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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7.30 07:57

[TV줌인] 상어, "한이수의 선택, 복수 그 이상을 위하여"

부정하고 싶은 자신과 만났을 때, 한이수 긍정을 선택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독일에서 비롯된 전설 가운데 도플갱어라는 것이 있다. 한 마디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무언가일 것이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자신과 만나는 순간 그 사람은 1년 이내에 죽음을 맞게 된다. 판타지나 호러 등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 가운데 하나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 아니었을까. 차라리 다른 사람의 일이라면 감추거나 속여넘기는 일이 가능하다. 아예 보지 못했거나 보았더라도 모른 채 지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다. 망각으로도 걸러내지 못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남아 있다. 한심하고 어리석고 그리고 참을 수 없이 추하고 혐오스러운 모습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에게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을 과연 사람들은 견뎌낼 수 있을까?

그래서 애써 잊으려 하는 것이다. 아예 없었던 일로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한다. 그래도 안되면 무시한다. 무시하는 것조차 안된다면 그때는 기억을 비틀어 버린다. 전혀 다른 기억으로 바꿔 버린다. 그것이 사실이라 믿는다. 그것이야 말로 진실이라 여긴다. 자신은 단지 살아남고자 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금껏 해 온 모든 일들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우국충정의 발로였다. 거짓이 아니다. 그 순간까지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고 믿어왔을 터였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야 말로 악이다.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기억속의 자신을 지운다는 것이다. 기억을 비트는 것은 기억속의 자신을 비트는 것이다. 기억을 죽인다. 그리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자신을 죽인다. 용서할 수 없는 추악한 자신을 대신할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자신을 죽인 빈 자리를 또다른 자신을 통해 채워넣으려 한다. 누가 보더라도 감탄해마지않을 훌륭하고 아름다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죽거나, 혹은 자신을 죽이거나. 한영만(정인기 분)이 죽인 것은 과연 강희수였을까, 아니면 강희수를 통해 다시 떠오르고 만 자신의 추악한 과거였을까.

한이수(김남길 분)는 총을 들고 조상국(이정길 분)을 찾아간다. 조상국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정작 한이수 자신이 진심으로 죽이고 싶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그런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해 왔었다. 끊임없이 증오하고 원망하며 그에 대한 살의를 품어왔었다. 그것이 정의라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 아버지로 인해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겪었고, 심지어 죽은 사람마저 있었다. 한 인간이, 한 인간의 삶이, 심지어 그 가족마저 갈갈이 찢기고 산산이 부서졌다. 그런 아버지의 복수가 옳은가. 그런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지금껏 해 온 자신의 행동들이 옳은 것인가. 자신만이 정의라며 주위를 비웃고 증오해 온 시간들이 부끄럽다. 조해우(손예진 분)마저 복수를 위해 이용하려 했었다. 이제는 그런 자신이 차라리 원망스럽고 증오스럽다.

과거 조상국 역시 거쳐온 과정일 것이다. 차라리 한이수가 자신을 죽이려 했을 때 조상국은 당당할 수 있었다. 알기 때문이다. 그 순간 한이수의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자신에 대한 혐오를. 그런 식으로 조상국 역시 자신을 거스르는 이들을 수도 없이 해쳐왔었다. 자신은 옳다. 자신의 선택은 필연적인 당연한 것이었다. 한이수가 그것을 증명해 보여준다. 한이수 역시 같다. 자신과 같이 자기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타인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써 배설하려 한다. 그에 비하면 자신이 한 일은 오히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크게 도움이 되었던 가치가 있는 일들이 아니었는가. 한이수가 자신을 죽이려는 상황이야 말로 조상국에게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명이었던 셈이다.

▲ 제공:KBS
그런데 한이수가 총구를 돌렸다. 조상국을 죽이려던 의도를 포기하고 말았다. 아니 문밖에서 조해우가 한이수를 말리며 조상국을 부정하려 하고 있었다. 조상국은 틀렸다. 조상국 자신의 방식은 결코 옳지 못했다. 다른 선택이 있었다. 다른 방법이 있었다.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보다 현명한 다른 길이 있었을 것이다. 굳이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도, 천영보라고 하는 자신의 이름과 기억을 자기 손으로 묻어버리지 않고서도, 그러면서도 어쩌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다. 손녀로부터도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멋진 삶을. 그러나 이제 조상국에게 남은 선택은 한 가지밖에 없다. 자신을 죽이거나, 자신을 떠올리도록 만든 그를 죽이거나. 조상국의 표정에서 여유가 사라진다.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한이수의 선택은 달랐다. 처음에는 원망과 증오였다. 분노와 혐오였다. 누군가는 죽어야 했다. 누군가는 그의 안에서 지워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조상국을 죽이려 했던 것이었다. 조상국이야 말로 한이수 자신의 가장 추악하고 가장 혐오스러운 일부였을 것이다. 조상국을 죽임으로써 자신을 죽인다. 모든 책임을 조상국에게 떠넘긴 채 자신은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려 한다. 복수를 했을 뿐이다. 악을 응징했을 뿐이다. 모든 죄의 근원을 제거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한이수 자신은 남아 있다. 속이고 숨겨도 한이수는 여전히 남아 존재한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한다.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버지의 뒤를 쫓는다. 아버지의 진실을 쫓는다. 아버지를 용서하지는 못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를 대신하기로 한다. 김수현(이수혁 분)의 아버지의 정체를 묻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이미 김수현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수현을 만나러 나간다. 그것은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자신이 풀어야 할 숙제와 같은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버지가 자신에게 물려준 자신이 치러야 할 유산일 것이다. 그것이 한영만의 아들 한이수라고 하는 자신인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자신은 한영만이 아들이라는 것. 죽인다면 기꺼이 죽임을 당한다.

도플갱어를 만난다고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 역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를 몇 번이나 만났다고 하는데, 그러나 정작 괴테는 그것을 실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계기로 삼고 있었다. 자신과 마주쳤을 때 그런 자신을 부정하려고만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한이수가 설사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한이수 자신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 조상국이 죽는다면 그는 천영보인가, 아니면 조상국일 것인가.

이미 한이수는 한 번 죽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부활했다. 이제 다시 복수를 잊고 자신마저 고통스럽게 만드는 진실과 마주하기로 한다. 아버지를,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인 자신을 긍정하려 한다. 아버지가 다 풀지 못하고 간 숙제를 아들로써 마저 풀려 한다. 새로운 삶을 살려 한다. 또 한 번의 부활이 필요하다. 그는 죽는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죽음이었을까? 더구나 드라마다.

이제 한 회 남았다. 처음에는 흔한 복수극에 불과했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사고에 대해 철저한 복수로서 돌려준다. 그러나 배경의 서사가 커지고 깊어지면서 복수 또한 그 의미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복수가 갖는 사회적 시대적 함의를 되묻는다. 무엇이 복수인가. 무엇이 과연 정당한 복수인가. 조상국과 한이수가 같은 위치에 선다. 그리고 다른 선택을 한다. 복수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깨닫는다. 진정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가장 통렬한 복수다. 조상국 자신이 그토록 굳게 믿고 있는 그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기만에 불과한 것인가를. 조해우의 올곧은 걸음걸음이 다시 한이수를 복수의 지옥으로부터 구해내고 있었다.

한이수에게 조해우는 운명이다. 조해우에게도 한이수는 운명이다. 오준영(하석진 분)에게 조해우는 사랑이다. 운명과 사랑. 얄궂다. 장영희(이하늬 분)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오준영 역시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조해우에 대한 질투와 원망조차 모두 던져버린다. 조해우의 곁에 있겠다. 어리석을 정도로 올곧은 진심이다. 그러나 집착이다. 조해우는 선택한다. 조해우에게도 오준영은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인연이었을까? 운명을 뛰어넘는 사랑도 인연도 존재한다.

요시무라 준이치로(이재구 분)가 남았다. 조의선 역시 지금으로서는 변수다. 조해우는 여전히 올곧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오준영이 그 곁을 지키고 있다. 오준영에게도 선택은 남아 있다. 그는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 한이수가 김수현에 의해 강물에 빠졌다. 이제 마지막회에서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 그들의 선택은,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조상국은 마지막 집착을 드러낸다.

한영만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강희수를 우발적으로 죽인다. 한이수는 한영만의 진실을 알고 조상국을 죽이려 한다. 조상국은 자신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여왔다. 한이수는 진실을 감출 수 없기에 차라리 죽기를 선택한다. 그는 한이수다. 한영만이 아들이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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