것이 혼란이었다. 원을 배제하면서 외침은 끊이지 않고 내치에 있어서도 수많은 문제들이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 KBS 제공

다시 원과 화친하여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명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일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당시 신진사대부들이 추구하던 성리학적 질서란 원래 원으로부터 배워온 것이었다. 이색이 성리학을 공부한 것도 원의 국립학교인 국자감에서였다. 이색의 보수적 성향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명에 왕이 시해당한 것을 고하여 명황제가 그것을 빌미로 군사를 일으킨다면 재상인 자신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북원과는 달리 명이란 고려의 구세력에 있어 현실의 위협으로써 다가오고 있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같이 손잡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동반자가 아닌, 언제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할지 모르는 적으로서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신진사대부에게 명이란 정체되다 못해 썩어가고 있던 고려를 일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인임이 김의를 사주하여 명의 사신을 죽이게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단지 이인임에게 거물의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 명과 북원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자는 거창한 명분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머지는 비슷하다. 최영(서인석 분) 역시 이인임의 탐욕스러움을 못마땅해하고는 있었지만 고려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이인임과 같은 노회한 정치가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이인임이 고려와 국왕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이인임이 머리였다면 최영은 칼이었다. 이색 역시 어느새 현실과 타협하며 안주하는 성향을 보였기에 이인임 집권기에 다시 관직에 나가 정당문학 판삼사사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역시 역사의 맥을 제대로 짚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이인임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최영은 과격하고, 이인임의 뜻대로 사대부들을 해산시키는 이색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최영의 충성심이나 이색의 학식이 고려를 바꾸는데 전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이유였다. 물론 여전히 이인임은 절대악으로 그들의 배후에 있다.

신진사대부들이 추구하는 성리학적 가치는 중화라고 하는 문명을 전제한다. 중화란 단지 특정한 민족이나 나라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명이 망하고 중화문화권의 여러나라들에서는 중화의 계승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한바탕 소동이 일고 있었다. 소중화를 자처한 것이 비단 조선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중화의 문명이란 북원의 그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고려의 현실과도 당연히 충돌하고 있었다. 중화란, 즉 중국에서 새로이 일어난 명이란 그런 점에서 신진사대부들에게 하나의 이념처럼 여겨지고 있었을 것이다. 명을 중심에 둔 새로운 국제질서는 신진사대부가 이루고자 하는 새로운 고려와도 일치한다. 조금은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인식하고 있던 현실이기도 했었다. 하기는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그같은 이유로 명과 손잡으려 하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상당한 반발이 예상되었을 것이다.

최영과 함께 이인임을 제거하기까지 이성계는 철저히 고려 권력의 변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여진인 기병까지 포함한 이성계의 사병은 이미 고려에서도 가장 정예로 이름나 있었다. 이성계가 그동안 거둔 전공 또한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임견미의 모욕에 모른 척 어수룩한 모습을 보인다. 이지란(선동혁 분)의 경솔함에 대해서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격한 제제를 가한다.

그러나 당시 이성계는 개경에 유력한 권문세족의 하나이던 강씨일족의 여인을 차처로 두고 있던 터였다. 중앙의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최영의 제안에는 한 발 물러서고, 이인임에 대해서도 낮은 자세를 일관한다. 후일 신덕왕후가 되는 차처 강씨(이일화 분)의 힐난에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견고함은 이성계가 이미 단순한 무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것이 새로운 왕조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권력의 중심에 다가가기 위한 감춰진 의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성계의 차처 강씨가 바로 유력한 권문세족인 신천 강씨의 딸이었다. 이성계의 동서가 신돈과 같은 영산 신씨로써 측근으로 있던 신귀였으니, 이성계까 신돈이 집권하던 시기 다른 무장들과 달리 별다른 곤란을 겪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러한 덕분이었다.

이성계의 큰아들 이방우는 이인임의 측근이자 간신열전에도 이름을 올린 지윤의 딸과 결혼했다. 이성계의 셋째아들 이방의는 다시 최영과 같은 일족인 최인두의 딸과 결혼하고 있었다. 최영과 11촌으로 먼 친척이었지만 문중이란 원래 촌수에 구애받지 않는다. 신돈이 최영을 폄출할 때도 최인두 역시 함께 처벌받고 있었다.

둘째 이방과는 역시 전통적인 명문이던 경주 김씨의 딸과, 넷째와 다섯째 이방간과 이방원은 충선왕대에 '宰相之宗'이라 불리우던 권문세족 여흥 민씨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무엇보다 이성계의 사위가 바로 이인임의 동새인 이인립의 아들 이재였다. 이인임과도 이성계는 사돈관계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변방의 무장의 행보가 아니다. 혼맥을 통해 이성계가 얼마나 당시의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당시 이성계의 위상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성계가 개경으로 불려 온 이유일 것이다. 그 전에 공민왕이 이자춘의 귀순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불안한 고려의 내정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이인임에게는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최영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또 다른 힘을 개경에 머물게 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힘을 가까이 두고 감시할 필요도 있었다. 그것은 고려의 중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이성계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졌다.

혼맥을 맺고 유력자들과 관계를 갖는다. 이성계가 성장하는데도 이인임의 비호는 필요했다. 이인임이 권력을 쥐고 있던 무렵 최영과 함께 고려의 전역을 누비며 전공을 쌓고 그 이름을 고려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이성계를 향한 이인임의 적의는 경계심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인임이 이성계를 받아들이게 되는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마지막에는 이성계에 의해 실각하고 만다.

단순히 청렴하고 강직한 것만으로는 의미없다. 엄격하고 완고한 것도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도리어 해가 될 뿐이다. 지혜로운 것도 자칫 현실에 영합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렇다고 섣부른 용기는 자신의 몸만 다칠 뿐이다. 아니 자칫 동문들마저 크게 다칠 뻔했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정치와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청렴강직했으니 중심이 없었던 경복흥과, 왕실에 대한 충성과 청렴한 성품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지만 그러나 주위를 살필 줄 모르는 최영, 그리고 지혜로운 만큼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이색, 여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유배를 떠나고 마는 정도전까지. 정몽주가 보여주는 것이 없다. 이인임의 정도전에 대한 평가는 원래는 정몽주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라이벌조차 되지 못한다. 아쉬운 부분이다. 무엇이 고려를 바꾸는가. 그렇다면 어떤 것이 고려를 바꿀 수 있는가. 무엇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정도전이 이인임의 라이벌이 된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제는 삭탈관직까지 당하고 유배를 떠난 정도전이 이인임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를 위해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그를 위해 그토록 천방지축 좌충우돌 날뛰었을 것이다. 유배지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영웅에게는 고난이 필요하다. 이성계와의 짧은 만남이 있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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