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정수경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3.12.17 09:44

[정수경 아트칼럼] 현대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11)

명상의 창 : 독일 뮌헨 메쎄 박람회장 기도실의 스테인드글라스

▲ 알렉산더 벨레스첸코, 독일 뮌헨 메쎄 박람회장 기도실의 스테인드글라스 ⓒ 정수경

[스타데일리뉴스=정수경 칼럼니스트]나의 작품이 벨레스첸코의 작품으로 인식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품이 환경을 풍부하게 하고 주어진 건축 공간에 정확하게 잘 어우러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국의 건축 유리 작가 알렉산더 벨레스첸코(Alexander Beleschenko, 1951~ )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이 건축적 예술 작품으로서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가장 멋지게 설명한 말이라는 생각에 매 학기 강의에서 벨레스첸코의 이 멘트를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한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 색을 한껏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은 당연한 일인데 작가의 개성보다는 주어진 건축공간에 한 몸이 된 듯 조화로운 작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는 작가의 겸허한 작업 태도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낮은 곳으로 임하는 자세로 자신의 색깔을 절제한 작업임에도 우리는 그것이 벨레스첸코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과의 조화를 우선시하는 작품 속에도 늘 작가의 DNA는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벨레스첸코를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은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180도 바꾸게 한 계기를 마련해주었기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작가이다. 벨레스첸코의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독일 뮌헨에 건축 벽면 전체가 열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예수 성심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2001)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뮌헨 노이에 메쎄 박람회장(Neue Messe München) 기도실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더욱 인상적이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섬세한 푸른색의 패턴들이 만들어내는 심연의 빛

뮌헨 노이에 메쎄 박람회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관람객들을 배려한 기도실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한 기도실과 이슬람교 신자들을 위한 기도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각 기도실에는 마치 잔잔한 푸른빛의 베일을 드리운 것 같이 부드러운 빛을 연출하는 벨레스첸코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작품을 마주했을 때는 창에 한지와 같은 종이를 덧붙였거나 반투명한 블라인드를 설치한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정작 가까이 가서 보니 일반 건축유리에 샌드블라스트(sandblast)와 글라스페인팅 기법을 이용한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섬세하게 굵기와 방향을 달리하여 표현한 푸른색 스트라이프 패턴들이 서로 엇갈리고 겹쳐지면서 마치 여러 장의 푸른 색 투명 천이 겹겹이 드리워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다. 벨레스첸코의 작품은 기도실의 명상적인 분위기에 걸맞은 차분하면서도 신비로운 심연의 빛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었다.

▲ 알렉산더 벨레스첸코, 독일 뮌헨 메쎄 박람회장 기도실의 스테인드글라스 세부도 ⓒ 정수경

한옥창의 은은한 빛 떠올려

한 장의 유리에 어떻게 저리도 섬세한 깊이감을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며 감탄을 하던 필자는 벨레스첸코의 이 작품에서 우리나라 한옥의 창호지 창을 통해 은은하게 스며드는 빛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납고 날카로운 빛이 아닌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공간 구석구석을 비추는 한지 창 빛의 인상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한국 전통 창의 이미지를 담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전시 기획을 구상 중이던 필자는 벨레스첸코의 이 창을 접하면서 서양의 매체인 스테인드글라스도 한국적 정서에 맞는 빛을 충분히 연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20121212일에 서울 인사동에서 (), 빛의 캔버스가 되고, 달빛 드리운 한 폭의 그림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서울문화재단의 후원과 독일 페터스 스튜디오의 기술 지원으로 진행된 이 전시에서는 한국적 정서를 담아낸 방혜자 화백과 조광호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이 새로이 선보여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인간 친화적인 빛의 연출이 진정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역할

스테인드글라스는 창에 표현되는 예술이다. 그리고 창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건축 공간에 빛을 받아들이는 통로이다. 빛은 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날카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외면하게도 한다. 진정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역할 중 하나는 건축 공간 내의 빛의 질을 인간 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블라인드나 커튼 없이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빛을 연출하는 것, 지나친 밝음은 누그러뜨리고 어둠 속에서의 빛은 오히려 살려내는 것이 스테인드글라스의 가장 큰 역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 한옥의 창은 서양의 그 어떠한 스테인드글라스보다 인간친화적인 빛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우리의 건축공간에 설치될 스테인드글라스 창들은 서양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빛을 창조해낼 수 있는 고유한 매체로 해석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까? 유럽의 작가가 표현한 작은 명상의 창 앞에서 한국 전통 창의 정서를 느꼈던 특별한 체험은 지금까지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정수경 칼럼니스트

미술사학 박사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초빙교수

저서 : 한국의 스테인드글라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