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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20 06:37

남자의 자격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하늘 아래 음악이..."

인간은 어째서 아름다운가...

 

"조금 유치할 수도 있지만, 경규형님 팀이 우리와 같은 별을 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괜히..."

같은 하늘 아래라는 말. 아마 일상에서 흔히들 쓰고 있을 것이다. 이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비록 몸은 떨어져서 보이지 않아도 보고 있는 하늘은 같으리라. 저 아득하도록 넓은 하늘이 그와 나의 시간을, 그와 나의 공간을 이어주고 있으리라. 예로부터 하늘을 신성시여긴 것은 저 하늘이야 말로 모든 것을 보듬고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사진일 뿐이었는데 문득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TV를 좀 더 큰 것으로 장만할 것을. 한쪽 벽을 가득 프로젝터로 채워서 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났다. 내가 군대 간 것을 유일하게 감사하게 생각하던 순간이. 고지였다. 민가로부터도 한참 떨어진 오지의 한 진지였다. 빛이란 조금 떨어진 막사의 창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등화관제한다고 겨우 실만큼이나 새어나올 뿐이었다. 그 막막한 하늘 아래 펼쳐진 아득한 밤하늘이라니. 별빛에도 그림자가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늘에 이리도 별이 많구나. 달마저 지고 점점이 흩뿌려진 별들이 길게 줄지어 늘어선 것이 은하수라는 것도 그때 처음 보았다. 은하수라는 말은 들었지만 저만하면 신들이 배를 타고 노닐만 하지 않은가.

하지만 말했듯 고지였던 터라. 진지 주위에도 그리 산들이 많았다. 아득한 평야 위로 펼쳐진 밤하늘은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남반구의 밤하늘이라는 것은. 더구나 도시로부터도 한참 떨어진 그곳의 하늘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공포로 짓눌려 있던 그곳의 하늘과는 달랐을 터였다. 청춘을 담보잡힌 하늘보다도 더 맑고 깊었으리라.

왈칵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 너무 아름다워서 북받치게 서러운 느낌. 그래서 신은 저 하늘 위에 머물게 된 것이리라. 죽은 이는 하늘로 올라가고, 하늘에 머무는 이들은 하늘과 닮아서 하늘 아래를 굽어보리라. 어디선가도 함께 하는 저 하늘이 어디선가에도 함께 비추듯. 그래서 단지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진이고 영상일 뿐인데도. 다른 아무것도 없이 단지 밤하늘과 오가는 한가한 이야기로도.

공교롭다. 의도한 것일까? 토요일의 <무한도전>과 일요일의 <남자의 자격>. 같은 시간에 <무한도전>과 같은 채널에서는 <나는 가수다>에서 최고의 가수들이 모여 경연을 펼친다. 요즘은 제대로 음악을 들으려면 예능을 봐야 한다. 정재형, 이적, 10cm, 바다, 싸이, 스윗소로우, G드래곤, 최고의 아티스트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의 김태원.

하지만 그래도 <남자의 자격>과 김태원이 좋은 이유는 아무래도 최첨단 컴퓨터보다는 구겨진 종이에 직접 적어 넣는 코드 쪽이 원초의 감성에 와 닿기 때문이다. 건반을 누르고,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하지만 기타를 치면서 한 순간에 코드를 적어 넣고 그것을 구식 녹음기로 녹음한다. 어느 한적한 들녘, 외로운 텐트에서,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 기타를 치며 가사를 붙이고 어느새 노래가 완성된다. 그것은 어떤 최고의 시스템과 프로그램으로도 할 수 없는 원초의 그 권원에 존재하는 것일 터다. 음악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그 컴퓨터를 조작해서 음악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사람일 테지만.

제대로 아날로그일 수밖에 없는 그 근원을 건드리고 말았다. 서럽도록 아름다운 하늘과 좁고 외로운 천막, 그리고 형제들. 기타 하나. 코드와 가사를 적을 구겨진 종이와 볼펜. 곡을 쓰고 그것을 녹음할 구식 녹음기. 가끔은 기껏 멜로디를 만들고도 녹음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는 바람에 다시 불러야 하기도 한다. 흥겨우면서도 짓궂은 가사가 그렇게 눈물나게 밤하늘 만큼이나 아름답다.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사람이 아름다운 때문이 아닐까.

적절한 대비였다고 생각한다. 이경규를 필두로 김국진, 전현무, 윤형빈의 벙글벙글팀은 오프로드의 거친 야성을. 김국진을 필두로 양준혁과 이윤석의 팔바라팀은 온로드의 낭만과 여유를. 단 하루도 끊이지 않는 사건과 사고 속에 어느새 단련되어 가는 벙글벙글팀에 비해 아예 베거브라더스라 불리게 된 팔바라팀은 하나의 음악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거친 오스트레일리아의 황야에 어울리는 거친 남자의 모습이 되어 있는 벙글벙글팀과 세상 시름 다 잊고 거지가 되어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는 팔바라팀. 여행이란 그렇게 야성이면서 여유다. 이경규와 김국진의 갈등구도에 비해 새로운 동생을 얻었다며 살가운 팔바라팀에서처럼.

밤길을 가다가 또다시 마주친 진흙탕. 그리고 검게 고여 있는 물들. 물살을 헤치고 달려가니 소떼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성가신가. 단지 모기가 들끓는다는 이유로 강가의 갈대밭이며 늪지를 메우고 했었다던가.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다. 모기가 들끓는 그 물가는 아마도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이었을 터다. 단지 차가 가는데 몇 십 분을 더 멈춰서서 초조하게 기다려야 한다면. 그 불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야생의 여행이란 불가능할 것이다. 카리지니의 협곡에서도 편하게 가자면 계곡을 깎아 길을 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리가 떨리고 힘이 빠져 주저앉으면서도 원시적인 밧줄 하나면 충분하다. 가로등보다는 빛 한 점 없이 아득한 밤하늘의 별빛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카리지니는 아름다웠고, 그러나 문득 차를 세우고 모든 문명의 빛을 지운 채 바라본 하늘은 더 아름다웠다. 그 하늘 아래 나누는 대화들은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멀리 있는 형제들까지 떠올리며 만들어지는 멜로디와 가사들과. 눈물이 핑 돌 만큼 아름다웠을까.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번 <남자의 자격> 배낭여행편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다. 너무 아름답다. 너무 멋지다. 너무 낭만적이다. 그 위험과 어려움마저 두근거리며 설렌다. 진짜 한 번 여행을 떠나야 하려는가. 어쩌면 마치 물처럼 담담하게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전하려 했던 연기자와 제작진의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예능이라는 위화감이 없다. 여행정보프로그램과도 같은 그 생생함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준다. 부럽고 약오르게도.

여행은 인연이 이어지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두근거리도록 설레는 여행은 사람에게도 두근거리게 만든다. 가슴 조이도록 위험한 모험은 사람에게도 가슴조이도록 만든다. 역시 인연은 만들기 나름이고, 놀리는 것은 인연을 만드는 맛이다. 양신도 좋은 사람 만나야 할 터인데. 그렇게 놀리며 얼굴 붉힐 수 있는 것도 한 즐거움일 터다. 행복하기를.

일요일 저녁 너무 큰 선물이었다. 심야라면 더 좋았을 것을. 프로젝터로 천정 가득 쏘아 올리며. 하늘을 대신해서. 서울의 하늘은 너무 밝다. 어둠이 있어야 밤은 아름답다. 어둠이 깊어 밤은 아름다운 것이다. 너무나 반가운. 그리고 그리운. 눈물이 그 증거일 터다. 근래 최고의 예능이었다. 멋진 여행 보고서였다. 샘나도록 아름다운.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였다.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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