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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24 09:14

최고의 사랑 "용그림에 마지막 눈을 그리다."

"그냥"이라는 가장 무서운 말...

 

참 무서운 말이다.

"그냥."

인터넷에서 악플과 악플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정작 악플이라고 생각하고 악플을 다는 사람은 드물다. 자기가 악플러라 생각하는 사람은 더 드물다. 그냥 남들 하는 말이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어떠하니까.

그 말이 어떤 상처가 될 지. 지금 쓰는 그 글로 얼마나 크게 고통을 받을지. 아니 때로 그조차도 정의라 믿는다. 잘못을 했으면 상처를 입어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것을 행하는 자신은 정의의 사도다.

그래서 거의 법칙이다. 악플러에게 악플러라 하면 그렇게 억울해 한다. 악플을 두고 악플이라 하면 세상에 다시 없을 악플을 받은 양 그리 분통해한다. 아마 100명 가운데 99명은 그러지 않을까?

그래서 결국 악플러라고 고소해서 잡고 봤더니, 학생에, 주부에, 대학교수에, 회사원에... 드라마가 아니다 실제가 그렇다. 멀쩡한 사람들이 멀쩡하게 악플을 단다. 악플이라는 자각도 없이. 그래서 그에 대한 사과도 "미안하다" 한 마니면 끝난다.

"그럴 줄 몰랐다."

정말 적나라하다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독고진(차승원 분)과 구애정(공효진 분)의 해피엔드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문진영(최화정 분)은 대한민국 엔터산업 최고의 이미지메이커야!"

단지 이미지였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그럴 것 같으니까. 그래서 구애정은 비호감이 되었고, 구애정과 독고진의 사랑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최고의 스타 독고진은 정상에서 한 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그 순간, 그러니까 구애정이 사고로 입원하고, 독고진에 의해 악플러들이 고소당한 그 순간 독고진 동영상 루머와 함께 공개된 하나의 동영상.

분명 그것은 진심이었다. 독고진의 절절한 진심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병상에 누운 구애정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그러나 대중에게도 그것은 진심이었을까?

어차피 이미지다. 문진영이 그 시점에 동영상을 공개한 이유일 것이다. 구애정이 사고를 당했다. 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다. 여기에 독고진이 악플러를 고소하면서 악플에 대한 경각을 일깨운 상태다. 그런 때 독고진의 진심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한다. 동영상을 찍을 당시의 수술을 앞둔 독고진의 절절함이 병상에 누운 구애정과 오버랩될 것이다. 그리고 독고진과 구애정에 대한 공격은 악플로 단정지어질 것이다.

악플과 알플러가 비루하고 저열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명명백백한 악플인 상황에서 그들은 절대 악플을 달지 않는다. 차라리 악의로 악플을 다는 쪽이 낫다는 이유가, 그런 악플러들은 그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일관성이라도 보이니까. 대부분의 악플러들은 혹시 악플러라는 소리를 들을 까봐 이슈가 그리로 흐르면 어느새 악플을 쓰던 것마저 자제하는 속성을 보인다. 남들 다 칭찬하면 함께 칭찬하고, 남들 다 비난하면 함게 비난한다. 모두에 맞춰서.

그렇게 구애정이 싫다면. 구애정을 싫어하는 자신의 감정과 판단에 자신이 있다면. 독고진과 구애정의 관계를 그렇게 진심으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면.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순애적이고 가정적이어서 한결 이미지가 업그레이드된 독고진이다.

결국 이미지로써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예인의 비애랄까? 하기는 일상에서는 어떤가? 나는 과연 나라는 실체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보여지고 있는가.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과 주위에서 보는 자신과의 괴리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군중 속에서 더욱 외롭다는 것은 사람이 많을수록 자기로부터 유리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니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러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거스르기보다 오히려 편승하여 이용하려는 마지막 엔딩은 차라리 통쾌하기까지 하다.

"요즘에는 아이를 많이 낳는 연예인들이 호감이라고 하던데..."
"오~ 띵똥~! 구애정, 우리 당장 이미지관리에 들어가자!"

행복조차 이미지가 되어 인기로써 계량되어지는 이상한 나라. 이상한 나라에 사는 대마왕 독고진과 니나 구애정의 행복은 그렇게 이미지관리로써 이야기되어지고 있다. 그들의 행복은 진실이지만 그것이 보여지는 것은 단지 이미지다. 그들이 얼마나 행복하든 언론을 통해 터져 아오는 불화설에 별거설처럼. 대중은 진실따위 바라지 않는다.

생각없는 악플러와 그리고 어느새 부화뇌동해버리는 대중, 그 속에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극단을 오가는 독고진과 구애정. 구애정의 사고는 그를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독고진을 연상케 하기 위한. 문진영이 준비한 반전을 위한 한 수로써. 그리고 해피엔드.

그런 점에서 그런 해피엔드의 다른 한 편에서 열심히 강세리와 산을 오르고 있는 윤필주는 의미심장하다. 물론 여전히 완벽남이고 톱스타지만, 그러나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진 채 단둘이 오르는 산이란 어쩌면 그 대척점에 있지 않을까. 윤필주에게는 일상에서 가장 큰 반항이었을 라면 끓여 먹는 이야기나 나누고 있는 그 한가로움이. 독고진과 구애정이 머무는 화려함과 대비되어 묘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이제 강세리는 톱스타라기보다는 그저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다.

정말 멋진 엔딩이었다. 적절한 긴장과 반전 그리고 이제까지의 보상과 같은 에필로그. 잔잔하게 이제까지의 모든 격정을 보듬어 살포시 내려놓는다.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고. 독고진과 구애정 두 우여곡절 많았던 커플의 행복을 기원하며. 윤필주 강세리 커플로.

아쉽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끝나지 않는 드라마는 없다. 그러나 끝났으면 싶은 드라마도 없다. 이대로 끝나지 않았으면 싶은 드라마가 끝났을 때. 연장이 없다는 게 또 하나 그래서 미덕이다. 아쉬울 때 딱 아쉽지 않게 끝냈다. 화룡점정하듯. 수미일관하여.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행복해지는 마무리였다. 등장인물들에게나, 이제까지 함께 해 온 시청자들에게나. 선물이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나 좋았다. 201년 <최고의 사랑>이었다. 최고였다. 최고의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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