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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3.09.08 08:09

[TV줌인] 불후의 명곡2 "90년대를 떠올리며, 현진영&MC팀 우승하다"

나이를 잊은 현진영과 선배를 위해 최선을 다한 2MC, 시간을 함께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솔직히 90년대에 대해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좋았던 시절이었다. 꿈이 있었다. 열정이 있었다. 무엇보다 젊음이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자신의 길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낙관어린 기대와 희망들은 1997년 IMF와 함께 그야말로 먼지처럼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것은 바로 절망과 좌절이라는 이름이었다.

90년대가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시대가 단절된다. 기억이 단절된다. 감정이 단절된다. 1997년 이전과 1997년 이후로 나뉜다. 90년대 전반의 낙관과 기대가 90년대 후반의 절망으로 이어진다. 90년대 전반의 희망이 90년대 후반의 나락과 좌절로 이어진다. 가장 좋았었던 기억과 가장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극적으로 나뉜다. 각인된다. 90년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그런 시간의 기억들을 쉽게 흘려보낼 수 없는 것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70년대를 거쳐 80년대 3저호황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고도성장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80년대 말에는 마침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어느새 세계속에 우뚝선 대한민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넘쳤다. 경제적인 성장은 여러 세대들에게 더 많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벌써 어린 나이에도 음악적인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생산한 음악을 소비해 줄 수 있는 대중의 성장이 큰 역할을 했다. 어떤 음악을 만들어도 음악만 좋으면 최소한은 팔린다.

인디씬이 가장 활성화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입소문만으로도 좋은 음반은 몇 만 장씩 팔려나갔고 그것으로 굳이 방송출연을 하지 않고도 많은 인디음악인들이 음악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특정한 몇몇 스타음악인의 팬들에 의해 유지되는 시장이 아니라 다양한 많은 음악인의 음악을 동시에 소비하던 보편적인 대중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아직은 아날로그적인 야성과 순수가 남아있었다. 그러면서도 첨단의 음악에 대한 수용이 탐욕스럽게 이루어지던 시절이기도 했다.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 그 시절의 '오빠'란 특정한 팬층에 의해 떠받들려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 대중들에게 폭넓게 사랑받았던 누군가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다른 전설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서 신철(DJ처리)과 황규영이 '오빠'라는 타이틀로 '불후의 명곡2'에 전설로 출연했던 것일까? 신철의 존재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신철이 참여했던 나미와 붐붐의 '인디언 인형처럼'은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랩을 삽입한 음악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 0세대 랩퍼로써 철이와 미애의 '너는 왜'는 샘플링기법을 사용한 선구적인 음악으로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신철에 의해 DJ DOC가 만들어지고 데뷔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팬들로부터 오빠라 불릴 정도는 아니었지 않을까.

황규영도 아마 노래는 기억하지만 황규영이라는 가수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할 것이다. 노래는 크게 히트했는데 정작 가수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노래가 좋아서만이 아닌 가수가 좋아서 그들의 노래를 소비해주는 적극적인 팬층인 '오빠부대'를 거느렸다기에는 무리가 있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오빠 특집'이었는가. 그보다는 9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보여줄 수 있는 가수들을 위주로 선발한 것이 아닐까. 따로 혼자서 전설로 출연할 수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 한 번 쯤 '불후의 무대2'의 무대에 섰어야 할 이들을 한꺼번에 불러 무대에 세우는 것이다. 전설의 자리에서가 아닌 현역가수들과 함께 오르는 무대를 통해서.

▲ 출처:'불후의 명곡2' 방송캡처

사실 감동적이기는 황규영과 노라조가 함께 부른 '나는 문제없어'였을 것이다. 가수에 대한 기억은 어느새 잊혀져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노래만큼은 마치 본능과도 같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다. 힘든 일이 있거나 하면 자연스럽게 입이 알아서 흥얼거린다. 노래를 부른다는 의식조차도 없이 흥얼거리며 없던 힘마저 쥐어짜낸다. 그래 문제없을 거야. 아무 문제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 불안하고 두렵지만, 초조하고 겁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한 걸음을 버티고 물러서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은 반칙이었다. 아이들이란 미래이며 과거다. 미래의 희망이며 과거의 꿈이다. 울컥 눈물이 나려 한다. 스크린을 지나치는 평범한 사진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문제없어'를 부르는 필자도 그 가운데 있었다. 진지해졌을 때 노라조는 누구보다 무겁고 단단하다.

가장 호흡이 좋았기는 이현우와 긱스였을 것이다. 이현우가 중심에 선다. 이현우의 노래가 무대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이현우 자신이 긱스에 맞춰가고 있었다. 보다 빠르고 신나게. 한껏 들떠서는. 있는힘껏 소리도 질러본다. 원래 장엄할 정도로 아름다운 노래였는데 그저 신나고 즐거운 음악이 되어 있었다. 이래서야 마치 이현우가 긱스를 위해 피처링한 모양새가 되었다. 아니 하나였다. 원래 하나의 노래였던 것처럼 그들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신났다. 즐거웠다.

현진영과 MC들은 그 존재 자체가 반칙이었다. 노라조의 조빈의 말처럼 현진영만이 아닌 MC들 문희준과 은지원 둘 모두 전설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다. 나이도 서른을 넘긴 데뷔 20년차가 다 되어가는 중견들이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연기도 했다. 선배에 대한 경의로 원곡을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 현진영이 등장했다. 노래 자체가 또한 명곡이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춤추고 정신없이 노래부르다가 어느새 신명나게 함께 몸을 흔든다.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을 따라추는 관객들이야 말로 가장 솔직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본능이다.

바다의 키가 164센티미터였다. 새삼 찾아보았다. 180센티미터는 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보다 더 큰지도 모른다 생각했었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크다. 어떤 무대도 자기 무대로 만들며 자기 스타일대로 소화한다. 더욱 세련되어진 클럽스타일의 편곡에 바다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너는 왜'는 새롭게 탄생한다. 바다는 어떻게 해도 바다다. 바다는 장르다. 믿음을 배신하는 적이 없다. DJ처리의 랩은 오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랩은 원래 DJ들의 놀이였을 것이다.

제국의 아이들과 성대현의 무대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남자다운 호쾌함을 느끼게 하던 Ref의 '상심'에 비해 제국의 아이들의 '상심'은 보다 더 섬세한 감정을 들려준다. 이를테면 소년만화와 소녀만화의 이별장면의 차이라고나 할까? Ref는 남자였고 제국의 아이들은 소년들이다. 그러나 '이별공식'에 이르면 제국의 아이들도 남자를 보여준다. 철저히 성대현에 맞춘다. 원곡에 자신을 맞춘다. Ref는 혼자서 전설로 출연해도 좋을 정도로 히트곡이 많다. 많은 점에서 지금의 남자아이돌에 영향을 준 것이 바로 Ref일 것이다.

윤종신의 '텅빈 거리에서'는 햇빛이 쨍한 한낮의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지나칠 정도로 분명한 가사전달력은 다른 여지 없이 선명한 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비하면 김용준의 '텅빈 거리에서'는 인적도 드문 안개까지 자욱한 어느 외진 거리가 아니었을까. 마음껏 울어도 좋다. 마음껏 통곡하며 원망을 토해내도 좋다. 감정이 넘쳤다. 경연이라지만 후반부에서 코러스에게 멜로디를 맡기고 가수는 소리지르는 패턴은 이제 식상하다. 조금은 더 간결하게 절제하는 편이 좋았을지 모르겠다. 장호일의 기타도 오랜만에 들으니 새롭다. 편곡이 아쉽다. 제국의 아이들도 잘했다.

그러고 보면 그 무렵 음악을 많이 들었다. 뮤직비디오도 많이 보았다. 케이블TV의 음악채널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뮤직비디오도 자주 보여주고는 했었다. 어떤 노래들은 가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먼저 따라부르기부터 했다. 음악이란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따라부르는 것이었다. 특정한 팬덤만이 아닌 대중 일반에 보편적으로 인기를 누렸었다. 벌써 나이를 먹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베이시스도 전설로 출연할 때가 되었다. Ref와 동시대에 클래식을 전공한 학생들이 아주 고급스러운 독특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가늘고 신경질적인 정재형의 목소리는 허스키한 여성멤버의 보컬과 어우러지며 큰 인기를 모았었다. 예능에 출연하면서 우습게 보이지만 음악인으로서 정재형의 윗항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들어보고 싶다. 베이시스의 노래를. MC들은 무대에 섰다.

음악에 기억을 담는다. 음악이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음악을 듣던 시간들이 음악을 타고 잠시 지금을 채우게 된다. 어떻게 음악을 듣고 있었더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타임머신과도 같다. 감정과 기억의 블랙박스다. 중견을 넘어선 가수들의 서로에 대한 반가움이 느껴진다. 현진영이 무엇보다 반갑다. 항상 기다린다.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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