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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8.23 07:48

[TV줌인] 주군의 태양, "운명보다 강한 필연, 그들이 함께하는 이유"

운명보다는 인연, 강우와 태이령의 인연이 쌓여가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로고스란 질서다. 본질이며 법칙이다. 그것을 분별하는 이성이기도 하다. 주중원(소지섭 분)은 글을 읽지 못한다. 글은 언어를 다시 정의한다. 로고스가 언어라면 그 언어를 보다 정제하여 명징한 질서로서 정의한다. 과거 유괴범들에게 납치되었을 때 그는 그곳에서 절대 만나서는 안되는 사람을 만나 절대 들어서는 안되는 말을 듣고 만다.

"중원아, 미안하게 됐어!"

그 순간 그를 지탱하고 있던 하나의 세계가 무너졌다. 자신은 차희주를 사랑한다. 차희주도 그것을 알고 있다. 설사 그것이 자기의 일방적인 짝사랑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아니 단지 자신이 가진 배경을 사랑하여 자기의 곁에 머물고 있을 뿐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녀는 절대 자기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을 것이다. 그녀를 향한 그동안의 자신의 모든 진심들을 그런 식으로 돌려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조차 주중원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짓밟히고 더럽혀졌다. 진실과 진심으로부터 배반당했다.

물론 납치되어 있는 동안 유괴범들에 의해 강제로 책을 읽어야 했던 기억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람이 죽는 내용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괴범들에게 납치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신을 구속당한 채 유괴범들의 감시와 억압 아래 놓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괴범들의 위협에 굴복하여 책을 읽고 있는데 그 내용이 하필 사람이 죽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처지의 자신이 당시 느꼈을 공포란 과연 어떠했겠는가. 문자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공교롭다. 작가가 의도한 바인가는 모르겠다. 아마 문자로 대표되는 기존의 로고스를 잃어버린데 따른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비이성적이고 비능율적인 감정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만져지지 않는 형체도 없는 모호한 것이 자신을 이처럼 혼란스럽고 비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이성적일 수 있다. 비이성적인 모든 것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한다. 비이성적일 정도로 이성에 집착하며, 냉정을 잃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부정한다. 그렇게 믿고 연기해낸다. 자신은 누구보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현실적인 합리적인 인간이다. 그것은 믿고 싶지 않은 과거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장 안전한 갑옷일 것이다.

과연 주중원이 태공실(공효진 분)을 곁에 두고 있는 이유가 자신의 말처럼 과거 유괴되었을 당시 유괴범들이 가지고 도주한 몸값 100억 때문이었는가? 그 100억의 행방을 알자고 굳이 태공실을 자신의 곁에 두고 차희주와 소통하려 하는 것인가? 그러나 그렇게밖에는 말할 수 없다. 진심을 털어놓는 순간 그는 다시 한 번 혼돈 속으로 허물어질 뿐이다. 기둥이 썩어 사라진 벽을 시멘트로 억지로 단단히 여며 버티도록 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너진 자신을 지켜낸다. 그런 건 상관없다. 그런 것 따위 자기에게도 아무 의미도 없다.

주중원의 주위로만 가면 귀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귀신이란 본디 카오스의 존재이며 파토스의 존재다. 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구조나 법칙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합리로써 계량하지도 논리로써 판단하지도 못하는 존재 아닌 존재인 것이다. 이미 죽어 사라진 존재가 나타나 산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미 죽어 세상에 없는 존재인데 마치 산 사람처럼 사람을 만나고 함께 어울린다. 그 자체가 불합리이고 부조리인 것이다. 주중원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다.

주중원과는 반대로 태공실의 경우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고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 사이 삶과 죽음 모두에 한 발 씩 걸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삶에 속했으면서 죽음을 보고, 현실에 머물면서 비현실과 어울린다. 모순이고 역설이다. 비논리이고 혼란이다. 논리적인 현실의 구조 속에서 그 모순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미친다는 것이다. 과연 태공실과 같은 처지가 되었을 때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자신을 다잡기 위해서는 더욱 엄격한 기준과 원칙이 필요했을 것이다.

▲ 제공:SBS

드라마의 시작에서 태공실은 자신이 총무로 있는 고시원에 입실해 있던 어느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차조차 잘 다니지 않는 외딴 곳까지 한밤중에 바로 달려가고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어느 여자의 말을 대신해서 전해주기 위해 전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명스타의 결혼식에 끼어들 결심을 하고 있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주중원이 말리는데도 고작 죽은 개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몸을 돌리고 있었다. 의지가 굳다. 모순 속에서도, 그리고 혼란 속에서도 그녀를 지탱해주는 비결이다. 절대 외면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주중원이 잃어버린 현실에 대한 믿음은 태공실의 믿고 싶어하는 의지가 대신하게 된다. 태공실의 모순과 혼란은 주중원의 이성적이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 의해 정돈되고 정리된다. 주중웡과 함께 할 때 태공실은 귀신을 보지 않을 수 있다. 태공실과 함께 할 때 주중원 역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다. 필요란 이익이지만 상실에 대한 절실함이 간절함으로 다가가도록 만든다. 진실보다도 진심보다도 더 간절하고 절실하다. 필연이다.

과연 낙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믿는다. 귀신을 진심으로 대하려 한다. 비관적이다. 그래서 더욱 자신을 다잡는다.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그것을 채찍질하는 계기로 삼는다. 주중원과 함께 있으며 쫓기는 듯 불안하던 태공실의 모습이 단호한 자신감으로 바뀌게 된다. 태공실과 함께 있으며 움츠리고만 있던 주중원의 눈과 귀가 다른 세상을 향해 열린다. 질서와 혼돈이 만난다. 이성과 격정이 만난다. 낙천과 비관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하나가 된다. 둘이 모여 하나가 된다. 예정된 필연이다. 운명보다도 강한 필연일 것이다. 그들은 그래서 하나다.

아마 운명보다 필연이라면, 운명이 아닌 인연일 것이다. 한 순간의 운명보다는 중첩되는 인연이다. 원래 강우(서인국 분)는 태공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부딪히고 엮이는 것은 항상 태이령이었다. 태공실에게도 주중원은 운명이 아니었다. 인연이 서로 만나게 하고, 어울리게 하고, 서로를 알아가게 한다. 운명보다도 진한 의지일 것이다. 지금은 그 과정이다. 조금은 지루하게 진행되는 모든 것들이 그 과정에 있다. 너무 신중하다.

아무튼 아쉬웠다. 군견병의 탈영이란 매우 흥미로운 소재다. 하지만 진부한 신파조의 감동코드는 중간도 지나기 전에 이미 읽혀 버렸다. 아무리 고참이라지만 병이 같은 병에게 징계를 준다? 지휘체계라는 것이 있다. 병사에게 징계를 줄 수 있는 것은 대개는 장교인 지휘자 이상이다. 그런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단지 개가 안락사당한 것 때문에 자살까지 하려는 탈영병의 모습이 어색했다. 그보다는 탈영하고 싶은데 군견 '필승'의 일이 있어 그 핑계를 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은 개는 가만히 있을 뿐 사람이 단지 그에 이유를 부여한다.

개에게도 영혼은 있는가.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도 영혼은 존재하는가. 오랜 물음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보다는 아이돌이 함께한다. 꽤 아니 아주 오래된 노래다. 개와 인간의 유대와 개의 충성심, 호러는 이번에는 조금 약했다. 무섭지 않다. 그보다는 사랑스럽다. 태공실도 사랑스럽다. 주중원도 갈수록 귀여워진다.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진 듯 보인다. 솔직해지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강우의 비밀을 태이령이 우연히 듣는다. 태이령은 태공실을 싫어한다. 강우는 태공실을 좋아한다. 그래서 주중원을 질투한다. 태이령은 아직까지 주중원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강우에 대해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다. 자신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서로 얽혀든다. 시작도 하지 않았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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