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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영화
  • 입력 2013.11.19 20:27

[리뷰] '결혼전야', 감독의 영리한 연출이 이야기에 힘을 줬다

인물의 균형 맞추며 공감 형성, '해결'이 아닌 '가능성'을 제시하는 영화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메리지 블루'라고 한다. 결혼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신랑과 신부가 예민해지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결혼 일주일전, 설레임이 클 것이라 생각되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갑자기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결혼 이후의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혹은 갈등이 생길까봐 지레 겁먹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결국 예민해지기 마련. 그것은 우울증과 갈등, 심지어 몸과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영화 '결혼전야' 포스터(씨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홍지영 감독의 '결혼전야'는 바로 그 '메리지 블루'를 소재로 한 영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에서 결혼을 앞둔 네 커플의 갈등을 보게 된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 한 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결혼 직전까지 간 전직 야구선수 태규(김강우 분)와 비뇨기과 의사 주영(김효진 분)은 갑작스럽게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갈등이 생기고 클럽에서 만나 원나잇으로 생긴 아이 때문에 결혼을 서두는 이라(고준희 분)와 대복(이희준 분)은 종교, 가풍 등이 서로 다른 집안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표면적인 갈등만이 갈등이 아니다. 7년 연애 끝에 원철(옥택연 분)과의 결혼을 앞둔 소미(이연희 분)는 사랑도 없이 '동지애'로 결혼한다는 원철의 말에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다문화 커플인 우크라이나 미녀 비카(구잘 분)과 꽃집 노총각 건호(마동석 분)은 갑작스런 건호의 '성기능 장애'와 비카가 결혼하려는 목적에 대한 의심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결혼전야'는 사실 여러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먼저 네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지만 영화를 진행하다보면 무게추가 한두 커플로 쏠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커플 이야기는 유야무야 끝나버리고 결국 서둘러 마무리하는 인상을 주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 결혼 일주일을 앞두고 서로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갈등을 겪는 태규(김강우 분)와 주영(김효진 분) 커플(씨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또 하나 불안감은 '공감'의 문제다. 이들의 갈등을 과연 관객들은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까? 그러려면 공감이 가는 소재를 사용하는 게 맞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를 멋있게 만들려는데 치중하다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공감을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다행히도 '결혼전야'는 영리하게 이 불안감을 떨쳐낸다. 네 커플 중 한 사람인 이라의 직업은 웨딩 플레너고 세 커플의 결혼식을 모두 진행한다. 성기능 장애를 느끼는 건호가 찾아간 병원은 주영의 비뇨기과이고 한국 음식을 배우고 싶어하는 비카는 원철의 식당에서 음식을 배운다. 주영의 비뇨기과 원무과에는 이라의 예비 남편인 대복이 일한다.

영화는 이들을 하나의 틀에 얽히고 설키는 관계로 만들어 따로따로의 이야기가 아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물론 이 틀에서 벗어난 이는 결혼 일주일 전 네일아트 대회를 위해 제주도로 떠난 소미다. 그 소미가 제주도에서 잘생긴 여행 가이드 경수(주지훈 분)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혼란을 겪는 이야기와 세 커플과 원철의 이야기가 두 축을 이루며 영화는 균형있게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결혼전야'의 또 하나의 매력은 자연스러움이다. 홍지영 감독은 억지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보다는 누구나 공감가는 성격의 캐릭터를 통해 하고픈 이야기를 전달한다. 찌질한 성격의 태규와 자기 이야기를 똑바로 할 줄 아는 이라와 주영, 마마보이 대복과 순진 노총각 건호 등의 캐릭터는 정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고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영화 속의 액션을 취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 원철(옥택연 분)과의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소미(이연희 분) (씨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홍지영 감독은 영화의 균형에 대해 "만드는 사람이 아무리 균형있게 만들려해도 결국 영화를 만들면서 깨지게 된다. 그것은 순전히 배우들의 공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균형을 최종적으로 맞추는 이는 바로 연출자다. 배우의 호연도 결국 감독의 연출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런 면에서 홍지영 감독의 연출은 탁월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혼전야'는 이들의 갈등을 보여주면서 과연 이들이 어떻게 갈등을 극복해나갈까를 계속 궁금하게 만든다. 여기서 또 하나 다행인 것은 영화의 마지막을 진부하게 만들거나 교훈적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갈등이 풀리는 방식은 누군가에겐 가장 멋진 엔딩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불쾌한 엔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혼전야'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영화가 아니라 여러가지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럴 수도 있다' 바로 그것이 이 영화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찌질남으로 변신한 김강우, 마마보이 역할의 이희준, 로맨티스트로 변신한 마동석도 일품이지만 사실 이 영화의 발견은 고준희다. 그간 '추격자', '야왕' 등에서 연기자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가 지금껏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우리 결혼했어요'의 철없는 연상의 아내, 혹은 광고와 화보에서 보여지는 모델의 이미지로만 비춰졌다.

▲ 고준희는 이 영화가 보여준 의외의 발견이었다(씨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우결'을 보면서 고준희에게 가진 가장 큰 아쉬움은 '저런 모습만 보이면서 자기 세계에 안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었다. 그는 빨리 작품으로 돌아와야했다. 그리고 '결혼전야'로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다.

물론 그가 걸출한 연기를 보였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칭찬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중심을 무리없이 잘 잡아주면서 하나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보였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연기자로 계속 활동하기를 바랄 뿐이다.

'결혼전야'는 멀티 캐스팅의 화려함보다는 '균형있는 이야기'를 택했고 그로 인해 오히려 더욱 재미와 공감을 이끌어낸 영리한 작품이다. 오랜만에 감독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났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다시 한 번 '결혼'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볼 수 있는, 영리하고 달콤한 영화가 '결혼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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