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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9.06.16 21:30

[권상집 칼럼] 열정과 의욕으로 빚어낸 U-20 월드컵의 기적

무관심을 폭발적 관심으로 되돌린 U-20 월드컵 대표팀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정정용 감독이 U-20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폴란드로 출국했을 때 관심을 가진 언론이나 축구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U-20 월드컵의 절대강자 아르헨티나와 U-20 유럽선수권 우승팀 포르투갈과 한 조가 되었다는 소식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이미 기대를 접었다. 특히 지난해 아시아 지역 예선 최종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1-2로 패배, 준우승에 그쳤기에 “아시아 2위 팀이 U-20 월드컵에 나가 16강이라도 달성하면 다행이다”라는 비관 섞인 전망도 적지 않았다. 지옥의 조에 속한 U-20 월드컵 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도 출국 전에는 16강 진출이었다.

그러나 대표팀의 이강인 선수는 대외 인터뷰 때마다 ‘목표는 우승’이라는 얘기를 당당하게 공언해서 언론을 놀라게 했다. 출국 전, 4월 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강인은 “우리도 우승할 수 있다.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한다. 최대한 폴란드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고 언론은 18세 선수의 당찬 표현이라며 인터뷰 내용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 인터뷰에서도 한 기자는 이강인에게 “2년 전에도 이승우와 백승호가 있었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을 정도로 쉽지 않은 대회이다. 각오는 하고 있느냐”는 점을 강조할 정도였다.

국내 언론만이 아니다. 축구 경기에서 도박사들은 가장 승리할 확률이 높은 팀에게 베팅을 건다. 도박사는 경기 결과에 따라 자신의 수익과 손실이 결정되기에 다양한 빅데이터를 통해 승패를 예측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각 팀의 우승 및 탈락 가능성을 심사 숙고해서 결정한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유럽의 베팅업체는 우승후보 1~3순위로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을 선정했다.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은 우리와 같은 조에 속했기에 도박사들은 대한민국을 이번 대회 약체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기술적, 체력적 우위도 전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 SBS 제공

축구 전문가들 그리고 축구 선수들은 축구를 한편의 드라마라고 한다. 수많은 컴퓨터 예측이 빗나가고 도박사들의 예측이 엇갈리며 당일 경기 휘슬이 완전히 불릴 때까지 어떤 팀이 승리할지 완벽히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2-0으로 누를 것이라고 생각한 도박사와 AI가 없었듯이 이번 대회에서도 대한민국이 결승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한 베팅업체, AI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박사와 AI가 계량화할 수 없고 측정하기 힘든 인간의 의욕과 투지, 열정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과학의 알고리즘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정정용 감독의 카멜레온 같은 다각도의 전술 수립 및 이강인 선수의 우승 목표 발언 이후 대표팀의 목표는 모두 한결 같이 ‘16강’에서 ‘우승’으로 바뀌었고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자신들의 담대한 도전을 키워나갔다. 기술 및 개인기는 남미와 아프리카에 뒤지고 체격과 체력에서는 유럽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건 축구 비전문가인 팬들도 모두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거의 매 경기 대한민국 대표팀은 열정과 의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초기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던 언론과 팬들도 점점 이들의 헌신과 의욕에 찬사와 열광을 보내기 시작했다.

조직이론의 저명한 학자 버나드(Barnard)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헌할 의욕을 가진 사람이 상호 협력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수업 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의욕’ 또는 ‘열정’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수 차례 얘기해도 우리는 실제 사례로 이를 접하지 못하기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 체감하지 못한다.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 시종일관 열세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추격, 투혼을 발휘한 대표팀의 모습에서 의욕적인 사람이 모이면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학습할 수 있었다.

정정용 감독은 매 경기마다 상대의 예상을 완전히 넘나드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펼쳤고 대한민국 U-20세 대표팀은 그라운드에서 상대의 기술과 체력적 우위를 인정하는 대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의욕과 열정을 쏟아냈다. 아르헨티나, 세네갈, 에콰도르 등 세계적 강호를 누르고 대한민국이 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정 감독의 탁월한 지도와 이강인이라는 천재 선수의 존재감 자체에도 있었지만 대표팀 모두가 하나의 팀(One Team)이 되기 위해 선수와 코칭 스태프 각자가 갖고 있는 모든 의욕과 열정, 투지를 축구장에서 토해냈기에 가능했다.

아쉽게도 모두가 열망한 사상 첫 우승이라는 기적의 마침표를 찍지는 못했다. 일부 팬들은 결승전에서 평소와 달리 다소 답답한 모습을 보였던 대한민국 대표팀에 쓴 소리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응원한 팬들 못지 않게 기적의 스토리를 완결하지 못한 감독 및 스태프와 선수들의 속은 더욱 타 들어갔을 것이다. 일부 선수가 결승전에서 의욕을 보이지 않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논란의 중심에 섰듯이 우리는 여전히 우승 또는 결승을 떠나 의욕과 열정으로 뭉친 뜨거운 선수들의 에너지를 경험하고 또 목도(目睹)하고 싶어한다.

1981년 아시아 최초로 카타르가 결승에 올라갔고 1999년 일본이 또 다시 아시아를 대표해서 U-20 월드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모두 우승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은 1981년 카타르 대표팀과 1999년 일본 대표팀은 황금세대로 불리며 향후 10년 간 아시아를 제패하고 성인 월드컵을 노릴 수 있는 드림팀으로 불렸으나 그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2019년 대한민국 U-20 대표팀 역시 황금세대로 불릴 것이다. 황금세대의 의욕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의욕이 지속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투자와 지원, 열정적인 격려와 지지가 이루어져야 1999년 일본 U-20 대표팀이 걸었던 내리막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 권상집 동국대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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