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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7.28 09:06

[TV줌인] 불후의 명곡2, "시대와 대중과 함께했던 작사가 유호를 만나다"

유일의 목소리, 김바다 불후의 명곡2에 데뷔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대중문화는 시대와 대중의 무의식이다. 의식은 공식화된 자료로써 전해진다. 시대를 정의하는 다양한 기록과 증언과 증거들, 그리고 수많은 논문과 보고서들. 그리고 그 이면에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이 남긴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정서와 감정의 기억들이 있다.

과연 '낙랑18세'라고 하는 노래가 지금 처음으로 아이돌그룹에 의해 발표되었다면 당시와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겠는가? 사랑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전혀 다르다. 조문근의 2013년판 '맨발의 청춘'은 1960년대 최희준이 부른 '맨발의 청춘'과 전혀 달랐다. 아마 2013년에 누군가 '님은 먼 곳에'라는 노래의 가사를 쓰게 된다면 전혀 다른 지금의 언어로 쓰이게 될 것이다. '불후의 명곡2'에서도 그래서 노래를 소개할 때 그 노래가 히트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시대였기에 나올 수 있었던 가사였고 그 시대였기에 큰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다. 시대에 대한 보편적 동의가 그것을 명곡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필자가 굳이 '불후의 명곡2'의 리뷰를 쓰면서 시대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솔직히 필자 역시 '불후의 명곡2'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적지 않았다. 설마 '진짜사나이'의 작사가가 유호였을 줄이야. 1980년대 6월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들리던 노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우여 잘가라'였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알았다. '님은 먼 곳에'는 원래 신중현 작사로 되어 있다가 몇 년 전 재판을 통해 유호 작사로 바뀌었을 것이다. 드라마 작가로서 신중현에게 건넨 메모가 다듬어져 노래의 가사가 되었는데 그에 대한 입장과 이해의 차이가 빚은 헤프닝이었을 것이다.

'떠날 때는 말없이', '낭랑 18세', '맨발의 청춘', '신라의 달밤', 시대와 함께 명곡으로 기억되고 불려지는 노래들의 상당수가 바로 유호의 작사였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 드라마들이 있었다. 심지어 작가의 이름을 앞세운 '유호극장'이라는 TV드라마가 있었을 정도로 그의 위치는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필자 또한 유호의 세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시대와 함께 호흡한다. 시대와 대중을, 무엇보다 인간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그것을 작품 속에 녹여낸다. 그래서 많은 시대 많은 사회에서 작가란 가장 존경받는 지식인 가운데 하나였다. 시대의 앞면과 뒷면을 모두 아우르며, 시대와 대중의 의식과 무의식을 작품을 통해 교류하고 공유한다.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감과 감동을, 그리고 다른 시대 다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자신들만이 겪은 감정과 기억들을 작품속에 보존하여 전한다. 무엇보다 살아계시다. 벌써 93세. 그런데도 정정하시니 그저 감사할 뿐.

유호의 작품들이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의 노래에는 시대가 있다.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들조차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하게 만드는 그 시대만의 기억들이 그의 노래에는 존재한다. 김바다가 부른 '떠날 때는 말없이'는 원래 김바다의 아버지가 자주 부르던 애창곡이었다.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났지만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부를 때 문명진 역시 당시의 시대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맨발의 청춘'을 통해 조문근은 시대의 통합을 꾀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춘은 외롭다. 엄격한 역사적 사실로서가 아닌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마는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의 감성으로서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다시 그 아들로. 시대와 사람은 흐른다.

임태경은 뮤지컬 가수다. 임태경의 무대를 볼 때마다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친절하다. 상세하다. 마치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과도 같다.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지, 그리고 노래를 어떤 감정으로 듣고 감상해야 하는지. 감정의 선이 너무나 선명한데 그것이 때로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다른 여지라고는 없이 올곧게 직구로 전해지는 감정은 보다 쉽게 임태경의 무대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님은 먼 곳에'는 김추자의 노래였다. 눈물조차 삼키고 마는 처절한 담담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직설적인 감정으로 바뀐다.

▲ 가수 바다가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하여 정열적인 디바의 모습을 선보였다.(출처:'불후의 명곡2' 방송캡처)

아마 바다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역시 비슷할 것이다. 지난주의 무대와 이번주의 무대가 마치 같은 무대같다. 그 전주의 무대 또한 이번주의 무대와 자꾸 겹쳐지려 한다. 라틴풍으로 편곡된 '카추샤의 노래'는 바다 특유의 완고한 포현력과 어우러지며 가히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이 곡이 원곡인 양 너무나 잘 어울리고 있었다. 아쉽다면 바쁜 스케줄과 짧은 연습기간으로 인해 반복되는 부분이 눈에 뜨이더라는 것. 그럼에도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압도적인 실력이 그녀에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와 무대는 훌륭했다. 임태경과 같다. 그녀는 뮤지컬배우였다.

조문근의 '맨발의 청춘'은 앞서도 말했듯 2013년의 '맨발의 청춘'을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가볍고 활달하고 적극적이다. 1960년대의 원곡이 자조적이고 비장했다면 조문근의 '맨발의 청춘'은 그런 자신조차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는 시대의 젊음을 반영한 듯 보인다. 자신의 슬픔과 아픔까지도 세상에 알리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진정한 매스미디어 시대의 개인인 셈이다. 겁먹거나 주눅드는 일 없이 세상에 너무나도 당당하다. 풍요와 네트워크의 시대다.

김바다의 '떠날 때는 말없이'는 일반대중에게는 생소한 프로그레시브, 혹은 아트록의 진수를 들려주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목소리가 디스토션을 강하게 넣은 듯 일그러져 들리고 있었다. 강하게 디스토션걸린 기타의 거친 연주와 현악기의 유장하고 웅장한 스케일, 슬픔이 시대 속에 묻힌다. 아픔과 슬픔이 역사의 시대에 녹아든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보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 단 하나다. 슬픔보다도 더 슬픔 어쩌면 기계음과도 같은 무미건조함이 노래의 비극을 극대화한다. 경연보다는 단지 음악적 완성만을 추구한 듯한 무대였다.

제국의 아이들은 사랑스러웠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무거워지지 않는다. 진지해지지 않는다. 시청자와 관객의 연령대가 높다. 눈높이가 아닌 자신들의 후배이고 동생이고 자식인 젊은 아이돌들의 한 바탕의 즐거운 놀이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음악은 즐겁다. 무대가 즐겁다. 시청자 역시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낭랑 18세'와 '진짜사나이', 멤버의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예능출연도 적절히 활용한다. 임시완의 구원은 성공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결코 슬픈 노래가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고단한 피난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의 집으로 돌아간다. 주마등처럼 부산에서의 삶들이 머리를 스치나. 헤어짐의 아쉬움과 다시 돌아가 만날 이들에 대한 설렘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슬픔과 기쁨을 오가는 문명진의 편곡은 그래서 낯설지만 한 편으로 이해가 된다. 전쟁만을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라는 점을 놓치고 있었다. 트로트와 발라드와 R&B를 섞으니 차라리 국악이 되어 버린다. 문명진은 한국사람이다. 한국사람은 한국의 민요를 부른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에 대한 낯섦이 결과를 결정짓지 않았을까.

전혀 예상밖이었다. 유호라니. 알면 알 수록 그저 대단할 뿐이다. 아직 살아계시다는 사실조차 사실 거의 관심이 없었다. '불후의 명곡2'다. 불후의 명곡과 그것을 남긴 음악인들이 전설로써 출연자와 대중과 만난다. 또다른 전설을 기대하게 된다. 한국의 시대와 역사를 본다. 즐겁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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