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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3.08.03 15:47

하지원 주연 '화투', '역사의 재구성을 넘어선 재창조, 역사드라마의 본질을 우려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사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본능이고 욕망일 것이다.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보라. 그래서 옛날 초나라 사람은 굳이 뱀을 그리는 술내기를 하며 발까지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뱀의 발도 그릴 수 있다.

글이란 도구다. 수단이다. 글은 자신을 드러내는 창구이며 자신을 치장하는 장식이기도 하다. 때론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그런 욕망에 휘둘리게 된다. 자신의 작품을 보게 될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을 놀래켜주고 싶고, 그들로 하여금 감탄케 하고 싶다. 새로운 것, 더 놀라운 것, 더 색다른 것,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선을 넘게 된다. 오로지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정신적 자위에 불과한 작품 아닌 작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같다. 작가이기에 빠지게 되는 흔한 함정일 것이다.

"너희들이 어리석어서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역사드라마는 말 그대로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굳이 주제까지 역사를 관통해야 할 필요는 없다. 역사를 소재로 지금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역사를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최소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만큼은 충실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디테일하게 깊이까지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모두가 아는 상식 수준에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나머지를 채워나가는 성의는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역시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장옥정은 중인의 신분으로 왕후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가. 희빈 장옥정과 인현왕후 민씨가 몇 차례나 서로의 자리를 바꾸는 가운데 과연 그들의 주위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인가. 차라리 지금까지의 다른 '장희빈'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처럼 본처와 시앗 사이의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치정극에 집중하려 했다면 그 또한 주제에 충실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의 역사적 진실을 추구한다면서 정작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조선의 권력구도를 그리려 하면서 정작 숙종이 조선의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애써 무시한다.

▲ MBC 방영 예정인 '화투' 사극의 여주인공 하지원 (제공:MBC, 드라마 '다모')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칼과 꽃'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 연개소문이 대대로를 바꾸고자 했을 때 당시 대대로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버지 연태조의 뒤를 이어 대대로의 관직을 세습하고 있었던 연개소문 자신이었다. 더구나 연개소문이 대대로의 관직을 세습하려 하자 정작 대신들이 나서서 반대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어야 했을 정도로 연개소문의 권력은 아직까지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다. 연개소문이 쿠데타라는 무리수를 두고 영류왕을 비롯 수많은 귀족을 살해하게 된 배경이었다. 드라마를 위한 극적장치라기에는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마저 무시한 채 드라마는 시작되고 있었다. 그 위에 연개소문의 서자와 영류왕의 딸의 비극적 사랑이 그려지려 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몇 해 전 방영되었던 '공주의 남자'는 곱씹어 볼 만하다. 역사를 재해석하면서 거의 왜곡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정작 역사적 사실의 본질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작년 방영되었던 '대풍수' 역시 판타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작가의 상상에 의해 새로 쓰여지고 있었으면서도 역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에 대해서만큼은 침범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 도발적일 정도로 새롭고 발칙할 정도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고 있지만 역사라고 하는 기본에 대해서만큼은 충실했다.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히던 '뿌리깊은 나무' 또한 역사에 없는 내용을 추가하면서도 역사라고 하는 본질은 지켜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시청자의 기준이 지레 작가들을 질리게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어차피 어떤 식으로 역사드라마를 쓰든 왜곡논란을 불거져나올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아예 역사적 사실 자체를 무시해 버리자. 역사적 사실 자체를 무시해버리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거나 잘못그려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신은 자유로울 수 있을 테니까. 더불어 이런 것도 쓸 수 있다는 자기만족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그래봐야 '공주의 남자'와 '해를 품은 달'의 재해석이다. 한때 사극 하면 '용의 눈물'이 텍스트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MBC 새드라마 '화투'에 대한 대강의 정보가 들려오고 있다. 기황후는 여러가지로 재해석할만한 여지가 있는 인물일 것이다. 분명 선인은 아니다. 그러나 악인도 아니다. 시대를 이해하고, 배경을 알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해 보다 애정을 가지고 입체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충혜왕은 아니다. 역사의 악역으로서 기황후 개인에 대한 재해석이야 충분히 작가적 상상력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충혜왕의 경우는 사료가 너무 많고 구체적이다. 차라리 고려도 아니고 조선도 아닌, 역사속 어느 특정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닌 판타지였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존재하지 않은 나라를 배경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언제부터인가 역사드라마를 보는 것을 상당히 꺼려하게 되었다. 고증은 사실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외의 역사드라마를 보더라도 전혀 조금의 편집도 없는 완벽한 고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하고 재배열한다. 그것이 픽션이다. 나쁘지 않다. 드라마로서의 재미를 추구한다. 다만 그렇더라도 역사적 사실 자체, 그리고 역사의 진실 자치에 대해서만큼은 함부러 판단하거나 결론짓지 않는다. 그것을 멋대로 취사선택하지도 재창작하지도 않는다. 그것을 넘어서면 그것은 판타지가 되어 버린다.

'퓨전'이란 판타지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퓨전'이라고 쓰고 역사드라마로서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충실해야 할 작가적 의무로부터 도망쳐버리고 만다. 그러면서도 역사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붙인다. 차라리 아예 모든 것이 창작이고 허구임을 밝히고 시작한다면 좋을 것을 섣부른 역사에 대한 재해석으로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청자를 헷갈리게 만들어 버린다. 연기자 자신도 연기하기 쉬운 장르가 아닐 테지만 작가에게도 역사드라마란 쓰기에 그리 쉬운 장르가 아닐 것이다. 너무 쉽게 가려는 것은 아닌가. 그런 자신에 때로 너무 쉽게 만족해버리고 만다.

최근 MBC 사극의 성적이 좋다. 퓨전을 내세우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우회하여 피해간 때문이다. 무거운 역사적 진실보다는 현대적 감성에 맞는 드라마로서 재구성하여 철저히 시청자의 구미에 맞춘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때로 의욕이 너무 지나쳐서 역사드라마라고 하는 본질에 대한 고민을 잊은 것은 아닌가 우려하게 된다. 시청률만 좋으면 된다. 그렇다면 굳이 역사드라마여야 할 필요가 있는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드라마 '화투'에 대한 우려를 벌써부터 가지게 된다. 기대보다는 실망이 크다. 새롭지만 너무 새로웠다. 역사드라마가 아니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현대물로써 비슷한 설정을 사용했다면 어쩌면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기대되지만 많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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