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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20.05.18 14:44

다큐영화 '안녕, 미누' 그는 전태일이었다

신해철이 극찬한 록밴드 '스탑 크랙다운'의 리더, 오는 27일 개봉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오는 27일 개봉하는 '안녕, 미누'(감독 지혜원)는 한국에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로, 불법체류자로 18년을 살았고, 故신해철이 찬사를 아끼지 않은 다국적 록밴드 '스탑 크랙다운'의 리더로 빨간 목장갑을 끼고 전국을 누볐던 미누(목탄 미노드, Moktan Minod)의 처음과 마지막을 담아냈다.

'목포의 눈물' 찰지게 불렀던 미누 '그는 전태일이었다'

전태일 열사는 한국 노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동대문 평화시장 재단사로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고발하고, 최초 노동단체인 '바보회' 나아가 삼동회를 조직하고, 언론사와 곳곳을 돌며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했던 전태일.

1970년 11월 13일 집회에서 대대적인 탄압을 받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전태일의 삶은 반세기 동안 노동자 인권과 처우 개선의 명분이 됐다.

전태일 이후의 노동 환경 변화는 경제성장에 따른 보상으로 일부 개선됐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최근 벌어진 '아파트 경비원 자살과 입주민 갑질 횡포'를 봐도 노동 환경은 변한 것이 없다.

심지어 제주, 당진 등에서 벌어진 현장실습 고교생 사망 참사를 보면 노동 환경 개선의지는 전무하다고 봐야 맞다.

그 때문일까. 십수년전 전국을 돌며 공연을 펼쳤던 록밴드 '스탑 크랙다운'의 대표곡 '손무덤'은 그래서 더 선명하게 들린다. 

▲ 1992년부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았던 미누의 앳띤 모습(영화사 '풀' 제공)

미누를 만났던 사람들이라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한국인인줄 알았다"이다.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달변이었던 그는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이었다. 적어도 미누 자신이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라는걸 소개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미누

또한 그는 '스탑 크랙다운'이라는 하드록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을 맡고 있다. 미얀마(버마)출신인 소모뚜, 소띠하, 그리고 드러머 송명훈 등이 멤버다. 버마 출신의 드러머 꼬네이, 인도네시아 출신의 키보드 해리 또한 스탑 크랙다운을 거쳐간 밴드 멤버들이다.

일터에서 일을 마친 뒤에도 공연장이면 어디든 달려갔던 스탑 크랙다운. 빨간 목장갑을 끼고 하드록을 구사하는 이주노동자 인디밴드로 알려져있지만, 가수 신해철이 칭찬한 실력파들이다.

스탑 크랙다운의 대표곡 '손무덤'은 신해철이 프로듀싱을 맡아 .2004년 박노해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으로 수록됐다. 

▲ 2004년 이화여대 강당에서 개최된 박노해 시집'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공연 '스무살 공순이의 노래' 포스터. 모델로 참가한 배두나씨가 눈에 띈다. 한편 이 공연은 스탑 크랙다운이 참가한 첫 무대다.

그뒤 2009년 10월. 미누는 불법체류자로 입건돼 네팔로 강제 추방됐다. 록밴드 스탑 크랙다운의 활동이 무기한 휴지기에 들어갔고, 그가 공동대표를 맡았던 이주노동자 방송은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국내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구명 운동을 펼쳤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미누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네팔에서 한국으로 이주하는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어학원을 만들었고, 국내 이주노동자 방송사 공동대표였던 이력을 살려 강제 추방된 네팔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촬영하는 등 인종 차별과 노동 인권 실태를 한국에 알렸다.

10년전 네팔로 돌아와 식당, 기자, 어학원 강사, 네팔 대지진때 복구 사업까지 펼치는 등, 쉬지 않고 일하며 언젠가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거라고 믿었던 미누.

지금도 변하지 않은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스탑 크랙다운을 통해 '손무덤', '월급날' 등 노래로, 문화로 풀어보려고 했던 그는 끝끝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바른미디어, 창작소 밈이 제작하고, 영화사 풀, 영화사 친구가 배급하는 영화 '안녕, 미누'의 러닝타임은 89분. 12세 관람가다.

작은 영화사들이 모여 네팔로 강제 추방된 미누를 추억하며 만든 이 작품은 2018년 가을 DMZ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고, 이를 통해 미누는 2박3일간 영화제에서 초청돼 시사회와 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미누의 마지막 한국 방문이었다. 

미누를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그의 첫인상

2007년 종로에서 미노드 목탄(Minod Moktan)을 만났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NLD(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가 주최하고, 여러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Free Burma'(미얀마 민주화)집회가 제일은행(스탠다드 차타드 본점)앞에서 열린 것이다. 故네툰나잉, 조모아, 조샤린 등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이 모였던 그때 미누를 처음 만났다.

당시 시민단체 참가자로만 알았던 미누, 외모 어딜 봐도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가 네팔에서 왔으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소개하고 나서야 '그렇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얌전하고 차분한 한국어로 말하던 미누. 하지만 '스탑 크랙다운' 공연에서 리드보컬로 대표곡 '손무덤'을 부르던 미누는 평소 알던 그가 아니었다. 무대 곳곳을 뛰어 다니며 공연을 관람하던 모두를 향해 포효를 부르짖던 그는 록 스피릿이 살아 숨쉬는 싱어였다.

▲ 스탑크랙다운 정규2집 freedom 앨범재킷

곧 개봉하는 영화 '안녕, 미누' 포스터를 보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하나 뿐이다. 이제 록커, 사회운동가 미누 씨를 보려면 유튜브에 간간히 올라왔던 영상과 이번에 개봉하는 다큐 영화가 전부라는 것.

이제서야 고백하지만, 한국에는 1970년 11월 13일 이후 수많은 전태일이 존재했고, 앞으로도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미누는 전태일이었다. 아울러 그는 이주노동자만을 위한 사회운동가가 아니었다.

그가 2009년까지 전국을 돌며 무대에서 불렀던 '손무덤'은 지금도 현장학습이라는 명목으로, '갑질'이라는 화두로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미누가 불렀던 '손무덤'은 노동현장이며, 전태일 열사 이후 고도경제성장이라는 포장과 외형으로 치장됐을 뿐, 본질은 그대로다. 영화 '안녕, 미누'는 그래서 더 가깝게 보이고,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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