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박홍준 기자
  • 영화
  • 입력 2013.10.07 06:23

[리뷰] 롤러코스터 타는 그 느낌 하정우는 아니깐

하정우 감독의 성공적인 데뷔작, 그 병맛 가득한 매력에 빠져보자

[스타데일리뉴스=박홍준 기자]

롤러코스터(Fasten Your Seatbelt)

감독: 하정우
출연: 정경호, 한성천, 김재화, 최규환, 김기천, 김병옥, 강신철

 

▲ 제공:CJ 엔터테인먼트
연출? 그까이거 대충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클린트 이스트우드, 멜 깁슨, 케빈 코스트너, 벤 애플렉, 숀 펜...위 배우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바로 배우 출신 감독이라는 점이다. 스타 출신 연기자들의 일회성 외도로 그치는 경우도 많지만 오히려 배우로의 커리어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감독들이 헐리우드에는 많다. 일일이 이름을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연기와 연출을 겸업하거나 아예 연출로 전향한 감독들을 우리는 그 동안 많이 봐 왔다.

물론 국내에도 그러한 인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공연히 감독으로서의 꿈을 밝힌 정우성, 유지태 같은 배우들의 연출작은 사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평가받기보다는 스타의 연출작이라는 측면만 부각되어 온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톱스타 하정우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자신의 작품을 연출을 한다. 주연이 아니라 감독이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영화 정보를 접할 때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연기자로서의 재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사람들은 그의 연출력에 대해 의문과 불신을 갖기 마련이다. 왜냐? 어떤 일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분야에서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람들은 그가 부지불식간에 다른 분야에는 관심조차 갖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주특기 분야에 많은 정력과 시간을 투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은 공평치 않다. 세상에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각기 재능을 뽐내는 천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국내에서 성공한 전례가 없는 만큼,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의구심을 안고 이륙한 하정우 기장의 롤러코스터 호는 완성도와 대중성의 공항에 가뿐하게 안착했다.

 

 

이 병맛 느낌 가득한 영화를 보라!

영화 <육두문자맨>으로 일약 한류스타가 된 마준규(정경호).
비행공포증, 편집증, 결벽증까지 갖출 건 다 갖춘 마준규는 일본 활동 중 터진 여자 아이돌과의 스캔들로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어딘가 오버스러워 보이는 승무원들과 파파라치보다 무서운 사상 초유의 탑승객들.
이륙하는 순간부터 언빌리버블한 상황들의 연속.

기상 악화로 비행기는 두 번이나 착륙에 실패하고, 설상가상으로 연료가 다 떨어져 가는 와중에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육두문자맨이란 영화 속에서 마준규(정경호 분)가 출연한 캐릭터의 이름이다. 아무리 그가 연기한 인물이 욕쟁이 캐릭터라 할지라도 육두문자 맨이 뭔가? 더구나 그가 탄 비행기는 바비 항공이란다. 일반관객들이 보기엔 유치하다 못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이질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승무원들은 말 같지도 않은 대사들을 내뱉고,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 면면을 보자면, 짜사이 그룹 회장과 카리스마 가득한 여비서, 무개념 신혼부부, 정체불명의 양복쟁이, ‘나 혼자 밥을 먹고’ 라는 엉터리 불경을 외는 중까지 이게 정말 진지하게 쓴 시나리오가 맞을 정도로 재밌게만은 볼 수 없는 내용이다.

키치라고 인정하기엔 지나치게 저급하고, 유치뽕짝 장난이라고만 보기엔 상황이나 대사가 너무 매끄럽고 아귀 딱딱 맞아떨어지게 돌아간다. 그렇다고 수준 높은 부조리극이라고 하기엔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고.

그렇다고 굳이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애초 이 영화의 내용과 캐릭터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하정우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니다. 설정 자체가 사실성을 배제한 상태에서 시작한 만큼 내러티브 자체보다는 상황 그 자체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이나 인물들 간의 연기 톤이 약간 안 맞는 부분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영화의 허점으로 보기엔 칭찬하고 싶은 미덕이 더 많다.

 

마준규 역을 맡은 정경호는 군 제대 후 오랜만의 스크린 나들이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나지막한 듯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맛깔나는 대사를 내뱉는다. 이 영화는 물론 하정우의 영화지만 영화의 매력을 살린 일등공신은 당연 정경호다. 그간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가벼움 넘치는 양아치 캐릭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켜 훌륭히 소화해 냈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그에게서 배우 류승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영화에서 연기하는 캐릭터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실제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이 류승범의 실제 경험이라는 점 때문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정경호가 극중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는 뜻이리라. 청춘 스타라는 이미지가 강한 그지만 실제로는 [광식이 동생 광태], [폭력 써클], [거북이 달린다] 등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그를 진정한 메소드 연기자로 칭송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번 영화 [롤러코스터]에서 매력적인 스타 정경호가 아닌 연기자 정경호로 다시 평가받게 되리라 확신한다.

 

기장과 부기장 역을 맡은 한성천(기장 역), 임현성(부기장 역)은 실제로 친한 기장과 부기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이며 완벽한 앙상블을 선보인다. 승무원 역의 김재화, 김예랑, 김재영 등도 한 치의 빈틈이 없는 호흡을 맞추며 연기한다. 실제로 이들 연기자들 모두 중앙대학교 선후배인 만큼 역시나 같은 학교 선배이자 동기인 감독의 의중을 완벽히 이해하고 작품 속 역할에 몰입해 영화 속에서도 대사 한 마디, 호흡 하나에도 한 치의 어긋남 없는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회장 역의 김기천과 스님 역의 김병옥은 이제 웬만한 코미디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연기자인 만큼 이 영화에서의 연기 또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백프로 다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안과의사 역의 이지훈은 능청스러운 연기로 관객의 배꼽을 잡게 만든다. 마준규의 아줌마 팬 역할의 황정민과 사무장 역의 강신철 역시 제 몫을 다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발견은 회장 비서 역의 손화령이다. 연기자 손병호의 딸로 대중에게 알려진 그는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눈빛을 드러내면서도 얄미운 느낌이 들 정도로 주어진 캐릭터를 잘 연기해 냈다.

 

연기자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인 양복쟁이 역의 최규환은 알 수 없는 행동으로 극중 긴장감을 유발하는 캐릭터이자 다른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이 영화 속 캐릭터들에 다양함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하정우 감독의 대학 동기이자 [마들렌]에서 각자 신민아의 전 남자 친구와 조인성의 친구 역할로 영화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는 감독과 주연 배우로 다시 만났다. 최근 촬영을 끝낸 독립영화 [사도]와 , 개봉을 앞두고 있는 [황금을 안고 튀어라]에서 최강창민의 형 역할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 그는 대학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 하정우 감독의 영화 [롤러코스터]로 다시 한번 관객을 찾는다.

 

이제는 배우 하정우가 아닌 하정우 감독으로서...

영화 자체의 색깔 때문에 개봉 후 관객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은 이미 예상된 바다. 그 간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느낌의 이 매력적인 영화를 감상하고 유쾌하게 웃을 관객도, 혹은 불쾌감과 거부감을 느낄 관객도 있으리라.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에 만족감을 못 느낄 순 있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지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마준규라는 캐릭터도, 그가 겪는 일련의 해프닝도 아니다. 바로 하정우라는 신인감독이다. 우리는 그동안 독특함이라는 미명 아래 기존 영화의 관습을 전부 부정하는, 기본적인 영화 문법조차 모르는 가짜 감독들의 영화를 많이 봐 왔다. 정체불명의 영화를, 아니 영화라고 부르기도 낯 뜨거울 정도의 망작을 만들어 놓고, 자신만의 스타일이라고 항변하며 관객을 기만하는 사기꾼들도 많았다. 또한 일부 개그맨, 배우, 가수 출신 감독들의 엉성하고 수준 미달의 연출작을 보며 ‘영화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명제를 확인했다.

그러나 앞으로 하정우는 연출에도 관심이 있는 배우가 아니라 진짜 영화 감독으로 불리게 되리라 믿는다. 하정우의 연출력을 칭찬하고 싶은 이유는 독특한 색깔의 영화인 만큼 연출 또한 튀도록 만들려는 유혹이 있었을 텐데, 그런 자충수를 배제하고 기본적인 영화 문법에 충실한 정석적인 연출을 했다는 점이다.

 

팅팅 불어터진 스파게티 면에 고추장을 들이붓고, 익지도 않은 채소를 집어넣어 만든 스파게티를 두고 퓨전 음식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스타일의 요리를 만든 요리사가 아니라 사기꾼이나 요리사 자격도 없는 바보일 뿐이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은 이미 요리로서의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하정우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화려한 접시에 먹음직스러운 스파게티를 오롯이 내어 왔다. 물론 관객의 입맛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평가는 갈리리라. 하지만 그 누구도 하정우를 요리사라고 부르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제대로 요리 수업을 받고, 요리 실력을 연마한 요리사이기 때문이다.

젊은 감독 하정우와 개성 넘치는 젊은 배우들이 모여서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재미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관객들은 우려라는 항목을 살짝 지워도 좋을 것이다. 언제나 카메라 앞에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켜줬던 하정우는 이제는 카메라 뒤에서 관객과 만난다. 낯설어 할 필요는 없다. 신인 감독 하정우의 개성있는 웰메이드 데뷔작을 즐기면 그뿐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에서는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로도 유명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비], [기쿠지로의 여름], [아웃 레이지] 등의 영화 감독 기타노 다케시로 더 유명하다. 기자 역시 하정우가 배우 하정우뿐 아니라 영화 감독 김성훈으로서 더 유명해질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벌써 [허삼관 매혈기]의 제작 소식이 들려오는 만큼 어쩌면 배우 하정우보다 감독 하정우를 더 원하게 날이 생각보다 빠르게 올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부산에서의 열광적인 성원을 뒤로 하고 10월 17일 전국 500개의 스크린에서 관객과 만난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