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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헌터 "이윤성과 김나나, 원작의 맛깔나는 재해석"

김나나는 마키무라 카오리가 되려는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미묘하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 드라마 <시티헌터>는 단지 원작에서 제목만 가져다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다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원작을 의식한 것이 분명한 설정과 구성들이 적잖이 눈에 뜨인다. 그냥 제목만 <시티헌터>는 아니랄까?

원작에서도 주인공 사에바 료는 죽은 친구의 여동생이면서 자신의 조수이기도 한 여주인공 마키무라 카오리에 대해 어떻게든 자기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항상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언젠가는 위험한 어둠의 세계로부터 그녀를 내보내기 위해. 다시 빛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그녀를 자기의 곁에 놓아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더 관심이 없는 척. 전혀 아무런 매력도 흥미도 느끼지 못하는 척. 괜히 김나나(박민영 분) 앞에서 다른 여자와 노골적인 장면을 연출해 보이는 것도 이미 원작에서 사에바가 카오리를 대상으로 써먹었던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노골적으로, 온갖 추잡한 모습을 다 보이며. 그러나 그럼에도 카오리는 그로부터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부비트랩을 배우고 스스로 위험에 뛰어드는 등 동료로써, 그리고 여자로써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6월 23일 <시티헌터> 10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유전자 정보가 담겨 있을 혈액을 회수하기 위해 김영주(이준혁 분)를 쫓아 국과수로 잠입했다가 하마트면 들킬 뻔한 이윤성(이민호 분)을 김나나가 구해주는 것은 아마도 그런 부분에 대한 드라마 <시티헌터>식의 해석이 아니었을까.

이미 이윤성이 시티헌터인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윤성에게 이성으로써 호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자신의 원수인 김종식의 처리에 대해서 마치 의뢰하듯 털어놓고 있다. 원작에서도 카오리는 오빠 마키무라가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복수를 위해 사에바의 조수가 되었다가 아예 눌러앉고 있었다. 다음 타겟인 김종식과 김나나의 관계에 비추어 김종식의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김나나가 혹시 이윤성의 동료로 합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득 결말이 그려진다. 물론 순전히 망상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결국 모든 복수를 마치고, 이진표의 일까지 해결하고 나서, 그리고 어느 낡은 아파트에 함께 살면서 소외된 이웃들의 억울하고 힘든 사연들을 의뢰받아 해결해주는 명실상부한 도시의 사냥꾼 시티헌터의 모습을. 여전히 진세희(황성희 분)는 우미보즈와 노가미 사에코의 중간 역할로써 우호적인 협력자로, 김영주는 어쩌면 그 순간에도 이윤성을 의심하고 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아직 살아 있는 김나나의 아버지와 이윤성의 어머니가 걸리겠지? 사에바와 카오리가 어둠의 세계에서 시티헌터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둘 다 일가붙이 하나 없는 고아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었다. 아니 사에바나 카오리 모두 가족이 등장했지만 둘은 차라리 그 가족을 거부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아무튼 그런 허튼 상상까지 해 볼 정도로 지금의 이윤성과 김나나의 모습은 원작에서의 사에바 료와 마키무라 카오리의 모습 거의 그대로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지난 6월 22일 9회에서 이윤성 모르게 김나나를 찾아와 만나는 이진표의 모습은 원작에서도 유니온 테오페의 장로가 혼자 있는 카오리를 만나 이야기하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카오리와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가 누구인가를 알고 긴장하던 사에바의 모습과, 이진표가 김나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한껏 긴장하고 있는 이윤성의 모습은 그대로 일치한다.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만나는 곳은 같다.

그러고 보면 원작에서도 카오리는 사에바의 여성밝힘증에 대해 화는 냈지만 그다지 질투같은 건 하지 않았었다. 카오리가 질투한 것은 진정으로 사에바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은 누군가. 그저 오다가다 만난 여자에게 집적거려봐야 질투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어린 여자아이의 경우에도 최다혜(구하라 분)의 경우처럼 전혀 질투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 것이었을까?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이진표의 광기. 그런 이진표의 광기에 대해 이윤성은 복수가 아닌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자학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이진표와 그런 이진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윤성. 과거에 사로잡힌 구세대와 현재에 충실하고자 하는 신세대의 충돌일까? 구세대에게는 자신의 경험과 기억이 여전한 현실이지만, 신세대에게 그것은 미래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지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제 어머니로부터 자신을 강제로 납치했다는 사실가지 걸리고 나면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긴장되고 고조될 텐데. 아마 드라마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예감해 본다. 두 사람이 서로 충돌하는 가장 긴박감 넘치는 장면일 것이라고.

그나저나 현재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인 반값등록금과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무개념 대학생의 이야기를 교차하는 센스는 정말이지... 아예 작가는 이윤성의 입을 빌어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지네 권리는 찾겠다고 부모님 생각해주는 척 등록금 내리라고 학교 시끄럽게 농성하면서 정작 쓰레기 하나 네 손으로 안 치워? 비싼 등록금 내고도 인격이 그 따위면 반값 내면 완전 더 후져지겠다."

하기는 반값등록금 문제 자체를 학내문제로 한정지으려는 자체가 그런 의도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학생과 사학재단 사이의 문제이지 국가사회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단지 사학재단의 비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안기부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기는 했지만.

물론 그럼에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개혁이며 부정과 부패에 대한 근절을 주장하는 점에서 건전한 보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보수이기에 더욱 도덕적인 엄격함을 요구한다. 다만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흥미로웠다.

배우들의 눈가에 검은 기미가 눈에 뜨인다. 메이크업으로 가린다고 가렸을 텐데도 두 여자 경호관의 눈밑이 한 눈에 보일 정도로 시커멓다. 생방송 드라마는 처음 TV방송이 시작하면서부터의 전통이라 하더니만.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사전제작이란 꿈에 불과한 것일까?

앞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더 복잡하고 더 고도의 화려하면서도 긴박한 장면들이 나오게 될 텐데, 이런 식으로 생방송으로 찍어서 과연 그만한 퀄리티가 유지될 것인가. 벌써부터 허술한 부분들이 눈에 띄고 있다. 유일하게 아쉬웠던 부분. 여유를 가지고 최상의 상태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을 보고 싶다. 결국은 기획력의 부재일 테지만. 정말 한국 작가들, 배우들 대단하다.

과연 김나나와 이윤성의 관계는? 최근의 <시티헌터>의 가장 큰 화두다. 김나나를 사랑하기에 오히려 밀어내려 하고, 이윤성에게 호감이 있기에 그렇게 상처입고 눈물흘리면서도 그와 함께 싶어 하고, 그 미묘한 관계를. 원작을 믿어 볼까?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흥미가 깊어진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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