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1.13 07:43

정도전 "역사가 아닌 드라마, 대중을 위한 선택"

종 4품 정도전이 종 1품 이인임의 멱살을 잡는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이건 무리수다. 아무리 평소 감정이 좋지 않기로 신하로써 어명을 받들고 온 관리의 멱살을 잡는가. 하물며 자신은 종4품 전의부령이고, 상대는 종1품 수문하시중이다. 나라에 해악을 끼치는 간신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칼을 빼들 일이었다. 기껏 멱살을 잡는다고 간신이 권력을 내려놓겠는가? 아니면 마음을 고쳐먹겠는가?

하기는 선죽교에서 조영규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고려말 신진사대부의 수장은 다름아닌 정몽주(임호 분)였을 것이다. 이성계(유동근 분)가 낙마하여 병석에 누운 틈을 타 이성계의 무리들을 호되게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사대부는 물론 군부에 이르기까지 정몽주에 대한 신뢰가 깊었기 때문이었다. 조야에 신망이 높았고 백성들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학자로서도 뛰어났지만 행정가로서도, 외교관으로서도, 심지어 이성계와 함께 수많은 전장에서 군공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그런 정몽주조차 정도전(조재현 분)을 빛내기 위한 엑스트라로 보인다. 정몽주마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부분을 정도전은 너무나 우습게 꿰뚫고 있다. 세상은 정도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 KBS 제공

물론 이해한다. 드라마의 제목은 '정도전'이다. '정몽주'도 아니고, '최영'도 아니고, '이인임'은 더더욱 아니다. 정도전이 중심에 놓여야 한다. 정도전과 전혀 상관없이 돌아가는 고려말의 정세조차 정도전을 중심으로 다시 재구성되어야 한다. 정몽주의 활약도, 이인임의 전횡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고려말의 혼란스런 상황들조차도, 결국 정도전을 중심으로 다시 재구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마치 구경꾼처럼 전혀 현실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훈수를 반복한다. 혼자서 다른 시대를 사는 듯 동떨어진 행동을 보인다. 정도전만 사라지면 고려말의 역사가 흐르다가 정도전이 등장하는 순간 '정도전'이라는 드라마가 되어 버린다. 어쩌면 칭찬이다. 그만큼 드라마가 보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편하다. 단지 그뿐.

나가추가 고려를 침략한 것은 공민왕 11년, 그리고 이때 이성계에게 함흥평야에서 크게 패한 뒤 고려와 화친하여 삼중대광사도라는 관직까지 받고 있었다. 특히 자신을 패퇴시킨 이성계의 무략에 감복하여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나가추는 고려를 침략하려 하고 이성계는 그를 비난하며 맞서 싸우려 하고 있다. 원이 쇠퇴하자 스스로 행성승상이라 칭하며 독자적인 군벌로 거듭난 뒤 팽창하는 명에 맞서 북원과 다시 연계하려하던 중대한 시점에 말이다. 여전히 북원과 전쟁중이던 명의 입장에서 나가추는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중대한 위협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름도 알려진 나가추와 맞서고 있으니 이성계도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동북면의 군벌로써 막강한 적과 맞서 싸우는 위엄을 보인다. '드라마'인 것이다. 

친명이냐 친원이냐는 단순히 누구와 손잡을 것인가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려내부의 권력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이었다. 권문세족이란 원래 원에게 협력하며 세력을 키워온 고려의 핵심지배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명은 원을 몰아내고자 군사를 일으킨 이들이 세운 나라다. 여전히 전쟁 중이고 원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이 깊다. 원에 사대하게 된다면 그같은 명의 입장이 고려의 내정에도 깊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권문세족을 약화시킬 목적이라면 명과의 관계를 통해 그들을 압박할 필요가 있었다. 최영(서인석 분)이 결국 친원파의 손을 들어준 이유였다. 자주라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가 아닌 기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인임(박영규 분)은 권문세족의 대표자였다.

명에 사대함으로써 기존의 권문세족이 누리던 기득권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명을 받듦으로써 명을 중심으로 한 중화질서에 고려를 편입시키게 된다. 중화란 문명이며, 문명은 곧 유학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리학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려는 문명사회여야 한다. 그리고 그같은 문명사회를 이끄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들, 사대부들일 것이다. 물론 명에 사대하여 명을 중심으로 한 중화질서에 편입함으로써 명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목적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명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다면 역시 최영과 같은 군부의 힘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인임을 제거하고 최영이 여전히 북원과 연계하여 명과 대립하려 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친원이냐 친명이냐는 기존의 권문세족의 기득권인가, 아니면 소장파의 신진사대부인가 하는 고려의 주도권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간의 명분싸움이기도 했었다. 명의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와 원과의 오랜 감정은 그같은 서로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갈수록 명에 유리해지는 전황과 맞물려 끝이 정해진 싸움이기도 했다. 결국 명이 승리했고, 나가추 역시 명에 투항했으며, 고려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명이 주도한 새로운 질서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질서에 편입되는 것이 고려인가 조선인가 하는 싸움이 남게 된다. 명과 원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겠다는 것은 드라마에서 묘사된 대로 단지 명분에 불과하다.

고작 열 살 남짓한 아이를 세워놓고 사납게 몰아친다. 적이 왕이라 하여 봐주겠는가. 그러나 왕이 직접 칼을 들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모든 것은 끝난 뒤일 것이다. 왕을 적으로부터 보호하라고 군은 존재하는 것일 터다. 최영이 나서서 왕이 칼을 들고 싸우기 전에 병사를 이끌고 적을 막아야 한다. 왕이 칼을 들어야 할 상황이면 왕의 신병을 적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적을 하나 더 베는 것보다 차라리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라도 적이 왕의 신병을 확보하여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충신이라기보다는 무식하고 난폭한 일개 무부의 모습이다. 동탁이 바로 저러했을까. 역시 드라마적인 재미를 위한 무리수일 것이다. 과연 재미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결국 드라마다.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도 그를 위해 존재한다. 실제의 인물들 역시 그를 위해 재구성된다. 나하추는 다시 우왕이 즉위하고 고려를 공격하려 한다. 정몽주는 정도전의 뒤로 물러난다. 정도전은 당당히 권신 이인임의 멱살을 잡는다. 최영은 어린 우왕에게 칼을 들고 적과 맞서라 다그친다. 역사의 첨예함을 아는 사람에게는 너무 쉽고 단순하다. 뻔히 읽히는 도식적인 구도와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나마라도 어디인가. 만족하고 본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18년 전 역시 KBS의 대하역사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아들 이방원으로 출연했던 유동근이 아버지 이성계를 연기한다. 그리고 이방원의 의형제이던 이숙번을 연기했던 선동혁은 다시 이성계의 의형제인 이지란을 연기한다. 무학대사역의 박병호는 오히려 거꾸로 나이가 들었다. 오랜만이라 반갑다. 드라마 외적인 재미다. 비슷한 시대인 탓이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