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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3.11.20 11:26

'나쁜 드라마 전성시대', 30%의 시청자는 과연 '무식한' 시청자일까?

막장임에도 공감하고 궁금해하는 시청자들, 현실의 '막장' 반영이자 잊으려는 몸부림이다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일전에 나온 영화 제목 중에 '나쁜 놈이 더 잘잔다'라는 제목이 있었다. 요즘은 확실히 '나쁜' 이들이 더 뜬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요즘 드라마 이야기다.

'막장'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은 30%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고 등장인물의 급작스런 하차와 죽음, 황당한 대사, 작가의 연장 요구 등으로 퇴출 운동까지 일어난 MBC '오로라공주'는 오히려 논란의 중심이 되자 1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더 잘나가고 있다.

게다가 '역사왜곡 논란'으로 방영 전부터 비난에 시달렸던 MBC '기황후'도 2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월화드라마 시청률에서 혼자 잘나가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 드라마들을 비난하며 '막장과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나쁜 드라마 전성시대'라는 결과로 귀결되고 있다.

이렇게 되니 비난의 화살은 이들 드라마를 만든 '나쁜 작가'에서 이 드라마를 보는 '나쁜 시청자'로 옮겨지게 됐다. 소위 '무식한, 생각없는' 이들이 이런 드라마를 보기 때문에 임성한 작가가 안하무인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문영남 작가가 계속 막장 가족 드라마를 쓰며 장영철, 정경순 작가가 '픽션'이라고 꼬리를 내리며 왜곡된 역사 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막장과 역사 왜곡을 비난하려해도 시청률의 결과가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사람들이 보고 있다. 17%의 시청자가, 30%의 시청자가 보고 있다. 우리는 막장 드라마를 비난하고 그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를 비난한다. 하지만 30%의 시청자가, 17%의 시청자가 '왜' 그 드라마를 보는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볼 때다.

예를 하나 들어야겠다. 기자의 주변에 '왕가네 식구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그 드라마가 왜 재미있냐고 물어보자 그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내 주위에 저런 사람들이 있어" 혹은 "이 드라마 보니까 예전에 알던 사람 생각나. 그 사람이 저랬거든".

▲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 중인 KBS '왕가네 식구들'(KBS 제공)

일단 '왕가네 식구들'의 인기를 살펴보면 '막장'인 건 맞는데 그 막장에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이다. 굳이 말을 만들어보면 '공감 막장'이라고 할까. 현실에서 드라마 속 '막장' 인물들을 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생각하며 이 드라마를 보고 그 속에서 통쾌함과 재미를 얻는다.

사업 실패로 처가 살이를 하는 고민중(조성하 분)과 철없는 행동을 일삼는 왕수박(오현경 분), 허세에 찌든 허세달(오만석 분)과 짠순이 왕호박(이태란 분), 수박을 편애하고 호박에게 구박을 일삼는 이앙금(김해숙 분)은 과장과 막장으로 찌들어있는 인물이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과장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왕가네 식구들'은 '리얼드라마'인 셈이다. 그렇게 받아들인 시청자의 비율이 30%다.

그럼 '오로라공주'는 어떨까? 이 드라마야말로 '막가는' 드라마다. 내용도 막 가고 작가도 막 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어느 정도까지 막 갈 것인가? 이 호기심이 가장 크다.

▲ '퇴출 운동' 이후 오히려 시청률이 더 오른 MBC '오로라 공주'(MBC 제공)

어떻게 보면 임성한은 대한민국 드라마 시청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파악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드라마를 작품성을 따져가며 보는 때는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문화가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드라마의 주시청층은 중년층 이상이고 이들은 TV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신기하고 궁금해서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다. 마치 옛날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마을 장터로 모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런 이들에게 임성한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재미있다. 임성한은 작가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이야기를 요리 비틀고 조리 비틀며 온갖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물론 17%의 시청자가 모두 임성한을 좋아한다고 볼 수는 없다. 저들 중 분명 욕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이 궁금하다. 다음엔 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배우가 하차한다는데 어떤 식으로 하차할 지 참 궁금하다. 그래서 본다.

'기황후'는 또 어떨까? 여기에는 '역사는 역사고 드라마는 드라마다'라는 정서가 반영된 것 같다. '기황후'를 보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과거 '조선왕조 500년' 보듯이 보는 게 아니란 것이다. 즉, 과거의 사극은 역사 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봤다면 지금의 시청자들은 그냥 드라마 자체로 즐기면서 '기황후'를 본다. 그리고 드라마와 별개로 역사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기황후'를 보면서 '실제로 기황후는 저랬잖아'라고 100% 믿는 사람들은 이제 많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정보로, 기사로 이미 우리는 '기황후'의 정체를 알았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역사 왜곡 논란'에도 월화드라마 시청률에서 독주를 시작한 MBC '기황후'(MBC 제공)

물론 이 드라마의 의도는 역시 재고의 가치가 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를 보는 20%에 가까운 시청자가 정말로 역사 인식이 '제로'라서 보는 것만은 아니란 것이다. 그들은 드라마 자체를 보고 그 드라마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정도가 심한 '막장'과 '역사 왜곡'은 분명 시정되어야하고 그런 드라마는 안 만드는 게 사실 낫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막장드라마 속 인물들이 실제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막장과 왜곡이 판치는 세상에서 드라마에서 '막장'을 빼라고 강요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불행히도 시청자들은 그 막장에 공감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식'이나 '무개념'이 아니라 현실이 그만큼 막장임을 반영하는, 혹은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현실을 잊으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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