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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영화
  • 입력 2014.01.17 15:40

[리뷰] '남자가 사랑할 때', 신파도 약간의 설득이 필요하다

의도된 이야기가 오히려 감동 방해, 황정민 곽도원 남일우의 연기는 미덕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우리가 흔히 '신파'라고 말하는 신파극(新派劇)은 본래 일본에서 들어와 1910년부터 1940년대까지 유행한 하나의 장르였다. 당대의 풍속과 함께 사람들의 슬프고 억울한 이야기를 소재로 과장된 감정을 담은 대사와 행동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 바로 신파였다.

이 신파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먹힌 이유는 바로 당대의 슬픈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경우 기생이기에 천대받아야 했던 홍도의 가련한 삶이 당시 일본의 압제에 괴로워하던 우리들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기에 관객들은 홍도의 비극에 동조하며 눈물을 흘렸다.

최근에 '신파'라는 말은 판에 박힌, 눈물샘을 억지로 자극하는 뻔한 내용의 작품을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신파는 여전히 우리에게 매력적인 장르다.

지고지순한 사랑,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눈물, 주인공의 비극 등은 역시 판에 박힌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되고 내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결국 우리는 고개를 숙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슬픈 이야기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포스터(사나이픽쳐스 제공)

지난해 내놓는 작품마다 화제와 흥행을 가져오며 일약 지난해 1위 배급사로 떠오른 NEW가 올해 처음 선보이는 '남자가 사랑할 때'는 최근 실패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보고싶어하는 멜로에 황정민이란 배우가 들어온 영화다.

이 영화로 데뷔한 한동욱 감독은 과거 황정민과 '부당거래', '신세계'를 함께한 이다. 그래서 이들이 멜로를 만들었다는 것에 다소 의아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계속 실패해서 이제는 나오지 않고 있는 멜로영화를 다시 한 번 살려보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만들어냈다. 그 제목이 '남자가 사랑할 때'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당연히 이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지만 여자보다는 남자가 주가 되는 '남자 이야기'다.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채무자를 윽박지르며 돈을 받아내는 일을 하는 태일(황정민 분)은 나이 40이 되어도 형 영일(곽도원 분)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사경을 헤매는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병원을 난장판으로 만들다가 그의 딸인 호정(한혜진 분)을 만나게 된다.

신체 포기 각서를 받아낸 호정의 얼굴을 본 태일은 묘한 감정에 빠진다. 급기야 태일은 자신을 만나줄 때마다 채무를 면해주겠다는 조건을 달며 만남을 가지고 두 사람은 조금씩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 태일(황정민 분)은 호정(한혜진 분)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서서히 변화한다(사나이픽쳐스 제공)

'남자가 사랑할 때'는 주인공을 누구도 살갑게 만나주기 싫어하는 사채업자로 정하고 미래도 없이 막 살아가는 이가 사랑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 중심엔 역시 황정민이 있다. 다른 영화 속 건달 캐릭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도 그 역할을 황정민이 하면 새로운 느낌이 난다. 확실히 황정민은 평면을 입체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황정민의 뚝심만으로 밀어붙이기에는 힘이 딸린다. 담담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긴 하지만 영화는 점점 '신파'의 유혹에 서서히 걸려들고 마침내 '신파'로 영화를 이끌어낸다. 황정민의 저력이 보이긴 하지만 그 저력이 신파로 둘러싼 영화를 구원해내지는 못한다.

▲ 거칠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 곽도원(사나이픽쳐스 제공)

영화는 뒤로 갈수록 의도된 이야기, 의도된 결말, 그리고 의도된 눈물 짜내기로 점철되면서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한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태일을 죽도록 미워한 호정이 다시 태일에게 돌아오는 과정도 설득력있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사람들이 여전히 신파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식의 이야기로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의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감도 결국은 어느 정도의 설득을 필요로 한다. 단순히 극적 장치만 나열한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상황을 관객이 이해시키도록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성공한 것도 관객의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그것을 놓쳤다. 그 부분이 많이 아쉽다.

▲ 두 사람이 다시 사랑을 이루는 장면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사나이픽쳐스 제공)

그래도 이 영화는 나름대로의 미덕이 있다. 역시 황정민이란 배우가 연기한 건달의 모습, 여기에 거칠어보이지만 속 깊은 모습을 보여준 곽도원의 한 마디, 그리고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슬프게 보여준 남일우의 표정. 이 영화가 만약 관객의 호평을 받는다면 상당수는 이들의 공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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