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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9.10.18 14:33

[권상집 칼럼] 설리를 향했던 폭력적 시선들

설리를 향해 따가운 눈총을 보낸 건 네티즌만이 아니다

▲ 故 설리 ⓒ스타데일리뉴스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설리(본명 최진리)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충격과 파장은 여전히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설리가 그 동안 악플에 대해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점에서 과거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한 또 다른 연예인들이 떠오른다. 당시에도 인터넷 실명제 여론이 비등했으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소리 없이 실명제 여론은 사라지고 말았다. 설리는 자신을 향한 수많은 악플에 대해 직접 소속사에서 대응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IP 추적의 문제, 브랜드 관리 등의 이유로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적절하게 악플에 대처하지 못했다.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로도 그녀의 사생활과 지난 일정 등에 대해서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기사는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모 인터넷 언론사는 설리가 사망 전날 ‘새벽배송 업체’를 통해 신선식품을 주문했고 사망 전날까지 SNS 활동을 활발히 했기에 정말 우울증에 의한 사망설이 맞느냐는 추측성 기사를 보도했다. 그녀의 SNS를 보면 가방 회사 신상품이 공개되어 있었고 어디에도 우울증과 같은 어두운 그림자나 흔적은 없다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었지만 우울증은 순간 순간 갑자기 찾아온다는 점을 모르는 무지한 기사였다.

국내 학술지에 다수 게재된 연구논문들에 의하면 우울증은 만성적으로 유지되는 경우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경우도 매우 빈번하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심리적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은 자신을 향한 폭력적 시선에 더욱 예민해진다는 점에서 설리가 전날 엔터테이너 활동을 활발히 이어왔다고 해서 긍정적인 정서를 그녀가 유지하고 있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문제는 그녀를 향한 폭력적 비난이 비난성 댓글을 작성한 네티즌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그녀를 희화화하고 성 성품화로 그녀에게 프레임을 씌운 일부 언론들에게도 있다는 점이다.

설리가 사망했다는 기사에도 어김없이 일부 언론은 설리의 노출 사진을 내걸어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았으며 어떤 언론은 설리의 자살이 남성들의 수많은 악플 때문이라며 이번 사건을 여성 VS. 남성이라는 대립구도로 전환시켜 기사의 자극성만 유발시키고 있다. 특히, 일부 언론은 여성 혐오에 저항하다 비극으로 끝난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설리를 둔갑시켜 네티즌들의 비난에 직면했다. 상당수 언론사 역시 설리를 향한 폭력적 시선을 보여왔던 네티즌들의 경각심과 자성을 촉구하는 기사만 내보냈을 뿐 자신들을 향한 내부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 댓글은 기본적으로 익명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대부분 거친 욕설이 난무하고 엽기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1969년 Zimbardo라는 학자는 익명성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규범의식을 약화시켜 훨씬 더 충동적이고 일탈적인 행위를 활성화시킨다고 얘기했다. 이미 50년 전부터 익명성이 지닌 폭력적 시선과 잣대의 위험성을 학계에서 경고한 것이다. 특히, 익명성의 정도가 높으면 정보의 신뢰도가 감소해서 결국 인간 관계를 급속도로 해체시키고 인간의 존엄성까지 파괴한다고 1998년 Johnson & Miler는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 설리의 사망 소식 이후 다양한 언론사는 칼럼니스트들을 동원해 네티즌들의 댓글 문화를 개선해야 하며 폭력적 댓글에 대해 자성을 촉구하고 인터넷 실명제 전환을 요구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언론사들의 주장처럼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 무분별한 댓글 문화는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자극성 기사로 인터넷 여론몰이를 유도한 일부 언론사들에게도 분명히 책임은 있다.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유족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모 언론사가 기사로 빈소 위치를 공개하며 또 한번 사회적인 지탄을 받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 故 설리 ⓒ스타데일리뉴스

설리가 고인이 된 이후에도 이를 남녀 프레임으로 유도하는 언론, 사망 소식을 전함에도 굳이 그녀의 노출 사진을 전면에 걸어놓은 언론, 그리고 정치적인 음모론 등으로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황색 언론 등은 여전히 설리 사망의 주요 원인을 네티즌들에게 돌리고 있지 자신들의 탓이라고 반성하거나 성찰하지 않고 있다. 설리가 과거 인터뷰에서 가장 고통을 겪었던 건 자신을 향한 네티즌의 댓글도 있었지만 자신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엔터테인먼트 관련 언론사들이 삽시간에 자신과 관련된 내용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데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예인으로서 대중의 비난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 물론 그 전제는 상대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법을 행했을 경우로 국한해야 한다.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자유롭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네티즌은 비난을 퍼부었고 언론사는 이를 빠짐없이 대중에 다시 유포했다.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네티즌의 비난에 동조했던 일부 언론사는 현재 네티즌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그러나 설리를 향한 폭력적 시선에 일부 언론사가 가장 큰 책임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네티즌 비판 이전에 자극성, 추측성 보도가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은 건 아닌지 모든 언론사가 자성할 일이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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