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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1.12 10:18

정도전 "영웅과 악인, 역사가 쉬워지다"

드라마를 위한 장치, 절대악 이인임이 완성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선과 악으로 나누고 나면 세상일이란 참 쉽고 단순해진다. 이쪽은 좋은 편, 저쪽은 나쁜 편, 따라서 이쪽이 하는 일은 모두 옳고, 저쪽이 하는 일은 모두 그르다. 이쪽이 하는대로 따르는 것이 정의이고, 저쪽이 하자는대로 하는 것은 악이다. 이쪽이 이기고 저쪽이 지는 것이야 말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악은 배제되어야 한다.

이인임(박영규 분)과 최영(서인석 분)은 한때 긴밀한 정치적 동지 관계였었다. 두 사람 다 권문세족이었고, 친원파였으며, 정치적으로도 보수파에 속했다. 이인임의 정치력과 최영의 군사력이 더해졌기에 공민왕(김명수 분)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고려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인임은 탐욕스러웠지만 노회한 정치가였고, 최영은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군부의 수장이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왜구의 발호로 도성인 개경마저 식량이 부족하던 최악의 위기에서도 고려는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이 두각을 나타낸 것이 또한 이성계(유동근 분)였다.

▲ KBS 제공

최영이 이인임을 공격하여 실각시킨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물론 이인임과 그 일파의 전횡이나 부정부패가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왕권을 넘보는 권신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던 우왕의 선택이 더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탐욕스러운 이인임을 대신해 결벽할 정도로 왕에게 충성을 바치던 최영을 선택했다. 자신이 누리는 권력이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기에 우왕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최선을 다해왔지만 권력의 비정함은 그런 이인임을 비껴가지 않았다. 공민왕에 의해 실각할 위기에 놓여있던 드라마 초반의 상황이 곧 우왕에 의해 이인임이 실각하던 당시의 상황과 유사할 것이다.

홍륜의 반역을 미리 눈치채고 그로 하여금 공민왕을 죽이도록 부추겼다. 이인임을 전형적인 간신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그보다는 홍륜에 의해 공민왕이 살해당하고 혼란스럽던 고려의 내정을 빠르게 수습하고 안정시킨 공을 더 높이사야 할 것이다. 명덕태후(이덕희 분)와 경복흥(김진태 분)등이 주장하던 종친 가운데 왕을 세우기보다 아직 어린 우왕을 즉위시킨 것 역시 공민왕의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민와에 대한 충성심일 수도 있고, 혈통이야 말로 당시의 혼란을 한 번에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명분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악으로서보다 당시 고려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던 유능한 권신이었다면 이후 보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전개가 가능했을 것이다. 고려의 한계란, 고려가 가지고 있던 모순이란 비단 몇몇 개인의 일탈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인임이 악인으로 설정됨으로써 고려의 모든 문제는 이인임 개인의 악으로 귀결되고 만다. 이인임을 몰아내자.

최영이 어린 우왕(정윤석 분)을 보고 실망하는 장면도 많이 무리수였다. 왕으로서의 정통성은 태산같은 위엄이나 추상같은 호령에 있지 않다. 무장을 갖추고 자신을 노려보는 상대를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에도 있지 않다. 왕의 후손이기에 왕이다. 설사 왕으로 즉위하지 않았더라도 왕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신하된 자로써 당연히 최선을 다해 그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신하가 왕을 고른다. 신하로써 왕의 자질을 시험하고 판단하려 한다. 그래서 우왕이 왕으로서 능력이 부족하다면 무엇을 어쩌려는가. 그것도 고작 10살 남짓한 어린아이에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최선을 다해 보필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인 것이다. 아직 어리니 가르치고 이끌어주면 된다. 차라리 이성계가 그랬다면 이해라도 된다. 최영은 충신이었을 터였다. 우왕의 미욱함보다 최영의 불손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실패였다.

어차피 정도전(조재현 분)따위 없어도 고려의 조정은 알아서 잘 돌아간다. 그동안 해 온 대로 여전히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정몽주(임호 분)도 아닌 정도전과 같은 미관말직 따위 고려의 국정에 전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잘 돌아가는데 그게 다시 문제다. 모두가 문제없다 여기는데 그것이 바로 문제가 된다. 그러나 모두가 크게 문제가 없는데 오직 이인임만이 문제다. 이인임과 그 주변만이 문제가 되어 고려에 문제가 생긴다. 그나마 어째서 정도전이 당대에 그다지 크게 인정을 못받았는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올곧은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라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 설득할 수 있는 친화력이나 융통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두를 불편하게 할 뿐인 인사라면 정치가로서 실격이다. 치기어린 옹고집이야 말로 그를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물론 픽션이겠지만.

정치가로서 성장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부족한 정치력을 대신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직접 정치를 하지 않더라도 그 누군가가 대신해서 정치를 하게 된다. 단지 자신의 식견과 견해를 빌려주기만 하면 된다. 철저히 참모로써 자리매김한다. 아무런 정치적 부담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누군가에 전하기만 하면 된다. 이성계를 만나는 이유였을까? 설마 이성계와 정치적인 거래를 하거나 줄다리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정몽주의 역할이다. 그러한 한계가 결국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만든다.

정도전 영웅만들기에 이어, 이인임 악인만들기가 마무리된다. 역사가 너무 쉬워진다. 나쁜 놈이 하나 있고, 그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해서 나쁜 일들이 생겼다.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그래서 영웅이 나타나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고려 그대로는 왜 안되는가, 이인임을 제외하고 크게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데 그 또한 모순이다. 정몽주가 옳다. 이인임만 아니면 고려는 문제가 없다. 조선건국에 당위란 없다. 정도전이 조선을 세우고자 한 것이 단지 이씨로써 왕씨를 대신하고자 함이었는가. 역설일 것이다. 한계다.

기존의 간신 이인임에 하나를 더한다. 작년 SBS의 드라마 '대풍수'에서는 이인임이 직접 공민왕을 죽였다. 이번에는 노회한 정치가로서 음모를 꾸며 공민왕을 죽음으로 내몬다. 더 극단적으로 몰아간다. 더 큰 악을 만든다. 더 큰 악에 맞서는 더 큰 영웅도 만든다. 드라마는 역시 단순해야 한다. 조금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스케일큰 드라마를 기대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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