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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서문원 기자
  • 영화
  • 입력 2019.11.09 18:28

[S리뷰] '심판'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다이엔 크루거의 열연

테러로 시작된 비극, 법정 다툼 가운데 도발하는 비열한 조작

[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오는 14일 개봉하는 '심판'(러닝타임 106분, 15세 관람가)을 만나기 전까지 독일배우 다이엔 크루거에 대해 아는 거라곤 2004년작 '트로이' 뿐이었다.

극중 트로이 왕국의 왕자 파리스를 사랑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맡아 평범한 연기를 펼쳐보인 것이 이 배우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다.

금발에 출중한 미모지만, 딱히 떠오르는 캐릭터가 없던 다이엔 크루거. 2012년에 개봉한 '페어웰, 마이퀸'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로 분한 그녀의 모습도 결국 전형적인 유럽 여성의 용모. 

한때 바비인형이라는 애칭이 붙었던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쉬퍼와 큰 차이를 못느꼈다. 물론 필자의 선입견이자 편견이다.  

하지만 독일 영화 '심판'에 나온 다이엔 크루거는 이 작품으로 '2017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했다는 점이 충분히 수긍될만큼 뛰어난 집중력과 연기력을 과시한다. 지금까지 '트로이의 그 여자'로 알던 사실이 부끄러워질 정도다. 

참혹한 테러, 편견이 독처럼 퍼진 법정 다툼, 왜 이런 일들이 평범한 가족에게 일어났을까

그린나래미디어가 수입/배급하는 영화 '심판'의 원제는 'Aus dem Nichts'. 영어 제목은 'In the Fade'이다. 작년 영자 매거진 가디언이 리뷰로 보도할 당시 영어 제목은 'Out of No  where'. 찾아보니 '느닷없이'라는 뜻이 담겼다. 

위처럼 영화 '심판'은 각국에서 번역된 제목이 제 각각이다. 하물며 이 작품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터키계 독일인 파티 아킨 감독은 외신 인터뷰(2018년)에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에 빛나는 자신의 전작 제목 'Gegen die Wand'(2004, '미치고 싶을 때')와 "유사하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제목에 신경 쓰기 보다 영화 시놉을 보는 편이 더 낫다.

영화 '심판'의 두 주인공의 출신지는 영화에서 주는 이미지가 특별하다. 배우 아만 아카르가 열연한 누리 세케르지는 쿠르드계 터키 출신의 이민자 1.5세. 누리와 혼인한 카티아(다이엔 크루거)는 덴마크와 인접한 북독 슐레스빅 홀스타인 출신이다. 

첨부하자면, 이들 두 남녀의 출신지는 종교, 민족주의와 무관하다는 이야기. 한 마디로 개방적이고 리버럴한 사람들이다.  

이렇듯 카티아와 그녀의 남편 누리는 대학 시절 마약 거래를 하다 만나 사랑했고, 누리가 마약범으로 형을 살던 중 교도소에서 결혼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 부부는 함부르크 변두리에서 6살 아들 로코(라파엘 산타나)와 함께 산다. 누리의 직업은 항공 티켓도 판매하는 세무사. 독일에서 정착한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가끔 볼수 있는 직업이다.

유럽의 그 복잡하고 강력한 세금 징수를 이중 장부로 연명하는 이민자 소매상들이 일일히 대응하기 어려우니, 당연히 모국어를 할 줄 아는 세무회계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와 다름없이 아들 로코를 데리고 남편 사무실을 찾아간 카티아. 아이를 맡긴뒤 친구 브리짓을 만나 사우나로 향한다.

그뒤 누리의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 다수의 경찰차와 소방차가 입구를 막아서고, 카티아는 그녀 인생에 단 한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끔찍한 폭탄 테러가 남편의 사무실에서 터진 것을 듣게 된다

그날부터 경찰 당국은 폭탄 테러범을 추적하고, 카티아를 둘러싼 테러 원인을 두고 피해자인 카티아 마저 취조를 받는다. 경찰 당국이 피해자 가족을 가해자와 동일범으로 일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단순하다. 남편 누리가 터키계 쿠르드 출신자로 한때 쿠르드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했던 이력이 있고, 학창시절 마약 거래를 하다 복역한 사실도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가해자를 두고 동유럽 마피아가 한 짓인지, 아니면 극우 이슬람 단체의 테러인지 확실하지 않아 심문을 받게 된 것.

우여곡절 끝에 경찰은 피해자 카티아가 기억하는 사건 당시 상황을 추적해 20대 백인 여성을 붙잡았고, 그녀를 통해 새로운 테러 집단이 있음을 알게 된다. 메인예고편에서도 공개된 사실. 다름아닌 나치다.

테러 참사, 그 이면에 깔린 편견과 오해

오는 14일 개봉하는 신작 '심판'은 평소 일반인들이 가진 선입견과 편견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테러 참사를 불러 일으키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그것이 반백년이 넘도록 유럽의 악몽으로 살아 숨쉬는 나치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른바 인종을 바라보는 차별, 그 저변에 깔린 백호주의와 민족주의적 정서가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2018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은 독일과 유럽 나치즘에 대한 북미 지식인 사회의 시각이 일부 반영됐기 때문.

여기에 터키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미치고 싶을 때'라는 작품을 통해 200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파티 아킨 감독. 그의 신작 '심판'도 결국 감독의 정체성이 배경이다. 

한편 첫번째 'Die Familie'(가족), 두번째 'Gerechtigkeit'(심판), 세번째 'Das Meer'(바다) 등 3부로 나뉜 영화 '심판'은 국내 개봉작 제목으로 '심판'을 택했다.

두번째 단락인 '심판'이 이 영화 스토리의 절정이자, 가장 치열한 공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감독이 세상을 향해 말하고자 했던 사회적 메시지의 모든걸 담았다고 본 것이다.

다이엔 크루거는 독일의 김영애

신작 '심판'의 내러티브는 다이엔 크루거의 표정 연기로 시작해 끝을 맺는다. 발랄함, 자유분방함, 충격, 깊은 슬픔, 분노, 차갑고 무표정한 모습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을만큼 빼어나고,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열정적인 연기다.

다이엔 크루거의 물오른 연기는 한국 영화 '변호인'(2013)에서 군부 경찰에 억울하게 구금된 아들을 되찾고자 울부짖는 순애 아줌마의 분노와 낙담, 그리고 하염 없는 슬픔으로 가득한 표정,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2015)에서 표독스럽고 차가운 재벌 회장을 표현한 대배우 김영애가 연상된다.

드라마 '모래시계', '황진이'에서 범접할 수 없는 연기를 펼쳐보였던 배우 김영애의 모습이 영화 '심판'에서 주인공으로 열연한 다이엔 크루거에게 빙의된 것일까. 그만큼 다이엔 크루거의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이자 압권이다.

여기에 카티아의 남편 누리로 분한 누만 아카르는 터키계 독일 배우로 이미 한국영화 '베를린'(2012), 미국 인기 TV시리즈 '홈랜드'(2014)와 2019년 상반기 흥행작 '알라딘'에도 출연했던 스타급 배우다.

스타배우 누만 아카르가 독일과 유럽에서 유명세를 탄 작품은 '케밥 커넥션'. 2004년작 '케밥 커넥션'은 영화 '심판'을 연출한 파티 아킨이 각본가로 참여한 B급 무비. 터키 이민자들의 애환을 코믹하게 다룬 드라마다.

또한 영화 '심판'에서 카티아와 그녀의 남편 누리를 변호하는 다닐로 파바 변호사 역으로 열연한 데니스 모쉬토가 바로 '케밥 커넥션'의 주인공 이보 역을 맡아 현지 극장가에서 유명세를 얻어낸 바 있다.

당시 파티 아킨, 누만 아카르, 데니스 모쉬토의 인연이 14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심판'까지 이어진 셈.

▲ '심판' 메인포스터(그린나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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