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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홍준 기자
  • 영화
  • 입력 2013.07.15 23:15

[리뷰] '레드: 더 레전드', 아, XX, X됐다 "이병헌 그의 구수한 욕설이 반갑다"

[스타데일리뉴스=박홍준 기자]

 

▲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레드: 더 레전드(RED 2)

감독: 딘 패리소트

출연: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메리-루이스 파커, 이병헌, 안소니 홉킨스, 캐서린 제타 존스

애인 사라(메리-루이스 파커 분)와 함께 마트에서 한가로이 장을 보는 이 남자. 전직(Retired) CIA요원이자 극도로(Extremely) 위험한 인물(Dangerous)인 프랭크 모세(브루스 윌리스)다. 애인 사라를 위해 위험한 일을 자제하며 평화롭게 은둔자의 생활을 즐기던 그에게 옛 친구 마빈(존 말코비치)가 찾아온다. 냉전시대의 잔유물인 ‘밤 그림자’의 행방을 둘러싸고 CIA, MI6가 프랭크 일당을 쫓는다. 게다가 과거의 악연과 맞물려 세계 최고의 킬러라 일컬어지는 한조배(이병헌 분)까지 프랭크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다. 소련군 장교이자 이중 스파이 카자(캐서린 제타 존스)와 냉혹한 킬러인 얼음공주 빅토리아(헬렌 미렌) 등 과거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등의 얽히고설키는 관계는 복마전을 띠게 되고 이들은 결국 ‘밤 그림자’의 출현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올 여름 영화팬들은 이병헌을 자주 볼 수가 있다. 그것도 한국 영화가 아닌 헐리우드 영화 두 편에서 동시에 말이다. 하나는 얼마 전에 개봉한 '지.아이.조' 속편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개봉하는 '레드: 더 레전드'다. 공교롭게도 두 편 모두 흥행에 성공한 액션 영화의 속편들이다. 

전작 '레드'는 꽤 매력있는 영화였다.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한 수십 편의 여타 다른 액션 영화와 비슷한 부류로 치부될 수도 있었던 전작은 독특한 캐릭터들의 매력적인 조합으로 인해 단조로운 플롯과 진부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하며 많은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타이틀 롤을 맡은, 액션 영화의 아이콘인 브루스 윌리스 외에,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 모건 프리먼, 리차드 드레이퍼스 등 헐리우드 노장 연기파 배우들이 액션 영화에서 열연하는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었던 '레드'는 블록버스터급 액션 영화는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살아있는 독특한 작품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사실 '레드' 엄밀히 이야기하면 전형적인 액션, 범죄 스릴러 영화라기보다는 액션의 표피를 쓴 영국식 코미디 영화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하겠다. 이런 독특한 형식으로 여타 다른 영화와는 다른 차별성을 갖게 되었고, 의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속편까지 제작되게 되었고,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엔 액션의 크기가 달라졌다. 무대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아시아에서 온 전설적인 킬러에 세계 전복도 가능하게 하는 위험천만한 대량 살상무기까지 규모 자체가 전작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드: 더 레전드'는 전작의 인기를 등에 없고 여름 흥행시장에 안착하려는 시도를 하면서도 전작의 매력을 버리고 더 큰 욕심을 내다가 그 독특한 색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매력적인 B급 코미디 액션 영화가 흔하디흔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된 것이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플롯으로 진행이 되는데 하나는 ‘밤 그림자’를 둘러싸고 각국 정보기간과 프랭크 일당 사이의 추격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권태기에 들어선, 프랭크와 그의 연인 사라의 로맨스다. 

스파이, 혹은 킬러와 미녀는 이런 류의 영화에서 하나의 클리쉐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굳이 007 시리즈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또 하나의 새로운 컨벤션은 그의 정체를 모르는 아내 혹은 애인이 킬러 혹은 스파이인 남편, 혹은 애인과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간다는 것이다. 거기에 부부 혹은 애인과의 갈등이 보조 플롯으로서 결합되어 매력적인 조합으로 탄생한 장르가 이런 부류의 영화이다. 액션, 로맨틱 코메디, 모험, 스릴러의 장르적 요소를 모두 포함한 이런 영화는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층을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대표적인 영화가 '트루 라이즈'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킬러스' 같은 영화다. 

 
 

'레드' 역시 이런 노선을 충실히 따른다. 마트에서 새로 나온 식기 세척기나 구매하려는 대머리 중년에게 젊고 매력적인 애인은 지루함을 느끼게 마련이고, 그가 원하는 ‘인형의 집’에서 자꾸 탈출하고자 한다. 게다가 그의 옛 친구들은 괴짜 싸이코 폭탄 전문가에, 러시아 스파이 미녀에, 중년 여성 킬러 등 각양각색의 재미난 캐릭터들 아닌가? 원래 한 때 놀던 사람은 평화롭게 살고자 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사람은 모험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이런 둘의 차이 때문에 남녀 주인공은 끊임없이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영화는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너무나 다른 이 두 남녀의 관계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늘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흥미를 반감시킨다. 이게 두 남녀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인지 액션과 함께 살아가는 두 연인의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인지 모를 정도로 정체성이 애매하다. 맨몸 격투장면이나 과격한 총격전, 카 체이스 장면 등의 액션 장면은 오히려 영화 중간중간 이 영화가 액션 영화임을 강조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등장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느낌까지 준다. 

캐서린 제타 존스(카자 역)느 전혀 팜므 파탈적이지 않고, 헬렌 미렌은 그냥 할머니 정도로만 느껴질 정도로 전설적인 킬러로서의 위압감을 전혀 드러내지 못한다. CIA나 MI6 등 정보기관은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나 007 시리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부패한 정보기관원의 설정만 갖다 붙인 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이병헌은 '지. 아이. 조'의 스톰 쉐도우의 동양인 닌자 캐릭터의 무성의한 차용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미 그의 몇몇 출연작에서도 그랬듯이 '양들의 침묵'에서의 한니발 박사 캐릭터의 스파이 버전 화신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베일리 박사를 연기하는 안소니 홉킨스는 이제 더 이상 관객의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전작의 캐릭터들에 더해 새로운 인물들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을 욕심낸 나머지 매력적인 조합을 이루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감옥에서 베일리 박사를 빼내는 장면이나 이란 대사관에 침투하는 과정 등은 긴장감은커녕 현실성마저 없을 정도로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레드: 더 레전드'의 이런 상황은 흥미를 끄는 소재와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안타까운 조합을 이뤄낸 형국이다. 

영화 후반부 폭탄의 폭발을 앞두고 이병헌이 한국말로 내뱉는 “XX, X됐다” 라는 대사가 영화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름 흥행 시장을 주도할 블록버스터 영화로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을 주는 '레드'는 전작을 봤던 관객이라면 그래도 몇몇 장면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가치는 있으며, 처음 보는 관객에게는 그럭저럭 킬링 타임 용의 오락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간 다른 헐리우드 영화에서 등장하는 한국인 캐릭터(주로 테러리스트나 군인들로 나왔던)의 어색한 한국말들이 거슬렸던 관객들에게는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한국 배우 이병헌의 감칠맛 나는 한국어 대사들을 듣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상점에서의 맨손 격투, 카 체이스 총격전, 차 한 대를 종잇조각처럼 만들어 놓는 발칸포 총격전 장면 등 영화의 주요 액션 장면을 책임지는 이병헌은 시원한 눈요깃감을 제공한다. 대규모 폭발 장면이나 저격 장면 등 영화 내내 유럽 각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쉴 새 없는 액션 장면은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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