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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13.11.18 14:59

영화 박치기로 본 외국인혐오증

한국에 불어닥친 제노포비아 현상, 필리핀지원 비난으로 이어져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지난 2004년 재일조선인들의 삶과 애환을 다뤘던 영화 <박치기>는 순수일본인 감독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의 히트작이다. 당시 이 영화는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상영돼 숱한 화제를 불러모은 바 있다.

특히 이 영화의 가장 큰 줄기는 일본인들의 '외국인혐오증'과 일제시대부터 일상화 된 조선인 폭력이다.

日영화 <박치기>는 미국의 청춘영화 '아웃사이더'(프란시스 코폴라, 1983)에 비견되는 작품이다. 현재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오다기리 조와 사와지리 에리카가 국내관객들에게 알려진 계기도 바로 이 영화 때문이고, 시오야 슌, 타카오카 소스케, 코이데 케이스케 또한 일본유명배우로 거듭났던 그 출발점이 영화<박치기> 출연 덕분이다.  

참고로 영화 '아웃사이더'는 1980년부터 90년대까지 헐리우드 영화판을 이끌던 청춘스타들의 데뷔작이다. 영화 '대부'를 만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에는 탐 크루즈, 로브 로, 페트릭 스웨이즈, 맷 딜런,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다이안 레인, 랄프 마치오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한편 위 두 작품의 특징으로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이 있다. '제노포비아'는 누적된 경제위기와 사회 빈부 갈등으로 비롯된 인종 및 민족차별 현상을 말한다.

▲ 영화<박치기>중 한 장면. 리안성(타카오카 소스케)이 교토주먹짱 곤도 가즈오(키리타니 켄다)를 향해 박치기를 날리는 장면이다. 한편 타카오카 소스케는 2년전 SNS에서 한류열풍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현지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출처 영화 박치기)

한국의 성장통, 제노포비아

지난 8일 필리핀에 불어닥친 초대형 태풍 '하이옌' 참사로 현지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필리핀정부가 피해가 큰 중부 비자얀제도와 항구도시 타클로반에 준계엄령을 선포할 정도로 심각하다.

현지는 태풍참사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물과 식량 부족으로 곳곳에서 긴급구호품과 남은 식량을 차지하려는 현지주민과 통제중인 정부군 간의 총격전이 발생하는 등 각종 소요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즈음 국내 첫 외국인 국회의원인 이자스민 의원(새누리당)이 모국인 필리핀 구호활동을 촉구하자, 각 온라인 포탈사이트 등에서 비난이 빗발쳤다. 누리꾼들로부터 확인된 주된 비판은 이렇다. 이자스민 의원이 국회에서 필리핀 참사지원 발언 중 "일본도 1천만 달러를 긴급지원하고, 자위대병력 1천 명을 파병하는데 한국은 겨우 5백만 달러만 지원했다"는 내용이다.

이 발언은 전원책 변호사가 진행하는 15일 YTN라디오프로 '전원책의 출발 새 아침'에서 이자스민 의원과의 인터뷰를 빌어, 정부 500만 달러, 적십자사 200만 달러, 삼성그룹 100만 달러, 그리고 김연아 선수와 정몽준 의원의 구호기금 등이 소개되면서 오해가 풀렸다.

또한 국내누리꾼으로부터 '섭섭하다'는 반응을 일으킨 태극기가 빠진 '필리핀 구호지원 포스터' 또한, 필리핀 정부가 아닌 현지인이 SNS에 제작.배포한 것으로 확인돼 일단락됐다.

하지만 누리꾼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자스민 발언을 빌어 다른 내용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경기도와 지방 공단에 거주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성폭행, 살인, 강도 등을 일삼으며, 지역 사회에 큰 위협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중국, 아랍, 인도,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추방을 요구하는 등, '외국인혐오증'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 8일 필리핀을 강타한 초대형 태풍 하이옌으로 현지는 아비규환이다. 식수 및 식량부족으로 총격전이 펼쳐지는가 하면 사망,실종자 또한 필리핀정부 발표와 달리 5천 명을 넘어섰다. (출처 베트남 포스트)

외국인 혐오증, 방치하면 한류열풍은 물론 국가이미지에 큰 타격

영화 <박치기>를 보면, 일본 사회속에 잠재된 '외국인 혐오증'에 따른 대표적인 사례들이 가감없이 묘사된다. 특히 재일 조선인들을 향한 이유없는 악감정과 차별 의식은 지금도 일본사회의 큰 이슈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영화 속에 재현된 재일조선인 여학생 성추행, 폭언 및 집단폭행, 왕따 등은 익히 알려진 사실들이다.

<박치기>는 1968년 일본을 그린다. 청소년들과 교사들이 베트남전을 이야기하며,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대결구도 속에서 일본은 어떤 처세가 요구되는가부터 시작해, 북한을 향한 현지인들의 악감정과 일본과 재일조선 청소년들간의 다툼과 살인사건들을 다룬다.

영화는 마치 미국 사회의 흑백 인종 갈등처럼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의 갈등 또한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은 영화<박치기>를 통해 일본인들의 무지함과 무의식속에 자리잡은 '외국인혐오증'으로 인한 폐해를 지적한다.

하물며 <박치기>가 상영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인의 '외국인혐오증'은 그칠줄을 모르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89년이래 지속된 장기불황 여파로 자국경제는 피폐해진데다, 대량해고와 취업난으로 국민들의 사기가 많이 가라앉은 상태다.

여기에 지난 2009년이래 아시아 한류열풍이 확산되고 한국의 문화 영향력이 확대되자, 다시 한국인을 향한 외국인 혐오증을 시작점으로, 정치권에서는 극우성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 지난 해 노르웨이 청소년테러 학살사건(77명 사망)을 주도한 베링 브레이비크는 노르웨이 백호주의자로서 극우파시스트당원이다. 위 사진에 나온 독일 네오나치주의자들처럼 유럽에는 독일을 중심으로 외국인혐오증과 네오나치세력이 크게 확산됐다. 물론 경제위기와 높은 실업률이 주된 원인이다. 특히 현지인들은 외국인들이 자기 일자리를 빼앗았다고 믿고있다. 이에 맞서 각국 정부 또한 노르웨이 테러사건 전후로 나치즘을 주요 범죄세력으로 인식, 정당해산과 관련자 감찰 및 구속수사등으로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 (출처 Le Mond)

문제는 한국이다

재일교포들이 일본 현지에서 오랫동안 받아온 차별과 폭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유재순씨 같은 현지교포가 언론사까지 만들어가며 일본사회 내 적체된 현실을 한국에 보도해야 할 만큼, 일본사회는 모순투성이다.

지난 전쟁범죄와 조선인 강제징용, 관동대지진 학살을 대놓고 부인한 것부터, 역사왜곡교과서 편찬과 교육확대, 위안부 비하 발언 등을 뻔뻔하게 하는 일본은 후안무치의 전형이다. 하지만 한국사회 또한 일본의 모순된 인식을 따라가고 있어 걱정이다.

특히 이자스민 의원의 필리핀구호 발언을 놓고, '지원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여론이 확대된 점은 인도적인 처사가 아니다. 덧붙여 이자스민의 발언을 지지한 진중권 교수의 부인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진 교수 또한 비판의 대상에 올라있다. 

대단히 사적인 부분까지 들춰내 가며 노골적인 인종차별 악플로 비난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 내 적체된 '외국인혐오증'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외국인혐오증과 관련해 현 정부와 정치권의 수수방관하는 태도 또한 문제 

사회가 빈부갈등에 이어 외국인노동자들의 범죄가 늘어나고 급기야 '외국인혐오증'까지 나오게 된 점은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도 크게 한 몫했다. 

한때 노사갈등해결과 고용비용을 아끼고자 도입한 외국인노동자가 늘어나 어느덧 외국인체류자가 130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국내거주외국인과 현지주민 간의 문화적 불협화음과 갈등조차 제도적으로 통제 못 하고, 외국인범죄마저 늘려놓은 현실은 호러물이 연상될 정도다.

아무리 한국이 1천조 원 공공기관 부채와 부정부패는 일소되지 않고, 일자리 또한 '시간제 근로자'를 양산해야 할 만큼 다급한 상황이라지만 독일의 대표적인 인종차별성향인 '네오나치즘'을 일본의 악랄한 식민지배를 받아온 한국에서 봐야 하니 얼마나 답답한가.  

더구나 수년 전 한류열풍 등으로 해외인들에게 한국의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한다는 자부심은 간데없고, 현재 태풍 참사로 고통을 겪는 필리핀에 구호기금조차 '주지말자'는 여론이 급등하는 등 국가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빌미만 제공됐다.

이대로 정부와 사회가 일본처럼 무지함을 드러낸 채, 외국인 혐오증을 방치한다면, 조만간 영화<박치기>가 필리핀과 아시아에서 한국을 모델로 제작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제노포비아'라는 인종차별현상은 경제성장과 불황의 위기 속에서 쌓여온 사회병리 현상이다. 이를 마냥 덮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사회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계기와 성찰이 있길 바랄 뿐이다.

국제적으로도 가장 많은 차별과 폭력 속에서 성장한 한국이 그 원흉인 일본의 '외국인혐오증'을 답습할 이유와 필요성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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