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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인터뷰
  • 입력 2013.10.15 08:02

[인터뷰] 배우 최규환 "하정우는 페이스 메이커, 존경받는 배우 되기 위해 달리겠다"

영화 '롤러코스터'에서 호연 "생각이 하나씩 현실이 되어 기쁘다"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롤러코스터'는 잘 알다시피 배우 하정우의 첫 연출작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핫한 이슈가 된 이 영화는 얼마 전 열린 언론시사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낸 하정우의 연출력에 호평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한 것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였다.

'롤러코스터'를 말하면 우리는 아직 하정우와 정경호를 이야기하지만 영화를 접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매력을 느끼면서 '저 배우가 누구지?'하고 궁금해 할 것이다. 새로운 얼굴들의 등장은 분명 영화를 신선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한 배우가 있다. 주인공 마준규(정경호 분)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대는 스토커, 이륙 직전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항의하고 심지어는 면도칼로 얼굴을 베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는 '진상손님'. 결국 기자로 밝혀지는 그의 신분. '양복쟁이 김현기 기자'로 나오는 배우 최규환이다.

그를 아는 이는 배우 최주봉의 아들로, SBS '기적의 오디션'에 출연한 배우로, 또 하정우의 대학 동기로 기억될 수 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에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이제 그 모든 꼬리표를 떼고 '배우 최규환'으로 기억될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존경받는 배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최규환의 이야기다.

▲ 영화 '롤러코스터'에서 '김현기 기자' 역으로 호연을 펼친 최규환 ⓒ스타데일리뉴스

Q. '롤러코스터'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지난해 추석 때 하정우에게 연락을 받았다. 하정우와는 학교 동기고 어렸을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는데 대뜸 '영화 하나 만들려하는데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추석 당일 날 차례 지내고 저녁에 만났는데 이미 시나리오 초안이 짜여져 있었고 먼저 캐스팅된 친구들이 앉아있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없었고 틀만 잡힌 시나리오였다. 워낙에 하정우가 즉흥적인 성격이다보니 이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배우들에게 바로 연락을 했고 모여서 리딩하고 아이디어 구하고 에피소드 넣으며 3개월 간을 연습하고 그 해 12월 양수리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Q. 처음 역할을 제의받았을 때 어땠나?

대본에 '양복쟁이'라 써 있었다. 상징적인 말이다. 원래 기자 역할을 좋아하고 기자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형사나 기자에 관심 많았다. 왜 이 역할로 불렀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섬세하면서도 예민한 내 성격을 하 감독이 잘 파악했다.

기자 역할은 사실 실제 기자를 모델로 했다. 하정우가 만난 기자 중에 아이돌 가수들을 굉장히 공격하는 기자가 있다. 하정우가 흥미있어 한 것은 그 기자와 독대를 했을 때는 너무 선하고 부끄러움도 많고 수줍어하는데 글을 보면 굉장히 공격적이라는 거다. 그런데 자기나 다른 탑 배우에겐 못쓰고 아이돌 가수만 공략하는 게 흥미로웠다. 그 기자 이야기하며 생각이 나서 양복쟁이 캐릭터를 만들어서 해보자 제안했다.

영화 속 극중 이름은 대부분 하정우의 친구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을 살짝 바꾼 이름들이다. 내가 맡은 '김현기'라는 이름은 하정우의 중학교 친구고 나와도 술자리에서 만나는 친구다. 워낙 연극할 때부터 하정우가 이 이름을 쓰다보니 실제 김현기도 많이 보니까 재미있다고 하더라.

비행기 사무장의 이름은 '강신추'는 실제 배역을 맡은 배우 강신철의 이름을 고친 거고 주인공 '마준규'도 남자 스튜어디스로 출연하는 김준규의 이름에서 따온 거다.

Q. 준비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그 과정을 알 수 있을까?

오디션을 따로 보지 않았다. 일본인 스튜어디스 역의 고성희와 비서 역의 손화령만 새롭게 캐스팅된 경우고 나머지는 지인들을 캐스팅했다. 회장님 역의 김기천과 스님 역의 김병옥은 하정우가 부탁을 해 모신 분들이다.

큰 공간을 빌려 의자를 배치해 중요한 신들을 연극처럼 테스트 촬영을 했고 대사를 평이하게도 해보고 빨리도 해보고 뮤지컬처럼 노래 곡조를 붙여가며 다양하게 실험해봤다.

하정우가 배우들에게 온갖 영업비밀을 전수해가며 연기를 끌어내고 흑백영화 등을 많이 보여줬다. 빌 머레이식 연기를 하정우가 요구했는데 이 배우의 특징은 심드렁하고 귀찮고 뭔가 하기 싫어하는 모습에 말투도 툭툭 던지는 식이다. 이 스타일의 연기를 지향했다.

Q. 배우들이 홀딱 벗고 연기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영화엔 그런 장면은 없고(웃음), 영화 하면서 하정우와 거의 매일 술을 마셨는데 술자리에서 하정우가 제임스 딘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신인 시절 첫 촬영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스탭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봤다는 거다.

그러면서 '우리도 편하게 연습할 땐 괜찮은데 카메라가 돌면 긴장하는 모습이 보여진다'고 말하길래 그럼 나도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배우들을 다 내보내고 남자 배우만 모여 팬티까지 벗고 연기한 적이 있었다.

▲ 밝게 웃고 있는 배우 최규환 ⓒ스타데일리뉴스
Q. 지금까지 이야기가 모두 촬영 전 이야기였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으면 촬영이 수월했을 것 같다.

촬영 회차가 적었다. 하 감독 마인드가 애드립과 즉흥을 믿지 말자였다. 연습을 통해 이루어진 것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테이크를 줄이고 빨리빨리 뽑아내자고 했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해 점심 먹고 끝내기도 했다. 촬영은 정말 편했다. 날씨가 추운 것만 빼면.

Q. 얼굴에 피를 흘리며 기내로 들어오는 일명 '피칠갑 장면'이 인상깊었다. 언론시사에서 '추격자'의 패러디라고 들은 것 같은데

여러 가지가 섞였다. 원래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어릴 때 주말의 명화에서 코미디 영화를 봤는데 비행기가 요동을 치니까 안에 있는 사람이 자꾸 칼로 얼굴을 베이는 장면이 기억이 났다. 아이디어 회의 때 제안했더니 '오케이, 써먹자'해서 쓰게 됐는데 '추격자' 이야기는 얼마 전 부산에서 가진 인터뷰때야 알았다. 그 땐 그런 말이 없었다.

연기할 때 하정우가 주문한 것이 마치 자신이 '추격자'에서 살인을 한 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 보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이라 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추격자'뿐만 아니라 하정우가 영화에서 연기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네, 괜찮아요' 식의 연기가 나왔고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해 주신 것 같다.

▲ 지난 8일 열린 영화 '롤러코스터'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최규환(왼쪽에서 두번째) ⓒ스타데일리뉴스
Q. 그 외에도 아이디어를 낸 장면이 혹시 있나?

말을 더듬거나 혹은 말이 막히는 모습이 있다. 실제로 연기할 때 말을 반복하거나 더듬는 어투를 쓰자고 했다. 화가 나면 안경을 벗고 소리를 치는 습관을 정우가 기억하고 있었다. 스튜어디스와 실랑이하는 첫 장면에서 안경을 벗고 '할 수 없죠' 라고 대사를 친 것도 그것을 인용한 거다.

각 캐릭터마다 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실제 성격이 들어있다.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들에게 '자기 자신을 연기해봐라 자기 자신을 캐릭터로 연기해보라'고 주문했다.

Q. 촬영 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륙도 하기 전 기내식을 주문하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다. 아직 카메라 앞에서 뻣뻣하고 자유롭지 못해 긴장했다. 감독이 모니터보니 연습과 달라 마음에 안 들자 나에게 '너 잘하는 바보연기 한 번 해봐'라고 속삭였다. 순간 뒤통수 맞는 느낌이었다. 적재적소에 이런 카드를 던질 줄이야.

갑자기 내가 바보 말투로 연기를 하니 스탭들은 '슛들어간 건가'라고 의아해하는데 상대로 나온 김재화가 영리하게 잘 받아들였다. 그 친구가 눈물이 글썽글썽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눈물이 죽 나더라. 너무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절실함이 더 생겼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있냐는 아이러니한 회의감이 들어 눈물이 나오는데 감독이 '컷' 하고 다시 제대로 들어가자고 했다. 일종의 긴장풀기였다.

Q.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부산에 오신 분들이 일단 영화를 열광적으로 좋아하시는 분들이고, 너무나 좋게 반응해주셨다. 하정우와 정경호 효과를 톡톡히 봤다(웃음). 거의 모든 홍보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든지 다 갔다.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게다가 해운대의 모든 술집, 가게 등에 우리 포스터를 붙이고 래핑차를 운행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다. 돈을 써서 한 것이 아니라 우리 팀에서 몇몇 분들이 다 몸으로 뛰며 한 것이다. 그랬기에 부산에서 가장 핫한 이슈를 일으켰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보람이 있었다.

예고편 처음 나올 때 하 감독이 배우들을 다 모으더니 "영화제 때 이슈되면 늦는다. 지금부터 SNS로 화제를 만들자. 각자 핸드폰 잡고 카톡으로 예고편 뿌리자"고 해서 카톡으로 예고편을 5백개, 천개씩 뿌리며 영화 알리고 조회수 올렸다.

어제(12일)도 화보 촬영으로 만나고 다시 술자리 가지면서 "이제는 무대인사다. 공격적으로 다 뛰어야한다"고 말했다. 사실 하정우가 영화 '군도' 때문에 부산과 서울을 왕복하는데 하정우가 없으면 정경호 중심으로, 정경호가 없으면 하정우 중심으로 계속 뛰자고 이야기가 나왔다. 아마 이런 팀이 없을 것이다.

Q. 개봉을 앞둔 소감이 어떤가?

설렌다. 부산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언론도 좋게 리뷰를 써주시고 봐줄만한 영화라 평해줘 감사드리고 설렌다.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 배우가 '존중'을 넘어 '존경받는' 직업이 되기를 바란다는 최규환 ⓒ스타데일리뉴스
Q. 친구이자 동기인 하정우가 엄청난 스타가 됐다. 부러움이나 시기, 질투를 느낄 수도 있는데

질투, 시기, 부러움.. 사실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큰 것은 동기였고 같이 연극을 했던 동료 김성훈이 배우 하정우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보면서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다는 즐거움이다.

우리가 어릴 때 이야기했던 연기 담론들, 연기에 대한 생각들이 '배우 하정우'를 통해 대중에게 인정받고 있고 그것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우리의 말이, 성훈이의 말이, 내 말이 맞아가면서 나에 대한 확신을 이끌고 있다.

하정우는 나에겐 페이스 메이커다. 하정우가 전력질주하면서 내가 달리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1년 반 동안 일본에서 활동했을 때 도쿄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하정우가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고 함께 하자고 했다. 그 약속이 하나하나 이루어진다는 게 큰 기쁨이다.

Q. 배우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SBS '기적의 오디션'에 참가해 화제가 됐었다

일본에서 일본말로 연기를 했는데 남의 나라 말로 하니 잘 될 리가 없었다. 애드립도 불가능했다. '한국말로 하면 정말 잘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던 차에 일본에서 지진이 났고 어머니도 걱정하셔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눈에 띈 게 '기적의 오디션'이었다. 때마침 매니저도 없는 홀몸이기에 다시 깨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참가했다. 나를 알리고 싶다는 단순 명료한 이유였다.

한 달 가까이 합숙하면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연기에만 집중한 시간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연기에만 신경쓴 적은 없었는데.. 귀중한 경험이고 내가 누구인지 다시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뭐하러 그런 데 나가냐?' 하는 사람과 '대단한 용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난 용기가 대단해서 간 것이 아니라 내게 그냥 주어진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독특한 경험으로 보일 지 몰라도 나에겐 그냥 선택이었고 내가 선택했기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다 내가 선택한 것이다.

▲ '어디보자 사진 잘 나왔나?' 바라보는 최규환 ⓒ스타데일리뉴스
Q. 아버지인 최주봉 선생의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절대적이다. 연기적인 면으로 보면 희대에 손꼽히는 희극 캐릭터다. 서민들에게 공감받았던 것이 아버지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캐릭터를 해왔지만 아버지하면 '만수 아빠'와 '쿠웨이트 박'이 남아있다. 20년이 넘도록 기억될 정도로 너무 중요한 캐릭터였던 것이다. 거부감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로 봤을 때는 배우의 힘을 보여주신 분이다. 유복한 집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라는 직업 하나로 집을 일으키고 아들들 다 대학보내고 형님 장가를 보냈다.

다른 일이나 사업을 하지 않으셨음에도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시는 것을 보며 배우로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으면 가정을 건사할 수 있고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다른 일 하지 않아도 한 길을 계속 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많은 걸 배웠다.

사실 아버지는 연기에 대해 거의 말씀 안하신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 힘 좀 빼고 해" 이런 이야기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Q. 30년 후 사람들이 '배우 최규환'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나?

배우의 위상을 올려놓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지금 사람들이 배우를, 연기자를 좋아하고 선망하고 부러워한다. 몇 십년간 연기를 하신 분을 존중하는데 존중을 넘어 존경하는 직업군까지 들었음 좋겠다.

그게 가능해지려면 배우들이 무대 연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연극을 해야하고 사람들이 연극을 많이 보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가능한 것 같다. 내가 사랑하고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배우라는 직업이 존중을 넘어 존경받는 직업으로 이어졌으면 좋겠고 그것에 일조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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