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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지은 기자
  • 문화
  • 입력 2019.08.13 10:58

[인터뷰] 사랑의 모습 그려내는 일러스트레이터 '집시', 독자에게 색연필 내밀다

도서 '집시 컬러링북: 설렘의 온도' 출간, 완성품이던 작품을 함께 채색하는 시간 제안

[스타데일리뉴스=박지은 기자] 간만에 술 한 잔 기울일 때였다. 취기가 올라올 즈음 소주병에서 미인도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마주했다. 아련한 선과 풍부한 색감으로 표현된 그림은 소주병 위 가수 수지의 일러스트였다. 명화를 연상케 하는 그림의 정체는 바로 일러스트레이터 집시의 작품이었다.

▲ 유명 브랜드와의 예술작업 콜라보  

그녀는 광고계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예술 분야 셀럽(celebrity)이기도 하다. 10대 타깃 게임 콘텐츠부터 유수의 브랜드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아우르며 종횡무진 중이다. 최근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기 드라마 ‘첫사랑은 처음이라서’에 삽입된 일러스트도 큰 화제였다.

무명의 세월을 묵묵히 거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구축한 집시 작가는 독특한 스타일의 인물화로 유명세를 얻었다. 대형 포털에 작품을 연재하는 인기작가가 된 그녀가 독자들에게 컬러링 협업을 제안한다. 컬러링북 ‘집시 컬러링북: 설렘의 온도’를 출간하며 독자가 참여할 장을 연 것이다. 집시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 몽환을 그리는 작가, 집시(Zipsy)

Q. 작가님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그림으로 하는 일이라면 무엇도 가리지 않고 해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생계형이라 자칭하지만 누구보다 예술에 대한 갈망이 큰 작가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 '집시 컬러링북'의 저자 집시 작가 ⓒ씨즈온

Q. 특이한 필명을 쓰는데, ‘집시(ZIPSY)’의 의미는 무엇인지.
예명인 ‘집시(ZIPSY)’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에 등장하는 ‘에스메랄다’를 모티브로 삼았다. 아름다움과 다재다능한 재능을 갖춘 집시였던 그녀는 구걸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얻은 이득을 함께 나눈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지조와 신념을 가진 모습에 큰 동경심을 품게 되었고 예명 역시 ‘집시’로 지었다. 반전은 에스메랄다의 출신은 본래 집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릴 적 납치를 당해 그 틈에서 자라면서도 자신의 본질을 잊지 않은 모습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Q. 배경이 흥미롭다. 하지만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았을까.
물론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겠지만, 환상을 깨시지는 말라. 1세대 여류 소설가인 ‘전혜린’ 작가의 일화를 들어보면 소설 속 장면이 연상될지도 모른다. 그 작가가 독일의 슈바빙 지역에서 유학하던 시절, 우연히 방문한 집시촌에서 본 집시들이 마치 예술가를 연상케 했다고 하더라. 주눅 들어 있는 소매치기나 걸인이 아닌 지조 있는 당당한 모습으로 에스메랄다를 떠올리게 했다고 하니 말이다.

Q. 지인이나 관심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작가님의 유명세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본인의 유명세를 체감하시는지.
사실 유명인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7~8년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무명의 세월을 묵묵히 보냈다. 굳이 유명세라고까지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업계에서 이름을 알아주기 시작한 것은 2년 정도 된 것 같다. 아마 인물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시기가 도래하며 꾸준히 작업한 결과물이 빛을 본 것이리라 여긴다.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다.

Q. 무명 시절 작품은 어떻게 공유했나
어느 작가라도 비슷한 한계를 겪을 것 같다. 홍보와 노출의 한계다. 딱히 전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주로 SNS를 통한 소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초기 싸이월드에서 시작해 블로그, 인스타그램 근래에는 유튜브까지 넓혀가 있다. 처음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소소한 교류에서 더 큰 공감이 생겨났다.

 

# 집시, 독자와의 공동작업의 손길을 넌지시 건네다.

▲ '집시 컬러링북'의 저자 집시 작가 ⓒ씨즈온

Q. 금번 ‘집시 컬러링북: 설렘의 온도’가 출간과 동시에 분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어떤 책인가.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연재됐던 작품들을 모아 ‘닿음’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책에 담긴 작품 중 대중적인 인기가 컸던 54점의 뽑아 컬러링북으로 구성했다. 아무래도 기존 팬들의 관심과 애정이 컸던 만큼 그들과 함께 간접적으로나마 공동으로 작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어 기획하게 됐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과 동시에 팬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크게 들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담았는지 궁금한데.

전작인 ‘닿음’은 책의 초반부부터 마지막까지 의식의 흐름을 갖고 작품들이 전개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중 대중의 관심이 높으면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그림들을 선정해 채웠다. 팬의 연령이 18~25세가 가장 많았던 점을 고려해 감수성을 어떻게 담아낼지 고려했다. 건전하면서도 에로틱한 미묘함이 특징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Q. 책의 특징이나 즐거움의 요소를 꼽자면.
평소 컬러링북을 제작해보고 싶었다. 색으로 가득 차 완성이 되어버린 작품에서는 ‘선’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채색보다는 선 작업에 더 신경을 기울이는 편인데, 작품의 선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굳이 칠하지 않고 ‘선화’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게 여백도 많이 남겼다. 예를 들면 자유롭게 색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아기자기한 배경이나 패턴, 무늬, 식물 등이 그것이다.

Q. 쉽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나와 같은 초심자에겐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의욕만 앞세워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자유롭게 참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 그래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독자들을 위해 책의 앞부분에 ‘컬러링 레슨’이라는 가이드 항목을 넣었다. 음영 넣기, 옷 주름, 머리카락 표현 등 자신만의 표현이 가능하도록 기본적인 테크닉 방법을 알려준다. 또 색감에 민감한 독자를 위해 평소 애용하는 컬러칩(Color Chip)을 첨부하기도 했다.

Q. 전문 도구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간단한 색연필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색은 풍족할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36색 구성의 색연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정도로 구성해도 충분할 것 같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옛말도 있지 않나. 나의 경우 72색 정도를 활용하고 있는데, 아직 장인은 아닌가보다. 독자 여러분들도 부담 없이 편히 즐기면 좋겠다.

Q. 독자들이 참여한 작품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

▲ 도서 '집시 컬러링북: 설렘의 온도' 독자 참여작

사실 독자들의 수준이 그렇게 높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집시 컬러링북’을 태그하는 모든 게시물에 들어가 ‘좋아요’를 남기는데, 그 과정에서 특이한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구스타프 클림트’ 스타일의 작품이 인상 깊었다. 덩굴식물 모티브나 유연한 선으로 장신된 철제난간, 꽃무늬 패턴 등으로 유명한 스타일인데 팬들이 이런 스타일로 작품을 재창조해주니 감흥이 새로웠다. 정말 공동작업을 하는 기분이 들어 신기하기도 했다. 그 외 클림트 스타일 채색이나 콜라주로 잘라 붙여 만든 작품 등 즐기면서 노는 모습을 보니 더욱 보람이 컸다.

 

# 작품, 그리고 새로운 여정

Q. 기업과의 콜라보가 많은 편이다. 어떻게 진행이 되는가.
보통 가장 기본적인 스케치 후 회의를 거친다. 이후 조율 과정에서 디테일스케치가 완성되면 최종까지 3~4단계의 과정이 진행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협업은 주류인 ‘처음처럼’ 작업이었다. 보통 대행사를 통해 의뢰를 받는 형태로 진행을 해왔는데, ‘처음처럼’의 경우는 회사에서 직접 연락이 왔다. 원래 애주가이기도 하지만 모델이었던 ‘수지’에 대한 애정도 컸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이후 회사에서도 만족스런 평가를 받게 되어 만족스러웠다. 그 외에도 온라인 게임 ‘테일즈 러너’작업은 10대에게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고, 넷플릭스의 경우도 큰 인기를 끌었다.

Q. 그 외에도 활발히 활동하시는 것 같은데
온라인에서 클래스를 운영 중이다. 오프라인 강의는 5년 정도 지속해왔고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최근 들어 온라인 강좌도 오픈했는데 의외로 인기가 높다. 해외 혹은 지방에 거주하거나 시간 여건상 수업에 참석이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물에 집중해서 강의중이고 대면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피드백을 열심히 진행중이다.

Q. 한창 바쁘실텐데 곧 떠나신다고
결혼 전부터 남편과 논의했던 일이다. 얽매임 없이 세계여행을 떠나보자는 취지에서 장난처럼 했던 이야기가 정말 현실이 됐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이 직접 현지인들과 파티를 꾸리고, 나는 그림을 그리며 세계를 떠돌아볼 생각이다. 그 시작은 아프리카의 세렝게티로 정했다. 대단원의 시작처럼 대자연에서부터 시작해 유럽 그리고 중동까지 1년의 여정을 계획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보고자 한다.

▲ 도서 '집시 컬러링북: 설렘의 온도' ⓒ씨즈온

Q. 한편으로는 부럽지만, 지금이 한창 전성기 아닌가?

1년이라는 시간이 길지 않다 생각한다. 예명인 집시처럼 전 세계를 떠돌며 또 한편으로 온라인으로 교류하는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다시없을 기회인만큼 최선을 다해 즐겨보려 한다.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들 모두를 SNS를 통해 독자들과 나눌 수 있도록 잦은 소통을 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컬러링북을 통해 그림을 차분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채색을 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심경과 분위기를 상상해가며 공동작업 하는 기분을 가지면 좋겠다. 독자들이 그리고 채색한 작품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제가 직접 가서 모두 공감해주며 응원하려고 한다. 함께 컬러링으로 즐거운 시간을 나눠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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