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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홍준 기자
  • 영화
  • 입력 2013.09.17 07:36

[리뷰] 애프터 루시아, '왕따와 집단 성폭행, 소녀는 울지 않는다'

[스타데일리뉴스=박홍준 기자] 

▲ 제공:토러스 엔터테인먼트

애프터 루시아(Despues de Lucia)

감독: 미셸 프랑코
출연: 테사 라, 헤르난 멘도자, 곤잘로 베가 주니어

멕시코 푸에르토 발라타에서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로베르토는 딸 알레한드라와 멕시코시티로 이사를 한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로베르토는 레스토랑 셰프로 일하지만 아내의 죽음에 대한 고통을 쉽게 잊을 수 없어 직장도 그만두게 된다. 알레한드라는 친구의 남자인 호세와 잠자리를 하게 되고, 이후 두 사람의 섹스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학교에서 베라크루즈로 여행을 가게 된 알레한드라는 감금과 성폭행을 당하고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게 된다. 딸이 죽은 줄 안 로베르토는 딸의 동영상을 유출시킨 학생을 찾아 가는데… 

 

집단 괴롭힘, 성폭행.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유별난 교육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대한민국 학교를 경험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소재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이 작년에도 [돈 크라이 마미]와 [공정사회], 비슷한 두 편의 한국 영화가 개봉됐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두 작품과 달리 이 영화 [애프터 루시아]는 성폭행 당한 딸의 복수와 사회에 대한 분노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일상에서 우연히 닥친 비극,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구성원 간의 갈등, 그리고 성장기 소녀의 자아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영화는 꽤 관조적인 시선으로 알레한드라(테사 라 분)와 그녀의 주변 삶을 바라본다. 특이한 점은 말 그대로 원 씬-원 샷(1scene-1shot)으로 각 씬을 분할하는데 그로 인해 관객은 자유롭게 알레한드라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바라볼 수가 있다. 미셸 프랑코 감독은 특정한 시점이나 주제를 강요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장면을 보여주며 판단과 해석을 관객에게 맡긴다. 고정된 카메라는 꽉 막힌 현실의 창살(프레임)을 대변하며 화면에 깊이를 더해주고 우리로 하여금 영화 속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한 소녀의 시점을 조용히 따라가게 만든다. 

 

모든 것에 무료하게고 냉소적인-요즘 청소년들 표현대로 시크한(chic) 10대 소녀에게 학교라는 곳은 가장 경멸하는 공간이자 유일한 세상과의 접점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그 나이대 소년, 소녀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이자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존재다. 그렇기에 그들과 동화되고 싶어 하고, 때로는 그 집단 내에서 우월한 존재로 부각되고 싶어한다. 예쁘고 매력적인 알레한드라는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와 충동적인 섹스를 하게 되고 그것을 찍은 영상이 유포됨으로써 졸지에 인기있는 전학생에서 왕따로 전락한다.

그 동영상 하나로 알레한드라는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친구들은 이제 밥도 같이 먹지 않고, 창녀라고 놀리며, 화장실 내에까지 따라 들어와 성폭행을 시도하기도 한다. 요즘 말로 생일빵(오물이 섞인 케이크를 먹이는 등)을 호되게 치르게 하고, 괴롭힘의 강도는 점점 심해져 여행지에서는 학대 수준의 폭력을 가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이들을 파멸로 이끈다. 괴롭힘의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이나 그리고 가해자까지도 전부 이러한 폭력행위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분노보다는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도 우리 역시 이러한 현실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카메라나 사실적인 현장음, 화면과 사운드의 병치를 통해 다큐멘터리 적인 사실감을 드러내는 기존의 영화들과 달리 오히려 이 영화 [애프터 루시아]는 항상 고정된 카메라에 단 한 번의 팬(PAN)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극도로 절제된 연출을 보여준다. 감독이 전혀 영화 속 세상을 주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이런 것을 통해 연출되지 않는 현실을 연출한 감독의 센스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친구들이 알레한드라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억지로 오물을 먹인다든지, 성폭행을 시도한다든지 하는)에서조차 카메라는 그녀에게서 한 발 떨어져 그녀와 그녀 주변 상황을 과감없이 관객에게 보여줌으로 해서 더 적나라하게 폭력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편집이 없이 고정된 롱테이크 장면은 오히려 관객들로 하여금 시선을 피할 데조차 없게 만든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기념비적인 작품 [캐리]의 21세기 버전과도 같은 이 영화 [애프터 루시아]는 학교라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자 하지만 그들로부터 가학적인 폭력을 경험하고 그로 인한 아픔을 다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만 [캐리]가 공포와 판타지의 형식으로 성장영화를 학교 괴담으로 변용했다면, [애프터 루시아]는 당사자는 그 폭력 행위로부터 결국 도망치고 그로 인해 가족이 직접 복수를 하며 결국엔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가족영화의 형식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애프터 루시아]는 제 65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17회 부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알레한드라 역의 테사 라는 절제된 연기로 역할을 잘 소화해 냈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배우다.

여담이지만 클로이 모레츠가 주연을 맡은 [캐리]의 리메이크 작 소식이 들려오는데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하는 캐리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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