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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8.28 08:03

[TV줌인] 굿닥터, "의학보다는 음모와 사랑, 드라마의 이유"

소아외과라고 하는 가능성과 한계, 통속으로 돌아가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드라마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화해하며 부대끼며 어우러진다. 배경만 바뀔 뿐이다. 학교가 되었다가, 회사가 되기도 하고, 먼 우주로 날아갔다가, 먼 과거로 돌아가기도 한다. 의학드라마란 단지 그 배경이 주로 병원이고 등장인물 상당수가 병원과 관계된 이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도 그같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의학용어가 난무하는 의학적 배경따위 사실 잘 와 닿지 않는다.

소아외과다. 무대는 당연히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현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기는 소아외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른이라고 죽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 많은 의학드라마에서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 기적들이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수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인공과 같은 의사들만 있다면 세상에 죽을 사람이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현실은 현실이기에 죽는 사람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대상이 아직 어린 아이라면 시청자가 받아들이는 느낌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제공:KBS
물론 이미 환아 한 명이 수술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말하거나 웃는 모습이 보여지지 않은 그야말로 객체로서의 환아일 것이다. 숨쉬고, 말하고, 웃고, 장난치는, 더구나 환아이기에 고통을 호소하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더 이상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처음부터 그런 것을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결국 시청자와 드라마 모두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술도중 죽었음에도 죽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충분히 치료가능한, 지나치게 비관에 빠지지 않아도 되는 정도가 적당하다.

긴장감이 없다. 사느냐 죽느냐, 혹은 수술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사는 것은 정해져 있다. 수술의 성공 역시 예정되어 있다. 칼날위에 선 듯한 절박함이 없다. 바늘끝만한 가능성을 찾아 발버둥치는 치열함 또한 없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듯한 방대한 기억력을 자랑하는 박시온(주원 분)이다. 그런 박시온마저 아래로 볼 수 있는 최고의 소아외과 전문의가 바로 김도한(주상욱 분)이다. 환아들 또한 어렵지만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경우들이다. 어쩌면 김재준(정만식 분) 간담췌외과 과장은 꽤나 억울한 경우인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에도 소아외과를 대신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그들이었을 것이다.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의학드라마로서 의료현장의 모습만으로 긴장을 줄 수 없으니 다른 긴장요소가 필요하다. 긴장하고 이완한다. 조이고 풀어준다. 성원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부원장인 강현태(곽도원 분)와 그의 배후가 의도하고 있는 음모가 그 한 부분을 담당한다. 과연 강현태의 숨은 의도란 무엇인가? 강형태가 의도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병원장 최우석(천호진 분)은 그리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 재단이사장인 이여원(나영희 분)와 대립하며 강현태의 배후가 꾸미는 계획에 한 손 거들고 있는 유채경(김민서 분)과 김도한의 관계 또한 긴장의 연속이다. 김도한이 강현태를 만났다. 어떤 결심을 하게 되었다. 차윤서(문채원 분)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달라 부탁하고 있었다. 김도한 역시 강현태가 계획하고 있는 큰 그림 가운데 한 부분일 것이다.

한 편으로 주인공인 박시온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도 필요하다. 가장 쉬운 것이 사랑이다. 젊은 남녀가 만난다. 누가 보아도 매력적인 두 남녀가 서로 얽히고 부딪힌다. 박시온에게는 모성이 필요하다. 차윤서에게도 모성을 발휘할 대상이 필요하다. 차윤서는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여성이 아닌 모성이다. 짐짓 남성과도 같은 거친 말투와 김도한마저 그녀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그것이 바로 차윤서의 본질이다. 그런 차윤서와 박시온의 생모가 만난다. 박시온이 사랑을 알아간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자신을 깨닫는다.

환아와의 사이에서도 어떻게 환아의 병을 구할 것인가보다는 환아와의 인간적인 유대나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하기는 박시온에게 벌써 수술을 맡길 수는 없다. 환아의 치료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박시온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인간적인 케어가 고작일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단지 어른의 관심과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다. 절박함보다는 인간의 온기가, 치열함보다는 다정한 말과 행동들이, 안도의 한숨보다 느긋한 교훈과 감동을 바란다. 드라마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가장 쉽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정제해서 채워넣는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박시온도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런 자신을 깨닫게 된다. 차윤서는 아직 느리다.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김도한이 결심을 한다. 강현태와 최우석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혁필(이기열 분) 전무의 의도에 의한 고충만(조희봉 분)의 마지막 계획은 최우석을 다시 궁지로 내몬다. 부모의 이기와 충돌한다. 자신을 학대하고 끝내 버리고 떠났던 부모의 자식을 향한 마음이 박시온의 눈앞에서 펼쳐진다. 박시온은 그로부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전하게 될까. 부모가 되어 당연히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통속드라마일 것이다. 배경은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소재는 무엇이라도 전혀 상관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의학드라마이기에 필요한 장면들은 충분히 보여준다. 의학드라마이기에 보여져야 할 내용들은 역시 충실하게 보여준다. 단지 핵심이 그것이 아닐 뿐이다. 사랑을 한다. 남자와 여자가, 인간과 인간이, 어른과 아이들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했고,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이성의 사랑이고 인간의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이며 아이의 마음이기도 하다. 시청률에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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