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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9.13 08:50

[TV줌인] 주군의 태양 "주군의 마지막 고백, 태양 울다!"

더 많이 좋아하는 애가 죽어요! 그러나 희망을 예감하다

▲ 주군의 태양(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때로 믿음은 진실보다 더 진실되다.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믿는다.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누구도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할 것이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서도. 전단지 돌리는 것을 도우면서도. 자신의 죄를 알고 찾아온 태공실(공효진 분)만 어떻게 한다면 지금까지처럼 자기에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위해서는 항상 큰 용기가 필요하다. 굳은 의지와 결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름다워서 진실이 아니다. 보기 좋아서 진실이 아닌 것이다. 때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고 끔찍하도록 잔인하다. 차라리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라면 아예 모른 척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믿음만을 부여안은 채 그것이 진실이라고 자신과 주위를 속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이의 생사라도 알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과 자식의 불행을 전해듣고 싶지 않은 간절한 바람이 서로 충돌한다. 자식이 모르는 곳에서 죽어 시신조차 남아있지 않다면 부모가 되어 자신이라도 자식을 기억하고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배웅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조차 자식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자식이 어딘가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부모를 살아있게 한다. 자식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거리로 나설 힘도 낼 수 있다. 언젠가는 자식을 반드시 찾을 것이다. 과연 부모에게 자식의 죽음을 전한다는 것은 죄일까? 아니면 구원일까?

애써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왔다. 차희주에 대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에 대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믿으며 그렇게 위로받고 있었다. 차희주를 사랑했다. 차희주에게 그 사랑을 배신당했다. 차희주가 자신을 납치했다. 자신을 인질로 삼고 어머니의 목걸이를 요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다. 그녀를 미워한다. 그녀를 원망한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상처입고 괴로워하는 자신을 비웃고 조롱한다. 환멸하고 혐오한다. 연민하며 동정한다. 가엾은 자신에 도취된다. 상처를 헤집으며 그런 자신을 위로한다. 딱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공소시효가 지나고 모두 잊을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 다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비로소 용기가 생겼다. 혼자인 줄만 알았다. 세상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귀신을 볼 수 있다. 죽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차희주에 대해 저주가 아닌 상처라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막대해대도, 아무리 모욕주고 거칠게 밀어내려 해도 그녀는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 주었다.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오기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심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위로해 줄 것이다. 따뜻하게 감싸줄 것이다. 이제는 어떤 진실도 두렵지 않다.

귀신의 에피소드는 주중원(소지섭 분)과 태공실을 위한 단서였을 것이다. 이것을 한여름밤의 꿈이라 가르쳐주었던 호텔 수영장에서의 에피소드처럼. 바로 전회에서는 상대를 위해서라도 감추어야 할 진실과 그 진실을 지켜주고자 하는 진심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다. 사랑하는 자신을 위해 감당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버거운 진실에까지 손을 내밀려 한다. 그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 동화는 복선으로 쓰인다. 더 사랑하는 쪽이 결국에는 희생한다. 주중원이 태공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태공실은 항상 도망치려 한다. 숨으려 한다. 태공실의 세계에는 태공실 혼자 뿐이다. 주중원도 강우도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가장 고마운 사람이지만 어차피 태공실 이외에는 누구도 들어오려 하지 않던 외로운 결계였다. 반갑고 소중하지만 그러나 익숙하지 않다. 언젠가 다시 혼자가 되어여 한다. 주중원 역시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주중원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가지고자 한 것은 모두 가질 수 있었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왔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태공실과는 다르다. 주중원은 자신의 세계에 단 한 사람 태공실을 가지려 하고, 태공실은 언젠가 다시 혼자가 될 자신의 세계를 대비한다. 비로소 깨닫는다. 그것이 주는 고통과 공포를.

주중원은 죽은 것일까? 죽어서 영혼이 빠져나와 태공실을 만난 것일까? 아니면 호텔 수영장의 에피소드에서처럼 산 사람의 영혼이 잠시 몸에서 벗어나 태공실을 만나고 돌아간 것일까? 태공실은 이기적이다. 주중원의 마음보다 자신이 받게 될 상처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주중원은 태공실보다 더 이기적이다. 자기를 대신해 상처입은 자신을 보게 될 태공실의 마음보다, 그런 자신으로 인해 안전해진 태공실을 보는 자신의 진심을 더 우선한다. 영혼이 되어 나타난 자신을 보고 눈물짓는 태공실을 보면서도 그는 자기가 하고픈 말만을 하려 한다.

더 사랑하는 쪽이 자기를 희생한다. 남겨진 이의 마음보다는 그를 보는 자신의 만족을 선택한다. 더 이기적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태공실을 깨닫게 되었을까? 비극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은 울어도 내일은 웃는다. 그것이 코미디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낙천과 긍정의 결말을 위한 과정일 것이다. 덧난 상처를 째고 고름을 짜내면 하얀 새살이 돋아난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끝인 것 같지?"

사람이 사후세계에 대해 고민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 죽고 고통받았건만 설사 사형에 처해도 결국 자기 목숨 하나 내놓을 뿐이다. 그나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댓가로 오히려 더 큰 부와 권력을 누리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은 어쩔 것이가. 그래서 살았을 적의 업을 죽어서까지 짊어지도록 만들었다. 선하고 억울한 이들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이, 악을 저지른 이들에게는 그에 대한 댓가가. 죽은 이의 마음이 살아서 다 풀지 못한 것들을 대신해 풀도록 하기도 한다.

어쩌면 죽은 사람을 보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태공실의 능력만 아니었다면 카센터 사장의 죄는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아이가 그곳에서 사고를 당한 것도,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외로운 죽음을 당한 것도, 아이의 시신도, 그리고 아이를 찾아 헤매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 역시 많은 경우에 그러하듯 그렇게 없었던 것처럼 흘러가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귀신을 두려워하면서도 귀신을 만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억울함을 귀신을 통해 죽어서나마 풀 수 있기를 바란다.

태공실이 주중원의 주위를 맴도는 차희주를 본다면 주중원의 주위를 맴도는 차희주 역시 태공실을 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깊은 상처를 남겨주고 싶었다. 항상 떠올릴 수 있도록 고통스러운 상처를 남겨주고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이 떠난 빈자리를 어느새 태공실이 채우고 있다. 주중원의 상처를 태공실이 치유해주고 있다. 그녀는 분명 차희주일 것이다. 귀신이 산 사람을 질투한다. 살았어도 죽었다면 그는 귀신이 된다.

태이령의 진심이 조금씩 강우에게로 전해진다. 허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자존심덩어리이던 그녀가 강우 앞에서만큼은 자존심따위 내던진 채 솔직한 자신을 드러낸다. 자존심을 내던지고서도 초라해 보이기 싫어 애써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순된 행동들이 귀엽기까지 하다. 강우에게 거절당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고 섰다가 이내 혼자가 되어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는 다시 선글라스로 눈물을 가린 채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쇼핑몰을 나선다. 흰수염고래가 되고 싶지만 강우를 위해서라면 돌고래도 괜찮다. 멸치는 되고 싶지 않다. 당연히 멸치는 강우의 마음에 담을 가치가 없다.

적절한 비유였을 것이다. 태공실의 냉장고에 강우의 맥주가 들어가 있다. 주중원은 바로 맥주를 사들고 강우의 맥주를 꺼내고는 그 자리에 대신해 채워넣는다. 주중원의 냉장고에는 맥주를 넣을 자리가 없다. 앞으로 태공실의 냉장고에는 자기이 맥주만 채워져 있어야 한다. 태공실의 마음에 담기는 것도 강우가 아닌 자신이어야 한다. 강우와 함께가 아닌 오로지 자신 뿐이어야 한다. 태공실에게 주중원의 냉장고는 크기만 하다. 뭐든 다 들어갈 것 같다.

주중원의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필사적으로 태공실이 보낸 문자를 읽어낸다. 글자들이 정렬해 질서를 이룬다. 질서는 기호가 된다. 차희주와 관련한 진실들이 조금씩 실체를 갖추어간다. 죽을 때가 안되었다. 다음주 수요일까지 6일 남았다. 시청자를 안달나게 하는 것은 작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일 것이다. 뻔히 해피엔드일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졸인다. 지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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