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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8.22 08:45

[TV줌인] 주군의 태양,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은 삶을 탐하다"

데자뷰, 작가의 스타일을 읽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은 삶을 탐욕하며 질투한다. 의식이란 존재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데 대상으로부터 그것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귀신들은 태공실(공효진 분)에게 이끌릴 수밖에 없다. 태공실과 있으면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전부인가 하는 것이다.

복선이라기에는 너무 노골적이다. 어째서 하필 죽은 이를 중매하는 고여사가 태공실에게 죽은 이를 경계하라 경고하고 있을 때 차희주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을까? 처음부터 그런 의도였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주중원(소지섭 분)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지켜보고 있음에도 주중원은 그런 그녀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전하고자 하는 진심이 있는데 그것을 전할 방법조차 없다. 그런데 태공실이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녀의 몸을 빌리면 주중원과 만날수도, 대화를 나눌수도, 심지어 서로를 만지고 느낄 수도 있다.

▲ 제공:SBS
차희주의 비밀과는 별개로 차희주가 여전히 주중원에게 집착하는 이상 더구나 주중원이 차희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한은 태공실은 그녀와 주중원을 사이에 두고 경쟁해야 하는 이른바 삼각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라고 하는 극단의 경계는 현실에서 두 사람 사이의 경계를 사라지게 만든다. 차희주의 혼이 태공실의 몸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태공실이 아닌 차희주가 되어 있었다. 태공실의 몸만 차지할 수 있다면 세상에는 오로지 차희주 한 사람만이 남는다. 태공실이 되어 주중원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도 이룰 수 있다.

차희주가 간직한 비밀과 차희주에 대한 주중원의 마음과 주중원을 사이에 둔 차희주와의 갈등,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고 하는 극단의 경계로 인한 첨예한 갈등과 부딪힘이 예고된다. 차희주가 태공실이 되고 태공실이 차희주가 된다. 태공실의 몸을 통해 삶과 죽음으로 나뉜 두 사람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된다. 아직 태공실은 차희주와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고 있다. 태공실이 주중원을 향한 자신의 진심을 깨닫는 순간 차희주는 배려해주어야 할 귀신이 아닌 적이자 경쟁자로서 인식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의 긴장이 가장 첨예하게 불거지게 될 장면일 것이다. 태공실과 차희주 두 사람을 연기해야 하는 공효진의 분발을 기대한다.

아무튼 역시나 같은 작가의 드라마였을 것이다. 주중원을 연기하는 소지섭의 강박적인 손동작들이 얼핏 작가들의 전작인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과장되게 자기를 드러내는 자의식이나 이면에 가리워진 그늘 등이 딱 독고진이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전작에서는 최고의 한류스타였고, 이번 드라마에서는 국내 굴지의 쇼핑몰의 젊은 사장이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정점에 선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허술하게도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여자와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그것을 남자는 처음 인정하려 않는다. 소지섭이 아닌 차승원을 그 자리에 세웠어도 너무나 잘 어울리고 있었을 것이다.

밉지 않은 라이벌 태이령(김유리 분)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 하필이면 태공실만을 올곧게 바라보는 강우(서인국 분)와 반복해서 부딪히고 있다. 화려한 외모나 톱스타라고 하는 자신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쉽게 무너지고 망가지는 허술함 또한 사랑 앞에 진지한 착하고 멋진 남자 강우와 함께 반복되고 있었다. 과거의 인연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와 현재 역전된 관계라는 것 또한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태공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역 태공리(박희본 분)도 있었다. 가장 성공한 구성일 것이다. 다만 세부적인 내용은 달리한다. 죽은 사람이지만 사랑의 라이벌도 생겨나고, 아직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 멜로보다는 귀신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있다.

조금은 진부했을 것이다. 재벌가 도련님의 첫사랑이라. 어려서부터 병을 달고 살았고 병원과 집만을 오가느라 사람과의 관계라 단절었다. 그런 도련님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 소녀가 있었다. 뜻밖에 저택에 우유를 배달하던 배달원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저택의 규모도 상당한데 배달하는 우유의 양이 적다. 지나치게 안이했다. 저택의 규모에 비례해 고용인도 많을 것이고 그로 인해 우유의 소비량도 일반 가정집과는 다를 것이다. 자전거로 우유를 배달하는 자체가 도련님과의 인연을 위해 작위적으로 만든 설정이라 할 것이다. 사소한 오해가 있었고 그것이 죽은 뒤에도 미련으로 남았다가 마침내 풀어진다. 하지만 평범한 만큼 익숙하다.

귀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주중원의 말처럼 사업이 안풀리는 것이야 다른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집안에 아프거나 다친 사람이 있는 것이나 어느 집에나 늘 있는 일이다. 이유가 필요하기에 엄한 귀신을 끌어들여 책임을 지운다. 이유를 해결해 보겠다고 가만히 있는 귀신을 달달 볶는다. 귀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산 사람의 의도와 의지다.

주중원을 지켜보는 것은 차주희의 의지겠지만 태공실을 곁에 두고 차주희를 떠내보내지 않는 것은 주중원 자신의 의지다.  귀신은 그저 존재할 뿐. 자기만의 이유와 논리로 존재하려 할 뿐이다. 사람에게 닿지 않는다. 귀신을 알아 귀신의 바람을 풀어주려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자신이 바람일 뿐인가? 태공실은 의도를 가지고 귀신을 대하지 않는다. 의도를 가지기 전에 먼저 보이고 들린다.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평범하지만 그림이 예쁘다.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보편적인 매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로맨스의 전형이다. 완벽할 정도로 잘난 남자와 그런 남자가 허점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평범한 여자. 혹은 평범 이하의 여자다. 호러는 작가의 전문분야가 아닌 듯하다. 귀신이 나오는데 여전히 멜로이거나 코미디다. 아쉬운 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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