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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8.09 07:49

[TV줌인] 주군의 태양 "충격의 반전, 주군이 어긋나 있는 이유"

주중원에게 귀신이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와 태공실의 운명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반전이다. 설마 15년 전 납치사건 당시 주중원(소지섭 분)과 함께 납치되었다가 사고로 죽은 옛연인 차희주가 사실은 납치의 공범이었을 줄이야. 주중원의 상처를 조금은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째서 그가 그토록 돈만을 밝히는 속물적인 인간이 되었는지. 어째서 그의 주위에서만 귀신이 머물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도. 주중원이 어딘가 어긋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은 돈이었다. 돈 때문에 납치까지 당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여겼던 연인이 납치범과 공범이 되어 자신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차라리 잃은 것이 돈 뿐이기만을 바랐다. 아니 처음부터 돈이 전부였다. 사랑도, 사랑하는 사이라 여겼던 믿음도, 그동안의 모든 달콤했던 기억들까지. 미련마저도 거부한다. 미움마저도 부정하고 만다. 아예 없었던 사람이다. 그렇게 믿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굳이 그런 말따위 하지 않아도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살아가게 된다. 상처를 끌어안고, 상처가 덧나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죄책감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스스로를 학대하면서도, 그럼에도 살아있기에 어떻게든 살아지게 된다. 언젠가 상처는 아물고 죄책감은 희석되며 아픔마저도 희미해지고 마는 것이다.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 줄 것이고 삶이 그렇게 이끌 것이다.

그런데도 애써 잊으라 말하고 없었던 일로 여기라 강조한다. 상처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책감을 갖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을 잊고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는 모습에 상처받고 불쾌해한다. 뒤늦게 책임을 묻게 된다. 그것이 다시 주중원에게 상처로 돌아온다. 미워할 수도 없고 그리워할 수도 없다. 차라리 없었던 일로 여긴다.

주중원의 주위에 귀신이 머물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귀신은 미련에 깃든다. 집착으로 실체를 얻는다. 그러나 주중원에게는 미련을 두거나 집착을 가질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과거가 없다. 기억도 없다. 오로지 현재 뿐이다. 현실의 물질만이 그에게 존재한다는 실감을 가지게 한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현실의 물질만이 그를 살아있게 한다.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랑이니 추억이니 하는 것들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다.

결국은 껍질을 깨야 한다. 지금의 자신을 부숴야 한다. 태공실(공효진 분)을 만난 이유다. 태공실은 주중원과는 전혀 반대의 타입이다. 그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밤에는 다른 세상의 존재들과 함께 하고, 낮에는 잃어버린 밤을 벌충하느라 잠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현실은 그녀를 부정하고 무시하고 배척한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따라서 무엇보다 강한 현실에 대한 증거일 것이다. 주중원이 껍질을 깨야 한다면 그녀에게는 경계가 필요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더욱 뚜렷한 경계를 그린다.

오해가 있었을까? 아니면 어떤 감춰진 다른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읽는다. 나쁜 귀신은 없다. 당연히 나쁜 사람도 없다. 원망이 아니다. 미움이 아니다. 앙갚음하고자 주위를 떠도는 것이 아니다. 못다한 사랑이다.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다.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사랑에 배신당한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딛고 넘어서야 한다. 태공실이 그 열쇠가 되어준다.

여전히 그는 거부하려 한다. 애써 부정하려고만 한다. 한 편으로 인정한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스스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다가오려는 태공실이 불편하고 그러면서도 태공실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인연이다. 태공실에게 주중원이 필요하듯 주중원에게도 태공실이 필요하다. 로맨스라기보다는 운명이다. 하필 귀신이 그들을 인연지워줬다. 그것은 복수였을까? 상처투성이의 젊은 남자를 위한 온정이었을까?

▲ 제공:SBS
차라리 태공실은 귀신을 닮았다. 드라마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무섭다. 꺼려진다. 스토커다. 싫다는데도 계속 따라붙는다. 조금의 빈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일상에 간섭하려 한다. 그런데 밉지 않다. 절박함이 있다. 오해받기 쉬운 애처로움이 있다. 공블리는 이번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어쩌면 서로에게 상처로, 그리고 악의로 기억되었을 사연들이 사랑으로 화해로 이해로 용서로 풀어지게 된다.

귀신의 분장 역시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할 것이다. 도저히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원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괴상하고 흉측하다. 섬뜩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할 정도다. 그러나 점차 귀신을 이해하고 다가가면서 귀신은 원래의 살아있었을 적의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아니 그것이 귀신의 원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단지 사람의 오해와 편견이 귀신을 무섭고 혐오스런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을 뿐이다.

귀신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죽은 사람이기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어차피 죽은 사람이다. 죽음의 경계를 넘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사람이다.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단지 자신과의 기억 밖에는 없다.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 아니 굳이 안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관대해진다. 죽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코지가 아니라 이해를, 용서를, 화해를, 그리고 사랑을. 귀신은 무섭고 흉측한 무엇이 아니다. 죽은 사람이 남긴 기억이며 산 사람이 간직한 의미인 것이다. 산 사람은 서로를 원망하고 다투지만 갈 곳을 잃은 서로에 대한 미움과 원망은 이내 유령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다. 죽음은 영원한 끝이다.

괴물에서 사람으로 바뀐다. 태공실 역시 지금 단계에서 아직가지는 주중원에게 거추장스럽고 성가신 괴물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태공실이 주중원에게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언젠가는 한 사람의 여자로 보이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화해하게 되는 순간. 이해와 용서로써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전에 딛고 넘어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태공실이 그를 위해 그의 곁에 머물고 있다. 우연은 필연이 되고 인연이 된다.

공포다. 귀신이 나오는데 당연히 무섭다. 분장 역시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끔찍하고 으스스하다. 그런데 우습다. 여유가 있다. 세상에 귀신따위는 없다. 아니다. 단지 귀신은 그렇게 무섭지도 혐오스럽지도 않다. 귀신 또한 원래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태공실의 비일상과 귀신들의 일상이 그렇게 교차한다. 주중원과의 로맨스에 대한 기대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마치 혀가 아릴 정도로 매운 음식을 먹으며 곁들이는 달고 찬 요쿠르트와도 같을 것이다. 하물며 한국고추다. 맵지만 달다. 맵지만 시원하다. 무섭지만 재미있다. 짙은 아이라인에 매니큐어까지 하고 있는 한 여고생의 모습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워낙 자유로운 교풍이라 그런 것으로 납득하고 만다. 딱 한 여학생만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누구나 사연이 있다. 아픔이 있다. 괴물이 되어간다. 굳이 귀신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차희주의 귀신이 주중원의 주위에 머무는가. 주중원이 차희주의 귀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가. 또 하나의 미련이 용서와 화해로서 풀어진다. 아직은 태공실에게는 어려운 시간들이다. 그러나 어차피 더 나빠질 것도 없다. 대책없는 낙천이 그녀를 지탱해준다. 그녀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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