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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수빈 기자
  • 문화
  • 입력 2020.10.09 10:20

[박수빈의 into The book] #2.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

- 도서 ‘울림’ 신동기 저자, 많은 이들의 아버지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는 ‘사랑’

[스타데일리뉴스=박수빈 기자]

▲ 도서 '울림'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미덥고 따뜻했던 아버지가 안 계신 이 세상이 문득 낯설어 갈피를 못 잡고 서성였습니다’

이해인 수녀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추도사에서 쓴 말이다. 종교와 사상의 차이를 떠나 이 땅 많은 이들의 아버지였던 추기경이 예의 환한 웃음을 남긴 채 떠났을 때 대한민국은 깊이 추도했다. 그가 종교와 사상을 떠나 모든 이에게 존경받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가톨릭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 특히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역’이자‘운동권 학생들의 소도(蘇塗)’였다. 그리고 그 구심점 한가운데 추기경 김수환이 있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학생들이 경찰의폭력적 시위진압을 피해 명동성당으로 들이닥쳤는데, 학생과 경찰 간에 투석과 최루탄 공방이 3일 동안이나 이어지면서 성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시위 학생들을 응원하는 넥타이 부대가 등장하고 젊은 신부들 40명이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 김수환 추기경

초조해진 정권은 성당 내 경찰병력 투입을 통한 강제연행 작전 준비에 들어간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추기경은 정부 고위당국자에게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팽팽한 기 싸움 끝에 마침내 농성 4일째 경찰병력 이철수하고 안전귀가를 보장받은 학생들은 성당이 마련한 버스에분승해 학교로 돌아가 해산한다. 분수령을 넘으면서 시국은 노태우의 6·29 선언과 함께 직선제 개헌 수용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민주화운동 한가운데 있었다고 해서 김수환 추기경이 존경받는 이유는 아니다. 그는 주교직과 대주교직에 오를 때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로 정하며 “우리는 ‘너희들이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를 생활로써 증거 해달라’고 하는 사회 요구를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교회는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뜻은 세상 한가운데 있는 교회가 세상사에 무관심하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사목 표어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진다. 인권이 탄압받고 언론 자유가 질식당하고 노동자가 억압당하는 곳이라면 추기경은 그 어디든 발 벗고 나선다.

▲ 출처 Pixabay

추기경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입에 많이 올린 말이 ‘사랑’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린토 1서 13장의 ‘사랑의 송가’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백했다. “어머니가 보여준 사랑처럼 ‘모든 것을 덮어주고, 믿고 바라고 견디어내는’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다”고. 자신의 삶을 통째로 당신의 주님과 이 시대의 이웃들에게 내주며 무소유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당신이 내어준 그 사랑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추기경은 삶의 마지막 순간 이 시대를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아울러 못내 아쉬웠던 것을 당부한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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