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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8.04 10:33

이정 '슬퍼지려하기전에' 불후의 명곡2, "완벽한 군무, 이정 우승하다!"

여름이면 쿨, 전설이 되어 만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다른 것 없다. 그냥 신났다. 필자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 고운 채로 받혀도 하나도 남는 것이 없다. 그만큼 순수하다. 그만큼 깨끗하다. 말 그대로 여름의 바다처럼 오롯한 시원함으로 스치고 지나간다. 진지하지도 무겁지도 심각하지도 않은 유쾌함과 청명함이다.

풍요의 시대였다. 자유의 시대였다. 확실히 제국의 아이들과 걸스데이라고 하는 요즘의 아이돌과 비교해 보니 더욱 확연히 그런 점들이 드러난다. 엄격할 정도로 꽉 짜여진 군무와 잘 훈련된 노래실력, 프로페셔널로서의 완벽함이 요즘 아이돌의 특징이라면 당시의 댄스그룹들은 그보다는 더 자유로웠다. 성겼고 분방했다. 그런 만큼 무대에서 더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음악적인 평가보다는 당시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던 대중의 요구와 취향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가수가 대중 같고 대중이 가중 같았던 친근함, 그리고 여름의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후련함, 무엇보다도 신났다. 그들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흥이 났다. 대중음악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지점일 것이다. 대중을 웃게 만든다. 대중을 즐겁게 만든다. 음악적인 완성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그들의 음악이 바로 대중이 바라는 그 지점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항상 들려왔다. 누구의 노래인지도 모르고 저도 모르게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쿨의 노래였다. 노래가 입에 완전히 익을 무렵이면 그들이 쿨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분주하던 시절, 무척이나 힘겹고 고단하던 시간들을 위로해주던 노래들이었다.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을 때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어느새 힘이 나고는 했다. 뒤늦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어쩌면 연예인이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이들이 아닐까.

정준영의 '해석남녀'의 무대는 조금은 단조로웠다. 정준영만의 매력을 드러낸 것도 좋고, 편곡이며 노래 또한 매우 훌륭한 편이었지만, 그러나 중간에 분위기를 바뀌보겠다고 옷을 벗은 것치고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아마 지난 무대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많은 관객들이 그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은 그만큼 정준영이라는 아티스트가 갖는 매력이 탁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잡아끄는 힘이 그에게는 있다.

문명진은 그 한계를 모르겠다. 아카펠라에서 레이브까지. 물론 알앤비란 기본적인 리듬감을 타고나지 않으면 힘든 장르다. 호소력짙은 특유의 소울이 오히려 기쁨의 환희로도 들릴 수 있음을 비로소 알았다. 쿨 특유의 투명한 신명보다는 조금은 끈적거리고 질척거리는 본능의 열락에 가까울 것이다. '해변의 여인'을 조금 더 성인스러운 느낌으로 편곡했으면 어땠을까. 목소리를 듣고 소름이 돋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 것이다. 문명진은 항상 문명진이다.

걸스데이의 'All for You'무대를 보면서는 바로 쿨을 떠올리고 있었다. 굳이 틀에 얽매지 않는다. 자연스러움이 그들만의 격식이다. 뛰어난 노래실력과 무대를 순수하게 즐길 줄 아는 해맑을 정도로 젊은 에너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마치 그들 또래의 쿨처럼 그렇게 무대가 갖는 노래와 춤이 갖는 신명을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하고 있었다. 젊고 매력적이며 재능이 넘친다. 과연 아이돌.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대세가 되었다.

▲ 불후의 명곡2 '쿨'편에서 이정이 '슬퍼지려하기전'에로 우승했다.(제공:KBS)
이정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의 무대는 말 그대로 넋놓고 보게 만드는 완벽한 무대였다. 솔로의 군무란 이런 것이다. 무대의 주인공이다. 무대의 중심이다. 모든 것은 그를 위해 존재한다. 모두는 그를 찬영하며 그를 떠받든다. 가수를 중심으로 빈틈없이 짜여진 무대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돌아간다. 복고적인 사운드와 의상이 사치스럽던 시절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끈적하면서도 명쾌하다. 이정의 목소리가 방점을 찍는다. 우승을 자신해도 좋은 철저한 준비였다. 이정의 무대였다. 결과와 상관없이 단연 최고의 완성도였을 것이다.

바다의 '애상'은 어째서 그녀가 바다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남성파트와 여성파트를 오가며 목소리의 톤을 바꾼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무대에서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비슷한 안무와 비슷한 구성 그러나 오늘의 바다는 또 새롭다. 항상 비슷한 구성으로 무대에 올라도 가수 자신이 달라지니 전혀 다른 무대가 된다. 사소한 실수는 어디서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경연이기에 아프게 다가온다. 그녀의 무대는 항상 최고다.

제국의 아이들의 '운명'은 무대를 아예 춤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댄스'음악'이 아니다. '댄스'음악이다. 춤을 위한 음악이다. 멤버들의 노래파트는 오히려 사소하게 넘어간다. 멜로디와 가사는 춤을 출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 노래 그 자체를 순수하게 즐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트랜스의 선동과 중독. 춤을 춘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어 그저 음악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 전부가 바로 제국의 아이들이 의도한 '운명'의 무대였다. 즐겁다. 함께 그들과 함께 춤을 추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춤이라고는 거의 추지 못하는 몸치임에도.

벌써 쿨도 중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살도 불었고 세월의 흔적도 느껴진다. 무대에서 숨이 가쁜 것이 그대로 들린다. 전설이라는 이름은 그같은 세월에 붙는 훈장인지도 모른다. 그들로 인해 기뻤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함께 춤을 추던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씌워진 세월들은 바로 그런 시간들이며 순간들이다.

다시 음악으로써 대중과 만나겠다 말한다. 힘겹지만 여전히 그들이기에 가능한 그들만의 신명이 깃들어 있다. 대중과의 만남을 위해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다른 전설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원래 낮은 곳에 있었다. 지금의 자신들에 어울리는 새로운 친근함과 익숙함을 기대해 본다. 신나고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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