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칼럼
  • 입력 2013.08.13 22:47

[권상집 칼럼] 힐링을 지나치게 강조, 요구하는 킬링 사회

힐링이 킬링되는 사회 풍토, 그 이면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2011년부터 ‘힐링’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사회의 부조리, 고단한 일상, 어려운 일자리 창출과 취업 등으로 고민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사회의 선배들이 주었던 위로의 메시지가 ‘힐링’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되면서 이제는 ‘힐링’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어 마치 힐링 메시지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변질되어가고 있다.

사실, 돌이켜보면 ‘힐링’을 하나의 열풍으로 만든 건, 2년 전 안철수 당시 KAIST 교수와 박경철 시골의사의 청춘콘서트가 그 시초일 것이다. 청춘콘서트에서 그들이 준 메시지는 젊은 세대, 특히 대학생을 중심으로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안철수 교수와 박경철 시골의사가 소위 ‘20대의 멘토’가 되면서 그들의 메시지 하나 하나가 젊은이들의 인생 길잡이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던 점은 높이 평가할만한 부분이다. (안철수 당시 교수가 지난해 대선 후보로 거듭날 수 있었던 요인 역시 힐링의 사회적 트렌드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150만부가 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힐링 메시지의 파급력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었고, 신문과 방송에선 ‘대학생과 기성세대의 대화’, ‘힐링에 대한 진지한 토론’등이 펼쳐지기도 했다. SBS 방송의 ‘힐링캠프’ 역시 힐링이라는 키워드를 방송의 테마로 선정하여 방송 토크쇼에 일대 전환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을 보면 힐링을 너무 권하고, 때로는 심지어 강요하기까지 한다. 청춘콘서트 이후, 여러 대기업에서 진행된 유사한 토크 콘서트의 메시지는 청춘콘서트가 젊은이들에게 준 조언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또한, 방송이나 신문 지상에서 오르내리는 힐링은 초반에 강조되었던 ‘치유’, ‘위로’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힐링 여행’, ‘힐링 이벤트’ 등으로 이윤 추구에 사용되며 때로는 ‘힐링’의 대상이 정확히 누구인지, 왜 해야 하는지 목적까지 혼동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최근 힐링에 대한 비판은 거세기만 하다. 힐링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강요하여 대학생들의 목적의식과 인생 좌표를 더욱 흐리게 한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다 젊을 때 그런 거야’ 라는 맹목적인 위로만 주입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또한, 경제 양극화, 조기 퇴직, 비정규직 문제, 중산층 붕괴 등으로 인해 힐링의 대상이 대학생 등 젊은 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데 굳이 사회적 트렌드는 젊은 대학생을 대상으로만 힐링이 강조되어 일부분의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비판 역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힐링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자들 역시 대안 제시에는 미흡한 편이다. 모 경제지에서는 힐링을 비판하며 최근 종영된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 시사점을 발견했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즉, 드라마에서는 냉정한 사회와 부조리한 현실을 인식하게 하고 그 상황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마 선생(고현정 분)의 역할이 오히려 사회에 필요하다는 식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로 인해 피곤한 경쟁 풍토를 거둬내고 인간 중심의 자본주의, 따뜻한 자본주의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혹자는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 역시 한 마디로 힐링에 대해 깊은 인식이 결여된 대안들일 뿐이다.

따뜻한 자본주의 전환이라는 말은 지금 힘들고 고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에 전혀 와 닿지 않는 추상적인 해법에 불과하며, ‘여왕의 교실’에서 강조된 마 선생의 교육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오히려 이겨내야 한다는 차디찬 현실주의적 결론일 뿐이다. 따뜻한 자본주의 전환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가 아니라, 과연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게 필자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몫일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인식하기 전에, 사회의 부조리를 걷어내도록 노력하겠다는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위로’ 가 아닌 ‘격려’를 할 수 있는 사회 문화를 조성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간혹 필자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후 고민을 털어놓으며 ‘과거엔 어떻게 하셨나요?”, “고민이 있는데 들어주세요” 라며 상담과 조언을 많이 구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조언을 해주기가 사실 요즘 겁이 난다. 또 하나의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로 그치는 ‘힐링’ 메시지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힐링 효과가 킬링 효과가 되지 않으려면 단순한 ‘위로’가 아닌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 물론, 그 ‘격려’라는 화두 이전에 기성세대는 ‘우리가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개선하겠다’는 냉철한 자기 반성과 개선 의지가 담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우리 때는 더 힘들었어. 요즘 세상 참 편하니 젊은이들 불만이 많다’ 라는 말이라고 한다. 맹목적인 ‘힐링’은 이제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이제 ‘힐링’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던져 버리고 새로운 메시지와 화두를 찾아야 할 때이다.

- 권상집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미래 한국 아이디어 공모전' 논문 대상자)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