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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영화
  • 입력 2013.09.13 17:35

[리뷰] '우리 선희', 홍상수는 반복한다. 그 리듬이 참 '웃긴다'

어려운 영화 아닌 재밌는 영화. '진짜 코미디 감독'은 홍상수다

[스타데일리뉴스=임동현 기자] 홍상수는 계속 반복하고 있다. 북촌에서 잠시 어느 어촌으로, 서촌으로 갔다가 다시 북촌으로, 그의 이야기는 계속 뱅뱅 맴을 돈다.

어디선가 본 캐릭터들이 다른 작품에서 다시 나오고 이름과 나이는 달라도 비슷한 인물 군상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지겹지가 않다. 이상하게 재미있다.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는 그의 영화를 지배하는 가장 큰 재미 요소다.

▲ 영화 '우리 선희' 포스터 (전원사 제공)

홍상수는 평단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이다. 세계적으로 그의 영화는 인정받고 평론가들은 그의 영화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어려운 표현을 쓰며 그의 영화를 평한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 관객들은 그 어려운 글들에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홍상수의 영화는 오히려 뇌를 비우고 보는 게 더 재미있다. 생각없이,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웃음이 나온다. 그게 바로 홍상수의 노림수다.

그 웃음이 파안대소던, 몰래 웃는 웃음이던, 실소던, 심지어 비웃음(비웃음도 어쨌든 웃음아닌가?)이던 상관없다. 개개인마다 영화를 보는 느낌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마치 쳇바퀴를 도는 듯한 그의 이야기는 비록 날은 무뎌졌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10여년 전 '생활의 발견'을 본 기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게 진짜 코미디 영화다'. 그 때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 영화감독은 홍상수라고 생각했다.

10년이 지나고 기자는 올해 그의 영화 두 편을 봤다 (아니, 뒤늦게 본 '북촌방향'을 포함하면 세 편이다). 그리고 다시 확신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코미디 영화감독은 역시 홍상수라고.

▲ '우리 선희'의 세 남자는 선희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전원사 제공)

홍상수는 이번에 '우리 선희'를 들고 나왔다. 아마 홍상수의 영화를 계속 지켜본 사람들은 등장하는 배우들만 봐도 어떤 캐릭터인지 감이 올 것이다.

정유미와 이선균은 '옥희의 영화'에서 이미 커플로 출연했다. 이선균은 올 초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왔다. 전작이 영화과 교수였다면 이번엔 영화과 대학원 학생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김상중은 '북촌방향'의 캐릭터와 다를 게 없다. 정말 시사회 때 이선균의 말처럼 '이름과 나이만 바뀐 채' 같은 영화에 출연한다는 느낌이 확 든다.

제목처럼 영화의 주인공은 '우리' 선희(정유미 분)다. 선희는 유학 추천서를 받기 위해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최교수(김상중 분)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전 애인이면서 여전히 선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문수(이선균 분)와 선배 감독 재학(정재영 분)을 만난다. 문수와 재학은 선후배지간이고 재학과 최교수도 선후배지간이다. 셋 다 모두 선희를 '여자'로 생각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반복되는 두 가지의 말이 있다. '깊이 끝까지 파 봐야 자기 한계를 알 수 있다'는 말과 '선희는 예쁘고 똑똑하고.. 근데 또라이 기질이 있고..' 이 두 말이다. 먼저 첫번째 말은 낮술을 마시며 선희가 문수에게 하는 말이자 술에 취한 문수가 재학에게 반복하는 말이고 다시 술자리에서 재학이 선희에게 하는 말이다. 최교수는 자신이 그 말을 선희에게 해 준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 세 남자의 관심의 대상, '우리' 선희(정유미 분). (전원사 제공)

두 번째, 선희에 대한 말은 선희의 세 남자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선희에게 말한다. 압권은 이 세 남자가 경복궁을 거닐 때 서로 그 말을 해가며 대화를 하는 장면이다. 자연스럽게 선희와 세 남자의 관계가 떠오르고 거기에서 웃음이 유발된다. '아, 선희라는 여자가 누구길래 저 남자들이 저러나?' 이렇게.

홍상수는 이제 '반복'을 자신의 스타일로 삼고 있다. 장소의 반복, 시간의 반복, 캐릭터의 반복, 그리고 언어의 반복. 그런데 그 반복이 마치 노래의 리듬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리듬에 사람들은 웃는다.

아주 쉽게 이야기하자. 홍상수 영화는 웃긴다. 웃기니까 재미있다. 어려운 영화 아니다. 홍상수 영화는 '웃기는' 영화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웃게 만드는 홍상수 이야기의 매력. 그것이 홍상수를 최고의 코미디 영화라고 지금까지 생각하는 이유다.

▲ "깊이 파봐야 자기 한계를 안다" 술자리에서 선희(정유미 분)가 한 말은 묘하게 인물들에게 반복되서 들려진다(전원사 제공)

여전히 홍상수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다음 이야기가 또 궁금하지만 사실 다작이 조금 우려스럽긴 하다. '우리 선희'는 그 우려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하지만 그 반복이, 그 리듬이 언제까지 계속 먹힐까?

솔직히 그의 다음 작품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그의 이야기가 어딘가로 다시 전진했으면 좋겠다. 어쨌든, 우려는 되지만 그래도 '우리 선희'는 재밌다. 일단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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