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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9.03 09:16

[TV줌인] 굿닥터, "그들이 의사인 이유, 김도한 박시온을 보기 시작하다"

신파와 설교, 보편적인 이야기가 대중을 잡아끌다

▲ 굿닥터 (제공: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그래도 그들은 의사였다. 마지막 순간 소아외과장 고충만(조희봉 분)은 매형인 전무의 지시를 거부한다. 고작 의사면허증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가 가진 전부였다. 의사가 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과 의사가 되고 나서 의사로서 지나쳐온 시간들이 있었다. 그것은 박시온(주원 분)이 본 것처럼 그의 손에 굳은 살과 상처로 선명히 남아 있었다.

박시온을 이용하려 한다. 자폐를 딛고 마침내 정상인의 세계에 발을 딛었다. 그것도 가장 고도로 전문화된 의사라는 직업에 도전하려 하고 있다. 자폐에 동반되는 서번트 신드롬이 오히려 어떤 천재성처럼 발현되며 의사로서 필요한 방대한 기억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충분히 사람들의 흥미를 잡아끌만 하다. 장애를 딛고 비장애인도 힘든 의사가 된데다 오히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것은 김도한(주상욱 분)의 신념에 반하는 것이다.

김도한이 차윤서(문채원 분)의 첫수술에 조수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박시온의 요구에 의외로 순순히 응하게 된 이유였을 것이다. 김도한이 박시온을 진단의학과로 보내려 한 것은 의사로서의 그의 재능을 최대한 살려보려는 의도였었다. 소아외과의로서는 무리다. 그러나 그가 가진 방대하면서도 정확한 지식들은 진단의학과에서는 아주 요긴할 수 있다.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박시온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하는 것이다.

마치 성악소년 규현(정윤석 분)과 그의 어머니의 관계와 같을 것이다. 어머니니까 당연히 자식인 규현을 사랑한다. 규현을 위해주고 싶어한다. 규현에게 성악의 재능이 있다. 그것을 꽃피워주고 싶다. 모두의 인정을 받는 훌륭한 성악가로 키워주고 싶다. 규현만 인내하는 것이 아니다. 규현 혼자서만 희생하고 양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사랑하고 싶은 것까지 규현의 미래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한다. 하지만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만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규현 자신의 존재마저 양보하고 희생한 때문이다. 아들을 사랑하는데 정작 아들은 그곳에 없다. 김도한 역시 동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라도 누구보다 박시온을 걱정하지만 그곳에는 어쩌면 박시온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강현태(곽도원 분)가 자극한다. 의사가 아니다. 의사로서가 아니다. 그것은 의사로서의 자부심인 동시에 박시온의 보호자로서 당연한 반발이었을 것이다. 비로소 박시온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그가 의사라는 것도. 의사가 되고자 하는 것도. 기회를 주고 싶다. 그토록 의사가 되고자 한다면 한 번 쯤 기회를 주어 보는 것도 좋다. 항상 주눅들어 있던 박시온이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와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자기가 자신을 미워한다며 반발하던 모습이 인상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닌 척 해도 김도한은 박시온의 형이다.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은 사람에게 많은 것들을 가능케 해주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사랑하기 위해 살아간다. 사랑받기 위해 살아간다. 박시온이 어린 시절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곳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죽은 형과 죽은 토끼와 그리고 지금의 병원장과.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웠다.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고 밀어낼 뿐인 세상사람드도 지웠다. 그렇게 자기 안에 갇힌 채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만 소통하며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런데 달라졌다.

알면서도 외면해왔었다. 굳이 신경쓰지 않으려 했었다. 괜한 상처만 될 테니까. 그런데 예민하게 느낀다.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한다. 자신을 싫어한다. 욕망이 생겼다.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아해 주었으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세상에서 단 두 사람 자기를 미워하지 않고 믿어주는 사람이다. 동물이 사람을 따르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차윤서가 박시온을 보는 감정도 동생이거나 혹은 낳아 본 적 없는 자식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갖게 하고 그 기대를 만족시켜주고 싶은 것은 본능일 것이다. 비로소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존엄에 대해 고민을 갖는다.

드라마 자체는 신파다.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신파로 흐르고 있었다. 의학적 치열함보다는 설교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의사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첨예하게 자신을 갈고 닦기 보다는 인간적인 감동과 배려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진정한 의사는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다. 하지만 굳이 의사여야 할 필요가 없다는 데 함정이 있을 것이다. 굳이 의사가 아니어도 되는 보편의 이야기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대중을 설득시키는 힘을 갖는다. 한 마디로 재미있다.

드라마 초반 아무것도 없는 역사에서 간단한 도구들을 사용해 응급처치를 하던 순간의 긴박감을 떠올리게 된다. 다급하게 실려온 환자를 결국 살리지 못하고 수술대 위에서 죽도록 만들었다. 수술대 위에서 죽은 환자를 떠올리면서도 차윤서는 마지막까지 수술실에서 최선을 다한다. 미니시리즈다. 주말드라마와는 다르다. 아쉬워지는 까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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