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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칼럼
  • 입력 2013.12.28 13:32

철도노조 연봉논란과 사람이 공짜인 사회

대중이 철도노조의 임금과 노동환경에 분노하는 이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남성들이 여성직원을 채용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잔업과 야근이다. 실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잔업과 야근을 하는 비율이 낮다. 직장생활을 하려면 잔업과 야근은 필수인데 그것을 꺼린다면 함께 일하기 힘들다. 잔업과 야근은 너무 당연하다.

얼마전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대표 이정근)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내용이 발표되었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6명은 일상적으로 야근을 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다시 65% 정도는 주말에까지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다. 야근을 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할당된 업무가 과중해서(55%), 그리고 야근을 하는 10명 가운데 7명은 야근수당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었다. 바로 여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결국 야근을 하는 것은 정해진 업무시간 안에 일을 마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의 양은 같은데 정해진 업무시간 안에 일을 마치기 위해서는 당연히 추가노동력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업무시간이 끝나고도 20%의 일이 남았다면 산술적으로 20%의 인력을 더 고용하면 업무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직원이 10명이라면 2명을 더 고용해서 일을 나눈다면 정해진 시간 안에 여유있게 일을 끝마칠 수 있다. 다시 말해 업무시간이 끝나고도 휴일까지 20%를 더 일을 시키면 2명 분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야근수당은 커녕 심지어 저녁식대조차 받지 못하는 직장인이 절반을 넘어서는 이유일 것이다.

사람이 자원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사람이야 말로 유일한 자원이다. 사람이란 원래 매우 비싼 자원이다. 키우고 가르치고 훈련시키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유지하고 관리하는데에도 상당한 재화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사람밖에 없다. 다른 것은 없다. 사람이 유일한 수단이 된다.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절대화된다. 도구가 된다. 다행스럽게도 사람은 고장나기 전까지 사용하는데 더 이상의 추가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이 가장 값싼 수단이 되어간다. 기존의 사람이 고장나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더구나 인신을 다른 대상에 귀속시키는 전근대의 유산으로 인해 인격이고 존엄이고 없는 단지 대상에 불과하게 되어 버린다. 그저 편리하고 유용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다. 단지 수단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사용하려 한다. 업무시간이 끝나고 회사 밖에서의 개인의 삶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로지 수단으로서 생산에 종사하는 동안에만 의미가 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개인의 사정을 철저히 무시된다. 도저히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주어져도, 그래서 도저히 그것을 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여도, 그래도 일단 시키면 어떻게든 해내야만 한다. 그것이야 말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에 실패하면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 모든 의무와 책임은 개인에게로 귀속된다. 그것이 자신의 본질이다. 아무 거리낌없이 잔업에 야근을 시키고 그 댓가조차 지불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다. 자신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다. 자신마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상인 것이다.

최근 철도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이슈들이 뜨겁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철도공사 노동자의 임금일 것이다. 철도공사의 비용대비 인건비의 비중일 것이다. 철도공사 노동자의 임금을 지금보다 더 줄일 수 있고 그런 만큼 더 효율적인 경영도 가능할 것이다. 단지 철도공사 노동자들이 받는 연봉만을 이슈로 삼는다. 그들이 얼마나 고되고 중요한 일을 하는가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백수천의 목숨이 바로 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휴일에도, 모두가 고향에 가는 명절에도, 깊은 심야에도 기차는 다닌다. 기차가 종착역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기관사는 잠시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정비사가 잠시 긴장을 푸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비숙련 기관사나 정비사에게 목숨을 맡기고 싶은가? 아주 적은 임금과 최소한의 복리후생으로 적성과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모두 떠나버린 나머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안전을 맡기고 싶은 것인가? 사람이 부족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열차를 운전해야 한다. 일이 너무 많아 꼼꼼히 살펴야 할 것도 대충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면 그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근속연수 19년이란 철도에 대해 구석구석 알게되는 시간이 19년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더 많은 가능성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도 그것이 못마땅하다. 철도노동자는 더 적은 임금을 받고 더 자주 교체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지금 수준의 안전과 안락을 보장받아야 한다. 철도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에 대한 불만의 이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니 단 하나 사람은 공짜다. 밥만 먹여주면 일한다. 입히고 재워주면 일한다. 죽을 때까지 일한다. 죽는 그 순간까지 일해야 한다. 과거 제국주의시대 제국주의의 주체는 다름아닌 유럽의 시민들이었다. 그래서 시민제국주의라 부른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제국주의를 신봉하고 실천한다. 시민 자신이 자본가가 된다. 스스로 자본가가 되어 노동자인 자신을 착취한다. 높은 임금을 경계하며 비용이 커질 것을 두려워한다. 더 낮은 임금을. 더 낮은 처우를. 더 낮은 비용을 위해. 시민 자신이 임금의 상승을 반대한다. 그래야 자신이 더 낮은 임금으로도 더 값싸게 소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이다. 야근을 줄이면 그 만큼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잔업을 없애고 업무시간 안에 모든 업무를 끝내려면 그만큼의 더 많은 인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취업난이라고 말한다. 일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일자리를 줄이려 한다. 효율을 이유로 철도노동자의 수를 줄이고 임금을 낮추려 한다. 근속연수를 줄이려 한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어떻게 될까? 그러나 자기 일이 아니다. 철도의 비용이 낮아지면 자신이 철도를 이용하는 비용 역시 낮아질 것이다. 그것이 정의다. 시민자본주의다. 철도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중이 불만을 가지는 이유다. 저들은 더 값싸져야 한다.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룬다. 그보다는 철도공사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환경에 대한 대중의 시선들이 더 불편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이용하는 철도다. 자신이 탄 기차의 안전과 안락을 책임지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누리는 것들에 하나같이 너무나 냉정하다. 사람은 공짜다. 시키면 일한다. 일도 잘해야 한다. 그래서 잔업에 야근을 시킨다. 휴일에도 일을 시킨다. 댓가는 없다. 현실을 대한다.

책임이 있는 곳에 권한도 있다. 의무가 있는 곳에 권리도 있다. 역할이 있다면 당연히 댓가가 따른다. 사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다. 공짜는 없다. 사람마저도. 사람이 너무 하찮았다. 너무 값싸게 쓰였다. 철도노동자는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하는 이들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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