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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정수경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3.12.13 13:47

[정수경 아트칼럼] 현대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10)

런던 왕립 병원 의학도서관 스테인드글라스(2002) : 빛, 색채 통한 과학과 예술의 성공적인 소통

 

▲ 요하네스 슈라이터, 분자생물학 스테인드글라스 창, 영국 런던 왕립병원 의학도서관, 2002. (출처: Medical Science and Stained Glass)

[스타데일리뉴스=정수경 칼럼니스트]  영국 런던 왕립 병원의 의학 도서관에 설치된 요하네스 슈라이터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를 위해 디자인했으나 제작 설치되지 못했던 작품 주제의 일부를 재해석하여 제시한 작품이다. 요하네스 슈라이터는 1977년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를 위한 총 22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디자인하였다. 그는 한 때 이 교회에 소장돼 있었던 방대한 서가인 비블리오테카 팔라티나’(Biblioteca Palatina)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 서구 문명의 축소판과 다름없는 이 서가를 자신 작품의 주제로 삼고 디자인을 진행했다. 창의 주제로는 문학, 철학, 음악 등과 같이 역사가 깊은 학문 분야에서부터 화학, 생물학, 의학, 물리학, 경제학, 미디어, 교통 등 현대의 새로운 연구 분야들도 함께 다루어졌다. 슈라이터는 지도, 신문, 텔레비전, 그래프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에서 출발하여 작가의 성숙한 미학적 비전에 따라 재해석된 예술적 이미지를 제시하였다. 아쉽게도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를 위한 슈라이터의 디자인은 하이델베르크 시의 거절로 실현될 수는 없었지만 이후에 영국 왕립병원 의학도서관에서 그 생명을 되찾을 수 있었다.

교회에서 도서관으로

런던 왕립병원 의학도서관은 1888~1892년 젊은 건축가 아서 커스턴(Arthur Cawston)의 설계로 건축된 교회였다. 지역에서 극동의 성당으로 알려져 있던 이곳은 1940년대 전쟁의 폭격으로 모든 창이 소실되었다. 다행히 건축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지만 인근의 병원과 의과대학이 점차 성장하고 거주 인구가 변화함에 따라 1979년 교회로서의 기능을 마감하고 1983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현재 Grade 2의 건축물로 분류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 병원이나 학교의 부속 교회로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에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존 커털드(John Courtauld) 주교의 제안으로 의학도서관을 교회를 이전하는 작업을 실행하게 되었다. 교회를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문화재청, 런던의회, 환경부 그밖에 지역 여러 기업들을 통해 예산을 마련하여 작업을 진행하였고 19881121일 영국의 앤 공주가 참석한 가운데 오픈식을 가졌다.

의학(醫學)을 주제로 한 스테인드글라스

슈라이터의 런던 왕립병원 의학도서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1990년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에서 있었던 의미의 추구’(Search for Meaning)라는 컨퍼런스를 계기로 설치될 수 있었다. 컨퍼런스에서 소개되었던 요하네스 슈라이터의 하이델베르크 성령교회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접한 왕립 의과 대학 신경학과 교수인 마이클 스워시(Micheal Swash)는 성령교회에 제안됐던 디자인이 의학도서관 건물의 네이브(nave)에 위치한 여덟 개의 창에 설치되었을 경우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시각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슈라이터에게 작품을 의뢰할 것을 제안하였다. 각각의 창에 그려진 과학의 이미지들은 당시 의학 연구 성과들이나 이슈가 되었던 문제들 그리고 과거 의학사를 기념하는 내용들로 꾸며졌다. 8개의 창에는 런던병원, 위장병학, AIDS/HIV, 윤리학, 의학진단, 유행성감기, 분자생물학, 코끼리인간이란 제목으로 슈라이터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설치되었다.

주문자와 작가의 지속적인 소통과 협업을 통해 완성된 작품

각 창에 필요한 의학과 과학의 자료들은 성 바르톨로메오 병원과 런던 왕립병원에서 의료에 종사하거나 연구직을 수행하고 있던 각 분야의 교수들이 선별하여 제공하였다. 이렇게 취합된 자료들에서부터 출발하여 요하네스 슈라이터는 작가 자신만의 과학, 의학의 이미지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예술과 과학 간의 효과적인 대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분야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이미지와 그래프 등을 적절하게 선택하고 이것을 작가 고유의 조형언어로 시각화 시킬 수 있도록 설명하고 돕는 중재자의 역할도 필요로 했다. 이렇게 런던병원 의학도서관 스테인드글라스는 작가와 교수, 또한 그들의 소통을 돕는 이들의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공간과의 소통, 의학과의 소통 그리고 빛

요하네스 슈라이터는 함께 작업한 데릭스 스튜디오의 빌헬름 데릭스와 함께 선물로 제작한 의학진단 창을 시작으로 하여 각 창마다 의대 교수들에게 제공 받은 자료들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재해석하며 작품을 하나하나 완성해갔다. 런던 왕립 병원 의학도서관은 고딕건축의 요소가 남아있는 고풍스러운 건축이기 때문에 작가는 벽돌로 이루어진 벽체와 이미 짜여있는 창틀과 같은 건축의 강렬한 요소들과 자신의 작품이 만나면서 빚어지게 될 충돌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이에 대해 슈라이터는 자신의 작품을 건축 구조 안에 침투시키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화면을 구성해갔다. 그리하여 그는 보통 중성적인 패턴으로 장식하는 작품의 가장자리를 만들지 않고 작품과 창틀의 끝이 서로 직접 만나도록 하였다. 그는 이것을 벽과 유리, 물질과 빛의 충돌이라 표현하면서 자신에게 이것은 극도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디자인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분자생물학 창은 건축구조와 작가의 디자인이 하나로 융합된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한 창이다. 화면은 비정상적인 유전자 재조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검붉은 바탕의 다이어그램 AB, 그리고 정상적인 유전자의 재조합을 나타난 흰 바탕의 다이어그램 C로 구성되어 있다.‘분자생물학 창은 화면에서 창틀의 벽돌로 직접 맞닿는 다이어그램 A의 원형 유전자 표현과 끝이 뾰족한 아치형의 창틀의 흐름에 맞게 자유로이 그려진 선들이 작품과 건축구조를 하나로 만들어주고 있다.

도서관에 맞는 편안한 빛 연출

런던 왕립병원 의학도서관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에는 따뜻하면서도 고귀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세 개 층으로 이루어진 불투명 유리가 사용되었다. 가운데 흰색을 놓고 앞뒤로 다른 색을 겹쳐 만든 이 유리는 밤에는 시원한 보라색의 인상을, 낮의 태양광선에서는 부드러운 연자주색 톤을 연출하고 있다. 슈라이터는 자신이 사용한 옅은 보라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이 색은 마치 빛을 흡수하는 스폰지와 같다. 그래서 박쥐가 날고 있는 별빛에서도 여전히 어렴풋한 빛을 발한다. 그리고 고요하고 어렴풋한 세포막과 같은 빛을 연출하는 중세의 불투명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인상과도 같다. 이러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외부의 영향에 의한 어떠한 변화 없이, 왜곡된 해석 없이 중요하면서도 겸허한 메시지를 우리게 조용히 빛으로 전달한다

이렇게 요하네스 슈라이터의 영국 왕립병원 의학도서관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면서도 상호간에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커다란 틀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빛과 색채를 매개로 과학과 예술의 성공적인 소통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공간으로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

 

정수경 칼럼리스트

미술사학 박사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초빙교수

저서 : 한국의 STAINED G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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