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8.08 07:25

[TV줌인] 주군의 태양 "호러와 로맨스, 여름을 위한 드라마가 시작되다"

공블리의 재림, 서늘하고 우습고 사랑스럽고 달콤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죽은 이의 미련일까? 산 사람의 집착일까? 죽은 이가 귀신이 되어 산 사람의 주위를 떠돈다. 산 사람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죽은 이가 귀신이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조차 초월한 인연이 귀신을 만들어낸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상 거의 없다. 아니 전혀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무언가를 해주려 해도, 혹은 어떤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려 해도, 그러나 그들이 속한 곳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세상일 것이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만지지도 못한다. 죽은 사람이 무엇을 하든 산 사람은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차라리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산 사람이 붙잡고 놓지 못하는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아무리 돌아간 어머니가 자식걱정에 애써 모은 적지 않은 돈을 남기며 야단을 쳐 보아도 어머니의 진정을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돈욕심에 눈이 어두워지고, 도박에 빠져 판단마저 흐려진다면 어머니가 남긴 한 마디 걱정은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만일 유혜성(진이한 분)에게 죽은 김미경(송민정 분)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태공실(공효진 분)이 전한 김미경의 진심 역시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은 죽은 이의 간절함조차 아직 살아있었을 때의 기억이며 미련이라 할 것이다. 아들이 걱정되어 돈과 함께 꾸짖음을 남겼다. 하지만 자신이 남긴 돈 앞에서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자식들을 앞에 두고서도 어머니는 담담한 얼굴로 모든 미련을 벗어던진 채 자신이 원래 가야했던 그 길로 말 그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유혜성을 보고 싶다는 소원이 이뤄졌을 때도 김미경은 원래 자신이 가야 했던 그 길로 빛과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살아있는 유혜성 또한 그 간절함이 닿았을 때 죽은 김미경의 혼령과 다시 만나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산 사람을 위해서다. 죽은 이를 만나는 것도. 죽은 이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려는 것도. 태공실 자신도 산 사람의 세계에 속한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엄연한 살아있는 사람일 것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것이 귀신이다. 죽은 이들의 살아있던 시절의 흔적이며, 살아있는 이들의 죽음을 향한 갈망이다. 죽은 이들의 미련이고 살아있는 이들의 집착이다. 간절함으로 서로 만난다. 살아있는 자신들을 위해서. 한때 자신들과 같이 살아 있던 이들을 위한 마음으로. 죽은 이는 죽은 이를 위한 곳으로, 살아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는 그곳에서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간다. 태공실은 그 매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쳐간다. 느끼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사람은 그저 모른 채 무시하고 지나친다. 주중원(소지섭 분)의 말이 맞다. 죽은 사람은 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태공실이 주중원의 가까이에만 가면 귀신들은 모습을 감추고 마는 것일까? 산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 귀신들이 주중원의 근처에만 가면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리고 만다. 분명 사람과 귀신이 서로 작용하고 있다. 모순이다.

주중원이 죽은 사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인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게 속물적이다. 의도적으로 돈을 밝히고 의식적으로 보이는 이외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고 거부한다. 죽었으면 끝이다. 산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 그것은 단지 태공실이나 태공실을 통해 유혜성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려 하는 김미경을 향해서만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혜성이 전한 태공실의 한 마디에 그는 지체없이 태공실의 고시텔로 찾아오고 만다. 그리고 묻는다. 자신의 옆에 무엇이 보이는가 하고, 그의 무의식이었을까?

▲ 제공:SBS
복선이었을 것이다. 주중원 소유의 종합쇼핑몰 '킹덤'에서 죽은 김미경의 부탁으로 유혜성을 만나려다 주중원에게 붙잡힌 뒤 힘없이 돌아서는 태공실의 주위로 유독 그곳에서만 작게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실내에 바람이 분다. 그것도 태공실의 주위에만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을 주중원은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태공실을 찾아가서도 빨래를 담궈놓은 통에서 비누거품이 일어나는 모습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누구보다 어쩌면 태공실보다도 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주중원 자신이 아니었을까.

믿고 싶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하고 있기에 애써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상처가 크다. 아픔이 깊다. 잊고 싶어한다. 이제는 그만 놓아버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더 큰 집착이었을 것이다. 놓아 버릴 수 없기에 놓으려 하고, 잊을 수 없기에 잊으려 한다. 하필 주중원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죽은 아내에 대한 기억을 떨치지 못해 킹덤과의 계약을 거부하려 하는 집주인과의 협상장면이었을 것이다. 단정한 모습과는 달리 주중원은 아내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는 화분의 꽃을 전혀 주저없이 가위로 잘라내고 있었다. 잔인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냉혹한 것에는 그만큼 아픈 이유가 있다.

시작은 호러일 것이다. 분장이며 특수효과가 이제까지의 한국드라마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보는 순간 놀라 흠칫하고 있었다. 하필 혼자서 보고 있었다. 혼자 쓰는 방에서 어둑한 창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특수효과 또한 화려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곳에 적절히 쓰임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공블리 공효진을 만나는 순간 드라마는 코미디가 되어 버린다. 귀신이라는 호러와 주중원이 보이는 잔혹할 정도의 냉정함이 공효진의 허술한 코미디와 부조화의 조화를 이룬다. 공포를 희석시키고 어떤 행복한 기대를 가지게 한다. 주중원의 곁에서만 태공실은 귀신을 보지 않을 수 있다.

졸려 쓰러지려 한다. 밤이면 귀신을 만나니 어쩔 수 없다. 매번 본다고 익숙해지는 귀신이 아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매번 볼 때마다 그녀는 놀라고 허둥댄다. 낮이면 고양이처럼 잠이 든다. 정작 주중원이 자신을 찾아온 그 순간 수면부족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우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이 인연이 된다. 우연처럼 필연처럼 태공실은 주중원에 기대 잠들고 주중원은 그런 그녀를 그대로 보고만 있는다. 그 뒤로 배경처럼 비누거품이 흩날리고 있다. 인연이 시작되려 한다. 아니 인연은 주중원이 집주인의 아내가 기르던 꽃을 자르던 그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인연이란 주중원에게 재앙이었을까?

태공실이 총무로 있는 고시텔에 의문의 입실자가 나타난다. 태공실과 마주친 첫인상이 무척 좋다. 삼각관계로 발전하게 될까? 의도적으로 주중원의 회사에 입사해 접근하려 하는 것으로 보아 이후 커다란 반전의 계기가 되어 줄 지도 모르겠다. 하나하나가 노골적일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되어 배치된다. 고시텔에서의 허름한 일상과 주중원의 화려함이 대비를 이루게 될 것이다. 정교하다. 작가 홍자매가 그렇게 예고했고 예정했다.

기대가 크다. 역시 공효진이다. 역시 소지섭이다. 요즘 서인국이 물을 만난 듯하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어울린다. 지루하거나 끈적거리지 않는다. 디테일하면서도 심플하다. 충격적이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성공적인 첫회였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다. 기대를 키우게 된다. 사람과 사람, 귀신과 귀신, 무엇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로 의식할 수밖에 없는 아련한 슬픔이 유쾌한 사랑이야기와 어우러진다. 배우의 짐이 무겁지만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크다. 지나칠 정도로 아직까지는 허술함이 없다.

여름에 귀신이야기는 흔하다. 달달한 사랑이야기도 흔하다. 깜짝 놀라게 만든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차라리 슬프고 아팠지 무섭지는 않다. 일상이 갖는 여상함에 죽음의 무게를 덜어 놓는다. 무더운 여름이다. 가을을 거치고 지나간다. 평범하지만 특별하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