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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7.31 07:36

[TV줌인] 상어, "한이수, 상어가 되어 바다로 돌아가다"

제목이 '상어'인 이유, 막을 내리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공자는 '인'에 대해 말하면서도 '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스스로 갖출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굳이 상세하게 풀어 설명하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이 한 마디만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인이란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스로 인하고자 한다면 그곳에 인이 이를 것이다.(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물고기는 강을 거슬러 헤엄친다. 강이 흐르는대로 몸을 내맡겼다가는 어느새 먼 바다에 이르게 될 것이다. 상어는 부레가 없기에 잠시라도 헤엄치는 것을 멈춘다면 그대로 바닥에 가라앉아버리고 만다. 그래서 상어는 끊임없이 헤엄을 쳐야만 한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다. 양심이 있다. 그러나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정의란, 도덕이란, 윤리란, 인간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은 오로지 인간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과 굳은 의지로서만 지켜질 수 있는 것들이다. 잠시라도 한눈을 판다면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탐욕과 나태와 교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달리 그것을 죄라 하고 악이라 부른다.

어째서 제목이 '상어'였을까? 부레가 없어 끊임없이 헤엄을 쳐야만 한다는 상어의 이야기는 과연 드라마의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문이 풀렸다.

복수란 쉽다. 그저 찾아가서 자신의 원한과 분노를 되갚아주면 된다. 한이수(김남길 분)가 그러했듯 권총을 들고 찾아가서 자신의 원수인 조상국(이정길 분)의 숨통을 끊어주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끝일 뿐이다. 무엇도 남지 않고 무엇도 생산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복수의 제물로 내놓아야 한다.

"제 몸 이제 귀해졌어요, 아껴야죠!"

어느새 한이수의 말과 행동에서 여유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복수를 위한 수단이 아닌 아버지가 남긴 숙제를 대신 풀어야 하는 무거운 짐이 그에게 지워졌다.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동생 한이현(남보라 분)을 위해서도, 아버지로 인해 희생당하고 고통받은 - 나아가 불행했던 시대의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는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 감춰진 진실을 밝히고, 어긋난 것들을 바로잡고, 상처입은 이들을 돌보지 않으면 안된다. 고작 복수따위를 위해 자신은 내던지기에는 이제 그의 몸은 너무 귀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이었다. 한이수가 끝내 조상국이 보낸 하수인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마는 것은. 그는 죄를 지었다. 복수를 위해 죄라고 하는 시궁창에 자신을 내던졌다. 정화를 위한 의식이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한이수가 조해우(손예진 분)를 만나 마지막 미련을 정리하려는 순간 운명은 아직 그에게 치르고 남은 계산이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비록 복수를 위한 것이었지만 조상국을 향해 품었던 자신의 악의가 그렇게 돌아와 그의 목숨을 앗아간다.

복수라는 이름 아래 한이수가 저지른 모든 죄와 악이 한이수를 죽인 조상국의 죄와 악으로 돌아가고 만다. 한이수가 마지막까지 목숨을 부여잡고 놓지 않은 것은 동생 한이현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모든 죄와 악을 놓아버리는 대신 하나의 생명을 세상에 남기고 떠나간다. 언제나 한이수가 먼저였는데 이번에는 조해우가 스스로 한이수에게 입맞춤을 해온다. 마지막 선물처럼 그렇게 한이수는 상어가 되어 바다로 돌아간다.

상당히 묵시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죄와 인간의 죄로 인해 죽어가는 순교자와 순교자가 남기는 하나의 구원. 여전히 조상국은 살아있지만 진실이라는 희망은 조해우와 함께 한이수를 배웅한다. 인간은 여전히 죄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진실이라는 이름의 구원이 항상 가까이에서 인간과 함께 한다. 에우리디케는 끝내 오르페우스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냈다. 죄라고 하는 죽음으로부터 죽음이라고 하는 삶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조해우가 뒤에 남는다.

▲ 제공:KBS

정의를 위해서. 진실을 위해서.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염치와 양심을 위해서. 한이수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더 이상 한이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용서를 구하고 싶다. 더 이상 부끄럽고 싶지 않다. 항상 자신과 세상에게 당당하고 싶다. 쉽지 않다. 할아버지가 걸리고 아버지가 걸린다. 그러나 조해우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자신의 양심이었다. 세상에 부끄럽고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오롯한 양심과 이성이었다. 할아버지의 죄이기에 자신이 대신해 갚는다. 하기는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그녀는 끝내 한이수를 복수라고 하는 절망으로부터 구원해낼 수 있었다. 마지막 한이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바다는 양수다. 여성은 자궁이다. 조의선(김규철 분)마저 조해우가 건낸 생모의 유품 앞에 가장 순수하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 최병기가 가지고 있던 조상국의 범죄에 대한 증거들 역시 최병기의 아내의 앙가슴에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이수는 한이현에게 자신의 생명을 전하고 바다로 돌아간다. 조상국은 마지막까지 어두운 방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이제 그는 오랜 시간을 좁은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두고 살게 될 것이다. 상어가 된다. 끊임없이 헤엄치며 가라앉지 않으려 필사적인. 조해우가 한이수를 배웅하러 바다로 떠난다.

과연 한이수가 조해우에게, 아니 조해우가 한이수에게 마지막 하려 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사랑의 고백이었을까? 조해우는 오준영(하석진 분)을 버릴 수 있었을까? 끝까지 자신과 진실과 함께하려 했던 헌신적인 남자를. 그리고 과연 한이수는 죄로 더럽혀진 자신이 조해우의 곁에 남는 것을 용납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 정도가 적당한지도 모르겠다. 무엇도 확실한 것 없이 여운을 남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서로를 운명으로써 여기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서로에게 운명인 채로가 좋다. 사랑보다 더 진한 운명이다.

아쉬움은 있었다. 복수드라마다. 사람들이 '상어'를 통해 기대한 것은 어떤 통쾌한 복수극이었을 것이다. 조상국이라고 하는 악인은 철저한 복수로써 응징하는 속이 후련해지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대중드라마란 톡속적이다. 통속이란 말초적이며 직관적인 대중의 감정과 정서에 봉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너무 멀리 왔다. 너무 돌아왔다. 너무 깊이 들어왔다.

조상국의 악행에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지금의 결말은 만족스러운 것인가. 남녀주인공인 한이수와 조해우의 관계 또한 좋게 표현했지만 상당히 뜨뜻미지근하게 애매한 상태로 끝나고 말았다. 시청률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을 때 대중드라마로서 대중과 소통하는데 실패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드라마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관객이 먼저 찾아가지만 드라마는 시청자를 먼저 찾아가야 한다.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못하다. 불만어린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의미있었다. 어떤 역사드라보다 더 역사의 진실에 진지하게 접근하려 하고 있었다. 인간의 역사였다. 역사의 인간이었다. 인간 자신이었다. 복수보다 더 가치있는 무언가를 물으려 하고 있었다. 답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복수가 아닌 구원이었다. 죽음이 아닌 삶이었다. 생명의 바다와 끊임없이 헤엄치는 상어의 역동성처럼. 어눌하고 어색한 부분은 있지만 충분히 용납해 준다. 재미있었다.

물고기는 강을 거슬러 헤엄친다. 상어는 끊임없이 가라앉지 않기 위해 헤엄친다.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 가장 존엄하다는 인간은 과연 어떤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가? 우화다. 한이수가 상어가 된다. 조해우는 바다로 향한다. 인간은 살아간다. 시간은 흐른다.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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